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미의 우리풀 우리나무] 불두화

한 여름이다. 비는 여전히 오락가락한다. 비가 내리는 정원 끝자락에 희고 풍성한 꽃송이들이 보인다. 그 수수함과 넉넉함 그래서 초연한 듯 고결한 모습을 보자니 문득 또 내리는 비에, 사소한 일상 하나하나에 조바심치던 내 자신이 비추어 보인다.

끝이 언제 다가설지도 모르는 유한한 삶, 그래서 거창하고 대단한 저 높은 곳의 무엇보다도 내 가까운 것에 있는 것들을 가장 먼저 소중히 해야 한다는 것쯤은 나도 안다. 결국 인생은 사소함으로 이어지고 그래서 결국 그 사소함이 소중하고 의미있다는 것을 말이다.

불두화의 흰 꽃송이들은 이 모든 인생의 번민을 알고 내어 던진 듯 보인다. 이미 한창 꽃이 피는 시기는 지났지만, 그래서 한창의 때깔을 잃은 지 오래이겠으나 여전히 그 둥그런 공모양의 꽃덩어리들을 달고 안개비속에 그렇게 의연히 서있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선명한 메시지를 주는 듯하다.

불두화는 인동과에 속하는 낙엽이 지는 중간키 나무이다. 꽃덩어리가 밥을 담는 사발과 같다 하여 사발꽃, 혹은 밥꽃이라고도 한다. 큰접시꽃이라는 이름도 있다.

정작 불두화는 부처님의 머리와 같다는 뜻의 이름이다. 꽃송이들이 둥그렇고 오골오골 달리는 모습과 부처님의 곱슬거리는 모습을 함께 연상해보자. 게다가 불두화는 사찰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꽃나무이기도 하다.

불두화야 말로 사연을 알고 나면, 즉 꽃을 인간과 빗대어 꽃이 나비를 불러 인연을 맺고 열매를 맺어 후손을 번식하여 살아가는 것을 초월한 삶을 사는 뜻에서 사찰과 잘 어울어지는 꽃나무임을 알 수 있다. 불두화는 꿀과 향기와 벌과 나무를 유혹하지도, 수술의 꽃가루가 암술에 닿아 씨앗을 맺을 수 도 없는 그래서 이름도 무성화인 꽃을 가졌기 때문이다.

불두화는 백당나무에서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조경수종이다. 백당나무는 꽃들이 분업과 협업을 하느라 가장자리에 원반처럼 꽃잎이 달려 곤충을 부르는 역할을 하는 꽃 즉 무상화가 있고, 안쪽에는 그 반대의 역할 즉 무성화를 보고 찾아오는 꽃들이 실제 꽃가루받이를 하여 열매를 맺는, 하지만 꽃잎이 퇴화하여 보기에 보잘 것 없는 유성화로 이루어져 있다.

불두화는 보기에 좋으라고 모든 유성화까지도 무성화로 바꾸어버려 풍성하게 보기좋게 만들어진 꽃이다. 인간사의 모든 욕구와 정을 내어 놓고 초연한 듯, 그래서 더 맑고 오래 오래 꽃의 모습으로 살아가니, 꽃 자신의 의미는 버리고 오직 바라보는 이를 위해 존재하는 이것도 불자들의 보시라고 해야 할까!

그래서 불두화는 가을이 깊어도 백당나무의 붉은 열매를 가질 수 없고, 오직 무성번식으로만 개체를 늘릴 수 있다. 하지만 또 그래서 우리가 여름이 되도록 오래오래 그 초연한 꽃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요즈음 한참 꽃이 피는 나무수국도 집안은 다르지만 같은 이치를 가지는 꽃나무이며 생울타리로 많이 쓰이는데 잎을 보면 불두화처럼 세갈래로 갈라지지 않으며, 꽃송이는 둥근 구가 아니라 둥근원뿔형이며 무거워 아래로 늘어지듯 달려 구분이 쉽다.

그래도 불두화의 꽃에서 계절을 안다 봄이 되어 처음 피기 시작하는 꽃들에게서는 연두빛이 돌고, 순백의 꽃이 되었다가 점차 약간의 붉은빛을 띄어가며 그렇게 무르익어간다. 힘들어도 얽히고 설혀 사는 백당나무의 삶이 좋은 것인지 포기하여 초연한 불두화의 삶이 나은지는 나도 모르겠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99@fo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