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장성규 첫 평론집 펴내후기자본주의 시대 시와 소설은 새로운 비평언어, 사유방식 필요해

문학출판사 실천문학은 올해 초 전면적인 혁신을 단행했다. 김영현 전 대표의 퇴임 이후 주간인 손택수씨가 대표를 맡고 문학평론가 이명원씨가 손씨를 대신해 주간자리를 맡았다.

문학출판사의 '브레인'이라 할 문예지 편집위원도 전면 교체했다. 문예지 방향과 앞으로 출간할 책의 스타일이 이전과 조금 달라질 듯하다.

비평가 장성규씨는 실천문학에 영입된 젊은 피다. 1978년생인 그는 200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해 민족문학연구소 연구원으로 활동 중이다. 리얼리즘의 미학적, 실천적 과제에 관심이 많단다. 젊은 평론가 중에 이렇게 전통적인(?) 영역에 관심을 두는 사람도 드물다.

다시 말해, 장씨는 최근의 30~40대 비평가 다수가 68세대 서구지식인들의 이론 틀에서 국내 문학 작품을 해석하는 흐름에서 한걸음 떨어져있다.

최근 그가 첫 평론집 <사막에서 리얼리즘>을 펴냈다. 제목에서 드러나듯 그는 작금의 사회, 문화적 상황을 '후기자본주의 시대'로 본다. 사막같은 자본주의 시대를 건너가기 위한 수단으로 그는 '리얼리즘' 문학을 꼽는다.

새로운 형식, 새로운 작품 찾을 터

그를 찾은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 였다. 그가 편집위원으로 활동하는 실천문학의 변화와 최근 문학계의 흐름을 물어보기 위해서다. '한때' 국내 리얼리즘 문학의 한 축을 담당했던 실천문학이 9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문단 내 입지가 좁아졌다는 것은 문학에 관심을 둔 독자라면 누구나 알 고 있는 일이다.

실천문학은 몇 년간 이렇다 할 담론이나 스타급 작가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지난 해 겨울, 문예지 <실천문학>이 100호를 내놓으며 출판사의 변화를 발표했다.

이 변화 중 하나가 지난해부터 시작한 실천포럼. 매달 문∙사·철 분야의 이론가를 초청해 함께 공부하면서 1980년대를 풍미한 '실천신서'와 같은 사회과학 담론을 제공하겠다는 포부다.

이명원 주간 외에 편집위원으로 서영인, 김종훈씨 등 소장 평론가를 영입했다. 실천문학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바뀌나?

"문예지 가을호는 과도기적으로 바뀔 것 같다. 일정한 주제를 잡고 인문, 사회, 문화적 분석을 한 권으로 묶을 계획이다. 가을호 주제는 '2000년대 마지막 말'이다. 2000년대 한국사회를 보여주는 키워드를 통해 한국사회와 세계사적 문제를 분석, 쟁점화 할 계획이다. 타 문예지와 달리 시나 소설은 싣지 않는다. 혁신호는 내년 봄호가 될 것이다."

신춘문예나 출판사 신인상 같은 기존 등단제도를 통해 데뷔하지 않은 신인들의 작품집을 낼 계획도 있다고 들었다.

"오랫동안 소설을 쓴 이승현씨의 장편소설을 출간할 계획에 있다. 이건 소설 기획위원들이 추천해서 출간을 준비한 것이다. 헌데 내가 편집위원이 되고 실천문학 신인상을 뽑고 보니 그 분이 당선됐다. 이건 특이한 경우이지만, 계속 기존 시스템과 달리 신인작가들을 발굴할 계획이 있다."

예전 실천문학에서 책을 받으면 먹먹한 기분이 들었다.(웃음) 바른 소리를 하는 건 맞는데 문학작품으로 읽기에 답답한 느낌이 들었다고 할까? 앞으로 출판사에서 내는 책 스타일도 좀 바뀌나?

"편집위원, 시와 소설 기획위원들의 다 개성은 다 다르지만, 대부분 실천문학이 엄숙주의에서 탈피해 더 발랄해질 필요가 있다는데 공감하고 있다. 출간되는 책의 내용, 형식도 곧 바뀔 것 같다."

