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겐 이상향, 세계의 이면, 마음속 정념…

내몸속에 푸른 호랑이가 있다
이경림 지음/ 문예중앙펴냄/ 8000원

인도 라호르 대학의 논리학 교수 알렉산더 크레이지는 갠지스강 삼각주에 산다는 푸른 호랑이를 찾아 나선다. 삼각주 마을 농민들은 그를 돕기로 하고 밤마다 정글 기슭에서 망을 본다. 호랑이가 나타났다,

전갈을 받고 교수가 현장에 가면 호랑이는 번번이 사라지고 없다. 교수는 참지 못하고 정글의 진흙 언덕에 올라가 호랑이를 찾겠다고 말한다. 마을 사람들은 그를 막는다. 그 언덕은 성스럽고 무서운 곳이라 발을 들여서는 안 된다는 것. 교수는 밤을 틈타 언덕에 오른다.

새벽녘 푸른 호랑이는 보지 못하고, 푸른 돌멩이만 한 움큼 집어 호주머니에 넣어 돌아온다. 아침에 그 돌의 수를 세려고 했지만 하나를 분리하면 그 하나가 여럿이 되는 바람에 셀 수가 없다.

온갖 방법을 동원해도 돌을 셀 수 없자 그는 마음에 병이 든다. 우주가 이런 비합리적인 것의 존재를 용납한다고 믿기보다는 자신이 미치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는 어느 날 눈먼 거지를 만나고 푸른 돌을 모두 적선하고 보답으로 시간과 지혜와 관습을, 이 세계를 존중하라는 말을 듣는다.

보르헤스의 단편 '푸른 호랑이' 속 푸른 호랑이는 누군가에게 초월할 수 없는 이상향이고 누군가에게는 보이지 않는 세계의 이면이고, 누군가에게는 제 마음 속의 정념 같은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이 모든 것이자 아무것도 아닌 것일 게다.

어쨌든 푸른 호랑이를 볼 수 있는 진흙 언덕이 너무 신성하거나 혹은 너무 무서워서 발을 들여놓지 않는 필자와 달리, 이경림은 이 푸른 호랑이가 아예 제 몸 속에 있다, 말하고 있다. 평론가 황현산의 해설처럼 "그것(푸른 호랑이)은 인간과 인간의 모든 기획을 넘어서는 것이지만 다른 것이 아니다."

'설렁탕과 곰탕 사이에는 푸른 호랑이 한 마리가 산다/ 어떤 생의 무릎과 혓바닥 사이에는/ 어떤 생의 머리뼈와 어떤 생의 허벅지 살 사이에는/ 형언할 수 없이 슬픈 눈과 사나운 관능을 가진/ 푸른 호랑이 한 마리가 산다'('푸른 호랑이' 중에서)

제 안에 푸른 호랑이가 살고 있으므로, 시인 또한 푸른 호랑이를 본 적은 없을 것이다. 이 호랑이는 막막한 저녁 한 자락 꿈처럼 나타나기도 하고 아련한 기억으로 출몰하기도 한다. 그것은 존재와 존재 사이에서, 시간과 공간의 경계에서, 각자의 고독 속에서 드러났다 사라진다. 그 호랑이를 향해 시인은 말한다.

'존재가 하나의 헛소문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 60년이 걸렸다. 생이, 보르헤스 소설의 '푸른 호랑이'처럼, 건너편 산에 산다는 아무도 본 적 없는 '푸른 호랑이'의 눈빛 같은 거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 600년도 더 걸린 것 같다. 그러니, 푸른 호랑이는 애초부터 없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는 또 얼마만큼의 시간이 필요한 것일까?' (시인의 말 중에서)

화가의 집
제라르 조르주 르메르 지음/ 이충민 옮김/ 아트북스 펴냄/ 1만 5000원

앙드레 드랭, 프란티셀 빌렉 등 화가들의 집과 아틀리에를 소개한 책. 미술사가인 저자는 화가의 집은 단순한 생활 공간이 아니라 예술적 영감의 원천, 작업의 연장이자 무대라는 사실을 다양한 사진과 세밀한 사료로 설명한다. 작가의 작품 세계, 생애에 대한 전기적 소개로 곁들이고 있어 이해를 돕는다.

이반 일리히- 소박한 자율의 삶
박홍규 지음/ 텍스트 펴냄/ 1만 6000원

<학교 없는 사회>, <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 등으로 알려진 신학자 이반 일리히의 평전. 그는 혁명적 교육관을 통해 가치의 제도화를 거부한 교육학자이자 가족의 죽음과 옥살이까지 감내하며 '소박한 자율의 삶'을 실천한 생태사상가로 우리에게 알려져 있다.

<병원이 병을 만든다>, <그림자 노동> 등 일리히의 책을 우리말로 번역한 박홍규 영남대 교수가 집필을 맡았다.

북벌: 1659년 5월 4일의 비밀
오세영 지음/ 시아 펴냄/ 1만 2500원

<베니스의 개성상인>, <원행>, <구텐베르크의 조선> 등 작품으로 알려진 작가 오세영의 신작 소설. <효종실록> 10년, 1659년 5월 4일 효종의 갑작스런 죽음을 모티프로 '북벌'이 화두가 됐던 당시 시대적 상황을 재구성했다.

그날의 긴박했던 순간을 그리며 독살이 의심되는 효종, 허둥대며 입궐하는 신료들, 궁궐을 포위하며 변란에 대비한 훈련도감의 군사들 등 그날 궁에서 벌어졌던 일들과 그 속에 숨겨진 비밀을 풀어나간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