[이 장르 이 저자] 소설가 전상국신작 '남이섬' 전쟁과 상처, 인간원형 탐구, 교육 문제 다뤄

화두(話頭). 이야기의 첫 머리를 뜻하는 이 말은 본래 참선 수행을 위한 실마리란 뜻의 불교용어에서 나왔단다. 필자는 전상국의 소설을 읽고 이 말을 사전에서 찾았다.

이유인 즉, 무엇이 이 작가를 세 개의 화두로 평생을 고뇌하게 만들었던가, 그 화두를 발판으로 인간이 초극의 세계로 갈 수 있다, 꿈꾸게 하였는가가 궁금해서.

그는 이제 '아베의 가족'과 '우상의 눈물' 같은 몇 편의 소설로 기억되는 분단문학 작가이자 지방의 한 대학을 정년퇴임한 노인이다. 그 세대 대개의 국내 작가가 그러하듯 소설가 전상국은 한국전쟁과 그로 인한 피로와 상처, 그것이 만든 조악한 인간관계를 통해 근대 사회를 그렸다.

그 언저리에서 활동한 대부분의 작가들이 '등단작=대표작'인 것과 달리 그는 최근까지도 이 문제에 천착하며 소설질을 하고 있다.

전상국. 1940년 강원도 홍천에서 태어나 1963년 단편 '동행'으로 등단했다. 이후 10년간 작품을 발표하지 않다 1974년 '전야'를 발표하며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그의 첫 화두는 앞서 소개했듯 전쟁과 전쟁으로 인한 상처. 등단작인 '동행'에서부터 '아베의 가족', '길' 연작이 그런 인식에서 쓰인 작품들이다.

여타의 분단 작가들과 구별되는 그의 두 번째 화두는 이 전쟁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속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는 삶의 원체험을 통해 인간 원형을 탐구한다.

마지막 화두는 교육문제다. 대표작 '우상의 눈물'을 비롯해 '돼지새끼들의 울음' 등에서 교육현실의 황폐성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그는 교육구조를 통해 다시, 권력의 문제 등 인간 일반적인 문제를 탐구한다.

얼마 전 그가 신작 소설집 '남이섬'을 냈다. '온 생애의 한순간' 이후 6년 만에 낸 소설집이자 그의 열 번째 소설집이다. 두 편의 중편과 세 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그는 책에서 "그 동안 동어반복을 피하기 위해 낯선 곁눈질을 하기도 했지만 이번 소설들에서 본래의 관심사 언저리로 다시 돌아왔다"(작가의 말)라고 밝히고 있다. 등단 49년째의 노 작가는 앞선 세 화두를 다시 꺼낸다.

첫째 전쟁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인간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표제작 '남이섬'을 비롯해 '지뢰밭', '드라마 게임'이 공통으로 던지는 질문이다. 둘째 사회적 구조를 넘어, 인간의 초극은 가능한가? 그 초극을 견디게 하는 윤리는 무엇인가? '남이섬'과 '꾀꼬리 편지'에서 이 화두가 이야기로 펼쳐진다.

셋째 진실한 소통은 가능한가? '춘심이 발동하야'에서 작가는 실제의 삶과 허구의 삶, 즉 인생과 소설 양면에 걸친 진실의 소통 방식과 인간의 원형을 탐구한다.

'남이섬, 지뢰밭 등을 통해 뒤늦게나마 내 본래의 관심사 언저리에 "돌아와 거울 앞에 선"것만으로 큰 얻음이다' (작가의 말 중에서)

발랄하고 경쾌한 이야기를 찾는 오늘의 젊은 독자는 비장하면서도 심각한 그의 소설에 별 관심이 없을 터다. 자신과 다른 세대의 관심사와 상황인식, 말하기 방식은 낯설고 이질적일 것이다.

하지만 새가 좌우의 날개로 균형을 맞추듯, 신구 세대의 다양한 작품을 통해 문학읽기, 세상 보기를 하는 게 독자 개인에게 훨씬 이롭다. 몇 줄 짜리 단신 기사로 소개된 그의 신간에 눈길이 가는 이유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