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 음악가 이강숙 '젊은 음악가의 초상' 출간평생 음악으로 표현되지 않는 느낌과 생각 언어화하는 게 소설

원로 음악가 이강숙씨가 장편소설 <젊은 음악가의 초상>을 냈다. 첫 장편 <피아니스트의 탄생>(2004)과 첫 소설집 <빈병 교향곡>(2006)에 이은 이 책은 작가 자신의 자전적 경험을 녹여 쓴 성장 소설이다.

작품은 작가의 분신인 김철우란 소년이 성악가로 재능을 인정받은 뒤 피아노 세계에 입문하는 음악적 성장담을 그리고 있다. 서울음대에서 피아노를 전공하고 미국 버지니아 커먼웰스대 조교수와 서울대 음대 교수 등을 역임한 그는 한국종합예술학교 초대 총장을 지낸 음악행정가로도 이름을 알렸다.

그랬던 그가 최근 몇 년 간 음악 칼럼보다는 소설쓰기에 매진하고 있다. 음악을 소재로 한 다양한 작품을 발표하며 3권의 책을 냈고 소설집 한 권 분량의 단편도 발표했다. 그가 말했다.

"내 맘속에 평생 음악으로 표현되지 않는 느낌과 생각이 있거든요. 이걸 언어화하는 게 소설이지 않은가 생각해요."

이 젊은 음악가의 초상

소설을 보면 자연스럽게 작가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초등학생 철우의 꿈은 문학가나 음악가가 되는 것. 문학의 꿈은 국어 선생님의 잔인한 한마디에 짓밟히지만, 노래에 소질 있음을 알아본 선생님 덕분에 철우는 각종 콩쿠르를 석권하며 음악적 재능을 인정받는다. 소년은 청라산을 거쳐 집으로 오는 길에 피아노 소리에 감동을 받고 베토벤 월광곡 레코드에 정신을 잃으며 음악의 길로 빠져든다.

'돌담 너머 기와집에서 '그 소리'가 났다. 갑자기 철우의 몸과 마음이 후들후들 떨렸다. 의사가 주사를 놓자마자 의식을 잃는다든가 몸 안이 갑자기 화끈화끈해질 때가 있는 것처럼 철우의 몸 안에 감당하기 힘든 열기가 돌았다.' (55페이지)

어린 철우의 성장담도 소설의 곳곳에서 펼쳐진다. 이를테면 공부 잘하는 아들이 음악가가 아닌 판검사나 의사가 되길 바라는 엄마, 상급학교 진학과 출세를 위해 영수국을 필두로한 학과공부를 강요하는 학교, 병구를 비롯한 철우 또래 아이들이 갖는 이성에 대한 호기심 등등. 어려운 여건 속에 음악의 길로 나아가는 철우의 선택 등 소설은 곳곳에 작가의 자전적 경험을 반영하고 있다.

"자전적 모습이 얼마나 반영됐냐?"는 질문에 그는 "50%정도"라고 대답했다.

"원래 2000매 정도 된 소설을 1000매로 줄였어요. 내가 좋아한 여학생 이야기, 국어 선생님이 저한테 문학적 재능이 없다고 했던 이야기 등등 에피소드를 많이 줄였어요."

소설 속 철우는 피아노를 배우고 전국고등학교 성악 콩쿠르에 도전한다. 이야기는 이 콩쿠르에 입상한 철우가 "자기 노래를 찾아" 어둠 속을 뛰고 또 뛰다가 정체를 알 수 없는 누군가와 마주치는 장면으로 끝난다.

'고쳐 배움을 통해 더 나은 노래 거울을 찾으려고 얼마나 뛰었는지 모른다. 한 백년은 뛰었을까. 철우의 발길에 새벽녘의 희미한 빛이 스미기 시작할 무렵이다. 저 멀리 동지를 만나기나 한 듯이 어떤 사람의 연민의 정이 안고 고쳐 배우려고 뛰어오는 철우를 바라보고 서 있다.' (245페이지)

소설 속 마지막 장면은 마치 소설가로 제 2의 삶을 시작한 그의 모습과 겹쳐진다.

