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미의 우리풀 우리나무] 개회나무

하늘에 구멍이 난 줄 알았다. 그칠 줄 모르고 쏟아지는 비를 바라보며. 반대로 미세하게 작은 구멍으로 비가 스며들던 땅은 모두 막혔는지 길위로 물이 출렁거린다.

나무와 함께 흙을 잡아주고 한 번에 쏟아지는 물도 잡아주며 마르지도 넘치지도 않던 산의 물길들은 흩어져 버리고 산자락들이 무너져 평온하던 산이 무섭게 돌변하였다. 자연의 이치도 사람의 이치도 함부로 거스르고 가볍게 생각한 결과인 듯 하다.

잠시 비가 쉬고 해가 나왔다. 애써도 쉽게 정리되지 않던 큰 비의 흔적들이 그 반나절의 햇살이 많은 것을 말려주고 정상으로 되돌려 준다. 이런 여름날에는 꽃구경이 쉽지 않다, 물론 산야에 나리를 비롯한 여름꽃들이 이곳저곳 눈에 뜨이지만 봄처럼 나무 가득이 꽃송이들을 매단 나무 구경은 쉽지 않다.

자귀나무가 지고 있고, 눈여겨 보면 칡꽃도 향그러울 터이긴 하다. 이즈음 숲에서 혹은 고궁의 담장 옆에서 눈부시게 하얀 꽃송이들이 무성하게 피어난 나무가 무엇일까 궁금하다면 개회나무이기 쉽다.

이 한여름은 초록의 잎들이 너무 무성하여 그 어떤 것도 가릴만 하지만 그래도 한무더기씩 꽃송이를 만드는 개회나무 꽃들은 때론 진초록의 무성함을 극복하고 이내 우리 눈길을 잡아 시원하고 향기롭게 다가온다.

개회나무는 물푸레나무과 수수꽃다리속에 속하는 중간 키 정도의 나무이다. 쉽게 말하면 우리나라에서 아름답고 향기롭기로 유명한 수수꽃다리를 비롯한 정향나무 등과 같은 집안 식구이다. 라일락의 한 종류라고 생각해도 된다. 처음 분포가 확인되어 지명이 붙여진 학명을 그대로 따서 영어 이름이 만주라일락(Manchuian Lilac)이다.

그래서 마주보며 달리는 잎을 보면 손바닥처럼 넓적하고(다만 수수꽃다리처럼 대부분의 잎 밑부분이 심장모양으로 오목하진 않다.) 꽃송이 하나하나는 작지만 전체적으로 원추형을 만들며 모이고 또 모여 꽃차례의 지름이 10cm에서 크게는 25cm에 이르기도 한다.

이러한 꽃송이들이 구름처럼 보였던지 개구름나무라고도 하고, 정향나무와 비슷하지만 그만큼 확실하게 꽃의 아름다움이 두드러지지 않은 탓인지 개정향나무라고도 한다. 하지만 개성없이 개회나무라고 부르기엔 참으로 시원하게 아름답고 풍성한 꽃을 가진다.

꽃은 사실 여름이 시작되며 이미 피기 시작하였다. 꽃색은 백색이지만 아주 약간 우유 빛이 돈다. 집안내력에 맞게 향기가 좋고 꿀도 많이 나서 벌들이 자주 찾기도 한다. 꽃이 많지 않은 시기를 채워줄 수 있고, 크지도 작지도 않는 키를 가졌으니 정원수로 적절한 나무다.

그늘에선 제대로 꽃이 탐스러워지진 않지만 어찌되었든 나무는 반그늘을 견딜만하고 추위나 공해 등에도 강하다는 기록이다. 다만 바닷가에 심기에는 적절하지 않다,

향기가 좋아 다른 이 집안 나무들처럼 향료를 추출하기도 하고 목재등은 굵진 않지만 섬세한 공예품이나 가구를 만들는데 사용이 가능하단다. 한방에서는 같은 집안의 비슷한 나무들과 함께 수피나 가지 등을 약으로 쓴다, 가래를 없애주고, 물울 다스리며 종기등을 제거해주는 등의 효과가 있다 한다,

백설처럼 탐스럽게 피어 매혹적인 향기를 보내는 이 여름 꽃나무가 올 여름 변화무쌍한 환경속에서 은근한 기쁨을 준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99@fo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