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장르 이 저자] 시오노 나나미일본 태생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 최근 출간

지난 주말 지인 생일을 핑계로 여자 셋이 모였다. 케이크를 안주 삼아 한두 병 꺼내 마신 맥주가 15병에서 16병을 넘어갈 때, 일행은 최근 읽고 있는 책 감상평을 말하고 있었다. 흥에 겨운 생일 주인공이 필자에게 툭 말을 던졌다.

"당신은 고집스럽게 생겨서, 한 십년 걸쳐 책 쓸 수 있을 것 같아. 시오노 나나미도 고집스레 생겨서 <로마인 이야기>같은 책 열 댓 권 씩 썼잖아."

이 비유가 칭찬인지(성공한 작가니까), 욕인지(사진 보면 알겠지만) 아리송해하면서 맥주 맛이 확 깨는 순간, 주인공은 주섬주섬 짐을 챙기며 해장 하러 카페를 나섰다.

시오노 나나미. 일본 태생의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 1937년 도쿄에서 태어나 고등학교 시절 <일리아드>를 읽고 이탈리아에 심취해 라틴어를 독학했다. 대학에서 서양철학을 전공했고 당시 일본 대학가를 휩쓸었던 학생운동에 가담하지만 마키아벨리 책을 접한 후 학생운동에 회의를 느끼고, 졸업 후 이탈리아로 건너갔다.

독학으로 이탈리아사를 공부하면서 다양한 저서를 쓴 것으로 유명하다. 70년대에 <체사레 보르자 혹은 우아한 냉혹>, <신의 대리인> 등을 썼고, 1980년대에 이른바 전쟁 3부작으로 불리는 <콘스탄티노플 함락>, <로도스섬 공방전>,<레판토 해전>을 썼다.

그를 세계적 작가로 부상하게 한 것은 1992년부터 한 해 한 권씩 써온 <로마인 이야기>다. 이 책은 기원전 8세기 고대 로마의 건국에서부터 서기 476년 서로마 제국 멸망을 거쳐 이슬람 세력에 의해 로마 문명이 사라지는 7세기까지 1500여년 간을 다룬다.

역사적 사실에 바탕을 두고 이야기를 전개하되 사료가 채워주지 못하는 부분은 작가의 상상력과 빼어난 글솜씨로 채워 넣었다. 덕분에 역사에 재미를 못 느끼는 독자들도 쉽게 다가갈 수 있다.

매일 같은 시간 정장차림으로 서재에 들어가 여름휴가도 없이 꼬박 15년간 총 15권을 썼다. <삼국지>처럼 누구나 읽지 않더라도 내용은 짐작하는 스테디셀러 중 하나다.

90년대 후반 베스트셀러로 국내에서 한창 인기를 끌 때는 저명인사들이 너도나도 '추천도서'로 이 책을 소개했는데, 이들 중 상당수는 정치가나 기업가였다. 로마인들이 대제국을 건설하는 과정에 감탄하면서 자신도 그렇게 국가와 기업을 경영하겠다고 다짐하는 내용이 태반이었다.

헌데 일군의 독자들은 반대로 이런 맥락에서 폭력성을 느낀다. 작가가 로마를 지나치게 미화하며 제국주의적 향수를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작가의 대다수 다른 저서 역시 서구 중심주의, 귀족주의, 영웅주의 성향 아래 있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는다.

지난 주 그의 최근작이 번역 출간됐다. 11세기 십자군 전쟁을 그린 시리즈물 <십자군 이야기>다. 책은 11세기 '카노사의 굴욕'으로 시작한다. 황제를 눈밭에 무릎 꿇게 만든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의 뒤를 이은 교황 역시 '세상의 군주를 모두 지도할 수 있는 힘을 지닌 것'은 로마 교황뿐임을 보여 주기 위해 십자군 원정을 기획했기 때문이다.

1권은 1096년 유럽을 출발한 민중십자군이 비잔틴제국 수도 콘스탄티노플에 집결해 예루살렘을 정복하기까지, 그리고 예루살렘 정복 이후 18년 동안 십자군 국가의 성립하고, 십자군 제1세대가 퇴장하기까지의 과정을 다루고 있다. 2권과 3권은 각각 올 가을과 내년 봄에 출간될 예정이다.

'(나나미는) 스스로도 깨닫지 못할 만큼 많이 컸다. 집중과 지속이라는 미덕을 가지고 열심히 노력한 결과다. 어찌 보면 꼭 수도하는 수녀 같다.'

데뷔작 <르네상스의 여인들>을 쓰게 한 가스야 잇키 전 <주오코론>(中央公論) 편집장이 회상한 시오노의 신인 시절이다. 일관성과 집중력은 지금도 나나미의 최대 덕목으로 꼽힌다.

흔히 그녀의 글솜씨를 타고난 재능처럼 말하지만, 이는 일관된 성실함이 만든 재능 같다. 신간을 읽으며 생각한다. '열심히 일하는 것도 능력이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