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소송 본질은 저작권 ,삼성 특허소송은 장기전 승소가능성 낮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7월 29일 수원 삼성 디지털시티에서 열린 선진 제품 비교 전시에서 권오현 디바이스솔루션총괄사업장으로부터 반도체사업 현황 및 신기술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애플과 삼성전자의 특허 소송 전쟁이 지난 15일로 6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아이폰(아이패드)을 만드는 애플과 거기에 핵심 부품을 공급하는 삼성이 무려 반 년 동안 송사를 치르면서도 거래는 계속하는 ‘불편한 동거’를 하고 있는 셈. 삼성은 애플에 휴대폰 주요 부품들을 팔아 연간 78억 달러를 번다.

애플이 부품의 단가 인하를 요구할 경우 삼성은 이중으로 압박을 받는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부문 매출및 이익이 줄어드는 건 물론이고 갤럭시에 대한 아이폰(아이패드)의 가격 경쟁력이 높아져 시장점유율이 떨어지는 것이다.

지난 22일 세계 최초로 20나노급(1나노m는 10억분의 1m) 반도체 양산을 선포하는 기념식에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반도체업계 발 태풍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는데, ‘현 위치에 안주하다가는’이란 전제가 붙었지만 나름 절박한 경고를 한 것으로 해석된다.

독일과 네덜란드 법원은 애플에 손을 들어주긴 했지만, 애플의 승소가 실익이 있다고 보는 사람은 별로 없다. 업그레이드 갤럭시 제품이 나오면 판매금지 가처분의 효력은 상실되기 때문.

문제는 애플이 안드로이드 진영 전체에 포격을 퍼붓고 있다는 점. 삼성은 그 중간에서 표적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디지털 생태계 전문가들은 삼성과 애플 두 회사 모두 소송 승패에 큰 타격은 없다고 보고 있다. 진행 중인 가처분신청 판결도 많이 남았고 본안소송 판결까지는 긴 시간이 남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격변하는 디지털 생태계에서 양사가 목숨 건 혈투를 벌일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수십억 명의 이해 관계자를 둔 양사는 거래처 관계다. 최종 확정판결이 나더라도 사생결단을 내긴 어려운 이유다. 다만 당장은 기(氣)싸움에 집중해야 할 이유가 있다.

서구에선 특허보다 저작권이 훨씬 세다
소송 자체만 놓고 보면 애플이 유리하다. 삼성이 준비 중이라고 알려진 ‘아이폰5 판매금지 가처분소송’도 말처럼 쉽지 않다. 영국의 텔레그래프지는 “독일에서 갤럭시탭 판매금지 가처분 결정이 저작권(copyright) 문제였다면, 삼성이 아이폰5에 대해 제기할 수 있는 것은 특허권 침해”라고 보도했다.

‘특허’는 저작권의 일부로, 국가별로 출원해서 등록을 해야 보호받는다. 반면 권리주체가 많은 저작권은 세계지적재산기구(WIPO)에서 보호하되 별도의 출원이나 등록절차는 없다. 그래서 유럽과 미국에선 특허보다 저작권이 훨씬 세다. 삼성이 네덜란드와 독일 법원에서 애플에 패소한 이유는 애플이 ‘특허’가 아닌 ‘저작권’을 문제 삼았기 때문이다.

‘당신은 지금 저작권 침해 중(성안당)’이라는 책을 쓴 오익재 한국커뮤니케이션연구소장은 “자연법칙을 차용한 것은 특허, 그렇지 않은 창작물은 저작권”이라고 설명했다. 오 소장에 따르면 서구 특히 유럽의 저작권 보호 법제는 엄청난 수준이다. ‘e-비즈니스’라는 용어를 처음 쓴 영국인이 IBM으로부터 500만 달러의 저작권 침해 손해배상액을 받아낸 사례가 대표적이다.

정보기술 전문매체인 디지털트렌드(digitaltrends.com)는 “독일에서 갤럭시 탭 10.1 가처분신청이 받아들여진 것을 보면 적어도 독일에서는 본안 판결에서도 애플 승소가 예견된다”고 내다봤다. 이 매체는 독일에서 고급기술 관련 특허분쟁에서 가처분신청이 받아들여진 것은 드문 일이라고 했다. 이는 유럽 법원들이 애플의 가처분 신청을 ‘특허’보다는 ‘저작권’으로 봤기 때문이다. 양사의 모든 소송에서 애플은 스타일(트레이드 드레스)과 사용자환경(UI), 아이콘, 포장 등 ‘저작권’을 문제 삼은 반면 삼성은 ‘통신기술특허 침해’를 문제 삼았다.

삼성과 한국언론의 낙관 “안타깝다”
비슷한 특허를 만만찮게 보유하고 있는 애플이 삼성의 기술특허를 침해했는지 규명하는 일은 쉽지 않아 보인다. 특허소송 확정판결이 최소 3년은 간다는 짐작이 어렵지않다. 맞소송이지만 애플과 삼성의 내용(무기?)이 다르고, 저작권을 앞세운 애플이 ‘빨리’ ‘확실히’ 이길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

오 소장은 “한국 언론이 삼성의 승소를 낙관하는 것은 지적재산권 존중 전통이 짧고 서구의 저작권 보호 법제가 얼마나 강한지 아직 잘 모르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애당초 지적재산권(특허+저작권)싸움에서 끝내 이기는 게 애플의 목표는 아니었다. 애플이 그 정도로 협량한 기업이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실익 없지만 꼭 필요한 샅바 싸움
애플이 노리는 것은, 삼성과 싸우는 것처럼 보이지만은 실상은 구글과 싸우는 것이다. 이른 바 지구촌 디지털 생태계 주도권 싸움이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삼성은 구글의 대리전을 치를 수도, 안드로이드를 버리고 애플과 손을 잡을 수도 있다.

애플사 이해관계자 커뮤니티 맥루머(http://www.macrumor.com)에서는 “(소송을 통해) 애플이 진짜로 원하는 것은 삼성이 구글의 손을 뿌리치고 애플 제품을 만드는데 협력하는 것”이라는 얘기도 나왔다. “공급사슬로 연결돼 공생관계인 제조업, 삼성이 무너지면 애플도 무사할 수 없다”는 얘기를 보면 ‘애플-삼성 커플 시나리오’도 꽤 그럴듯해 보인다.

애플은 삼성을 압박하고 있다. 모토롤라를 인수하고 디지털생태계를 주도하려는 야심찬 구글을 무력화 시키는데 삼성만큼 좋은 볼모가 없다. 당장은 삼성이 곤혹스런 처지에 빠진 게 분명하다. 애플의 전방위 공세로 유럽과 미국에서 당분간 고전할 가능성이 높다. 계열사의 3분기 성과도 썩 좋지 않았고 경제연구소의 내년 경제전망도 밝지 않다.

그래서였을까. 지난 22일 삼성그룹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미래전략실(실장 김순택 부회장)을 보좌하는 차장직(사장 직급)을 신설, 부산고 출신 장충기(57) 커뮤니케이션팀장을 임명했다. 밖으로는 지구촌 디지털 생태계의 섭리와 동학(動學)을 따라잡고 안으로는 어떤 내실을 갖출 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상현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