사막을 건너는 법

그의 첫 평론집 <사막에서 리얼리즘>은 제목처럼 2000년대식 리얼리즘 문학 독법을 소개한 책이다. 작금의 시와 소설은 80~90년대식 문학 독법으로 해석될 수 없으며 날로 새롭게 변하는 작품에 제대로 된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비평적 언어, 사유방식이 필요하다는 것이 이 책의 요지다.

책은 총 4부로 나뉜다. '마주침의 문법'이란 부제가 붙은 1부에서는 최근 젊은 작가들의 소설과 백무산, 황규관, 김사이의 시를 통해 문학의 리얼리티에 대해 논한다.

2부에서는 2000년대 문학의 화두였던 트랜스 내셔널 징후를 분석하고, 이 틀을 발판삼아 방현석, 오수연, 정도상, 권리의 소설을 분석한다.

3부에서는 일제말기 사소설부터 최근 장기하로 표상되는 저항문화까지 국내 문화 현상의 숨은 의미를 분석한다. 4부에서는 김사과, 윤고은, 염승숙, 주원규 등의 작품론을 담았다.

2011년 낸 책 제목에 '리얼리즘'을 붙일 줄 몰랐다.(웃음) 특별히 리얼리즘에 주목하는 이유가 있나?

"리얼리즘이라는 말의 범위는 크다. 리얼리즘 하면 떠올리는 80년대 민중문학 작품이 지금은 나오지도 않을뿐더러 나와도 의미 없을 것 같다. 최근에는 현실을 형상화하는 미메시스적인 방식의 문학작품이 거의 없다. 대개 '리얼리즘'하면 떠올리는 작품 방식이 있다. 현실의 모순을 그대로 재현해야 하고, 전망을 제시해야 한다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작금의 상황에서 작가가 어떤 전망을 제시할 수 있나? 그런 게 없는 시대에 리얼리즘은 과정으로 이해될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한다. 그런 문학이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제목에 리얼리즘을 썼다."

평론집에 실린 작품, 작가들의 특징은 뭔가? 2000년대 문학계 현상을 잘 보여주는 작품인가? 아니면 작품 자체 역량이 뛰어난 작품인가?

"2000년대 문학특징을 한마디로 말하기란 모호하다. 흔히 환상성, 장르문학 코드 차용, 메타소설, 미래파 같은 말이 많이 나왔는데, 실상에 비해서 왜곡되거나 과잉되는 게 많다고 생각한다. 사실 2000년대에는 어떤 문예지든 주목하는 작품은 거의 같았다. 무난하면서 적당히 새로운 걸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작품이 좋다 나쁘다는 건 각자의 가치판단의 문제인 것 같다. 다만 나는 문학계 지형도에서 배제된 작품을 소개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책을 묶을 때 그런 작가들의 작품을 많이 실었다."

주목하는 작가 있나?

"김사과와 서효인 같은 신예작가들. 김사과는 등단 때부터 사회문제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면서 새로운 방식의 소설을 발표한다. 서효인 시인은 광주에서 태어난 80년대 생이다.

5월 광주에 대해 이전 세대와 다른 감정이 있다. 말장난 하면서 대중화된 코드를 잘 섞는 시를 쓰는데, 잘 읽어보면 그 안에 광주 얘기가 있다. 광주에 대해 형상화하는 방식이 예전과 완전히 다르다."

글쎄, 이 작가들이 더 새롭다거나 사회적이라기보다는 386으로 대표되는 기성세대가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작품을 쓰기 때문이 아닐까? 예컨대 김사과의 <미나>는 취향의 계급성을 고발하는 소설이다. 취향의 계급성을 연구한 부르디외의 <구별짓기>가 국내 번역된 게 386이 그래도 책을 봤던 90년대다. 요컨대 '리얼리즘'을 주창하는 비평가들이 주목하는 신예 작가들은, 그들이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기성세대가 '지금의 20대'라 상상하는 방식으로 읽기 편한 작품을 쓴다는 생각도 든다. 끝으로 저자가 요즘 주목하는 주제는 뭔가?

"지금 현실을 그린 작품들을 해석하는 안목과 언어를 갖는 것이다. 최근 작가들의 작품은 기존 비평 언어로 포착될 수 없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이 미학적 틀을 만든데 관심 있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