"나는 평생을 살아와도 내가 누구인지 잘 모르겠거든요. 내가 누구인지 잘 몰라서 최선의 나, 최상의 나를 찾으려고 어둠 속을 한 100년쯤 뛰어가려고 하면 내 앞에 살았던, 나처럼 고민했던 사람이 '그렇게 뛰어봐야 (자아가) 쉽게 안 찾아지는데'하며 안타까워하는 모습을 전달하려고 했는데, 독자에게 잘 전달됐는지는 모르겠네요."

평생 음악 비평을 써오셨는데, 소설 쓰기는 이와 어떻게 다르던가요?

"음악 칼럼은 노잉(Knowing)이죠. 아는 걸 문장으로 표현하면 끝인데 소설은 내 느낌과 생각을 형상화시켜 보여줘야 하죠. 메이킹(Making)의 세계에요. 'Don't tell, show it.'라는 말이 있는데 아주 상투적이지만 이 말을 하기는 쉬워도 실행하기는 어렵죠."

흔히 예술의 조기교육 중요성을 말하는데, 이 소설을 보면 철우가 피아노를 비교적 늦게 배웁니다. 그럼에도 훌륭한 음악가로 성장하거든요. 소설 속 철우, 그러니까 이강숙 선생님은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과 달라보입니다.

"저는 예술 조기교육을 해야 한다고 믿어요. 예를 들어 모국어야 말로 어떤 의미에서 가장 근본적인 조기교육인데 사람들은 모국어를 언제 배웠는지 모르고, 저절로 배웠다고 믿죠. 나아가 배웠다고 생각하지 않죠.

음악에서도 모국어적 능력, 외국어적 능력이 있고, 모국어적 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저는 피아노 조기교육을 못 받았지만, 노래로 음악적 조기교육을 받은 셈이에요. 음악 이전의 음악 조건, 음악을 하게끔 하는 근거로서 음악물(物)이 있고, 음악을 하게 만드는 음악적 심성이 있어요.

아무리 마음속에 좋은 생각, 사상이 있어도 표현하는 최소한의 테크닉을 배워야 하거든요. 노래를 잘 부르려면 음계 감각이 있어야 하죠. 나는 이 감각이 노래로 개발됐어요. 음악을 음화하는 사람은 피아니스트나 작곡가 같은 사람이죠. 저는 음악을 언어화하는 사람입니다. 피아노는 나에게 외국어적 능력이지만, 나는 음악 목적에 맞는 조기교육을 다 받은 거죠."

소설 쓸 때 모국어 같은 느낌이 드십니까?

"한국인이 모국어로써 한국어를 쓰지만 전부 시인이나 소설가가 되진 않거든요. 그런 의미로 음악에 감각이 있다고 전부 작곡가나 연주가가 되진 않습니다.

국제 콩쿠르 나가는 사람은 많지만 영원히 기억에 남는 연주가는 많지 않거든요. 그것과 마찬가지로 작품을 형상화할 때 작품에 가장 알맞은 언어, 길이, 구성을 모국어만큼 자연스럽게 해 냈다, 이런 생각은 없어요. 훨씬 능숙해야죠."

그건 소설 창작의 테크닉 같다고 생각합니다. 하면 할수록 재능이 느는 거죠.

"작품의 질은 작가 자신에게 나오지만 기예는 공부하면 느는 것 같아요. 아마추어들은 테크닉이 중요하다는 걸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왜냐면 (수용자보다) 자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니까. 자기가 미미한 존재라고 깨달을 때 최초로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되지 않나 생각해요. 사람들 말로는 위대한 소설가는 타고나는 거지만, 꽤 괜찮은 소설가는 노력하면 된다고 하던데 그 말이 위안이 되죠."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