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장르 이 저자] 발터 벤야민방대한 지적 스펙트럼과 독창적 인식 방법 사후에 인정받아

올해로 탄생 53주년을 맞았다는 캐릭터 '스머프'. 90년대 한창 빨갱이 딱지가 붙었지만 이러저러한 의혹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인 캐릭터로 이름을 날리며 올해는 3D영화로도 개봉된단다.

이 만화가 사회주의를 찬양한다는 다소 구체적인 정황을 들어보면 구성원들의 지위가 평등하고 마을은 재산을 공동 소유하며, 블루칼라를 상징하는 파란 몸을 하고 있고, 파파 스머프는 마르크스를 떠올리게 한다는 것 등이다.

혼자 잘난 척 떠들어대다 왕따를 당하는 안경쟁이 똘똘이 스머프는 트로츠키를 형상화 했다는 해석도 있다. 똘똘이 스머프를 보며, 필자는 '비운의 브레인' 트로츠키보다 발터 벤야민이 떠올랐다.

혼자 중얼거리는 모습,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현학적 사유, 유약하고 진지한 성정 등등 똘똘이 스머프는 벤야민을 빼다 박은 것 같다.

발터 벤야민. 1892년 7월에 태어나 1940년 9월에 자살한 비운의 지식인. 고미술품상이던 부모에게 태어나 독일사회 유대인 공동체에서 자란 그는 유년시절을 베를린에서 보냈다.

청년 시절 청년운동 단체 구스타프 비네켄 그룹에 가담했고, 프라이부르크에서 철학, 독문학, 미술사를 공부하고 자유기고가와 독립출판가로 활동했다. 1923년 프랑크푸르트 대학에 교수자격심사 논문인 '독일비애극의 기원'을 제출했다가 논문 심사 철회를 요구받은 뒤, 스스로 논문을 철회하고 아카데미와 담을 쌓은 채 독자적인 사유체계를 만들어 간다.

보들레르, 프루스트에 심취해 그들의 작품을 번역하는 한편, 1925년부터 마르크스주의 연구에 몰두했다. 그의 저작이 판이하게 갈라지는 기점은 이 즈음이다. 1940년 나치 점령지가 된 파리에서 피레네 국경을 넘으려다 국경 통과가 실패하자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아카데미와 담을 쌓고 상당량의 저서를 써낸 덕분에, 그의 책은 매우 넓은 스펙트럼을 자랑한다. 정치적 신념과 예술철학에서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젖줄을 데는가 하면, 루카치의 마르크스주의와 소통하기도 하고, 하이데거와도 사상적 혈연관계를 이루기도 한다.

문학, 정치, 영화, 미술, 철학 등 여러 장르를 누비며 현대성의 의미를 건져낸다. 이를테면 그의 대표적인 개념어인 '아우라'는 20세기 기술복제 시대 가능한 예술의 방식에 대한 그의 사유가 집적된 말이다.

대표작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에서 그는 이 말을 "아무리 가깝게 있는 것처럼 느껴지더라도 먼 것이 일회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 정의했다.

그의 책들이 생전 제대로 빛을 보지 못한 이유는 이 방대한 지적 스펙트럼과 함께 독창적인 인식 방법에 있다. 예컨대 교수논문으로 제출한 '독일 비애극의 기원'은 너무 어려워 심사위원이 "단 한 줄도 이해할 수 없다"는 이유로 철회를 요구받았다.

그의 사상은 당시의 현상학(現象學)과 신헤겔주의와는 현저한 대조를 이루고 있고, 유물론적 사고가 기저에 깔려 있지만 마르크스의 책은 읽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그는 산업자본주의가 꽃피던 1930년대 파리의 아케이드에 주목하며 20세기 패션, 유행, 건축과 테크놀로지를 통해 현대성을 바라본다.

이런 관점은 <파사젠베르크>(국내에는 '아케이드 프로젝트'로 출간)에 담겨 있다. 그의 유저(遺著)인 <역사철학의 테제>에는 종말론적 역사관이 보인다.

비운의 삶을 살다 그나마 사후 인정을 받게 된 건 그의 친구들 공이 크다. 생전 그의 진가를 알아본 지인들은 하나같이 그보다 오래 살았고, 자신이 속한 분야의 대가가 됐다.

이를테면 게르솜 쇼렘, 아도르노, 그리고 한나 아렌트. 그들의 추천에 힘입어 벤야민은 저 오해의 누명을 벗고 빛을 보게 됐다. 그가 출판가의 패션이 될지, 그래서 그들의 친구들보다 더 오래 (작가로) 살아남았을지 그의 생전에 누가 알았을까.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