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재국 조사로 보는 역대 대통령 아들 '檢 수난사'

검찰 수사관들이 16일 오후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남 재국 씨가 대표로 있는 출판사인 서울 서초동 시공사 본사를 압수수색한 뒤 압수품을 들고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전두환 비자금 은닉 혐의' 장남 재국 소환 조사 방침 시공사 등 전격 압수수색
2004년 '조세포탈' 혐의 차남 재용 구속되기도
YS 차남 '소통령' 김현철 한보그룹 등에 66억 받아 12억 탈세도… 결국 구속
DJ 세 아들도 비리 연루 MB 장남 최초 특검 대상

우리나라에서는 예로부터 왕자들에게 별다른 권력을 부여하지 않아왔다. 그러나 왕의 아들이라는 상징성 때문에 여러 정치적 이해관계에 얽혀있었던 왕자들의 주변에는 언제나 온갖 유혹과 아첨, 청탁이 넘쳐났다. 왕이 아무리 따끔하게 교육하고 주변을 단속하더라도 자신이 실제로 지니고 있는 권력의 맛을 본 왕자들의 전횡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근대로 넘어오면서 혈연으로 세습되는 왕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국민이 선출하는 대통령이 차지하게 됐지만 '왕자'들의 권력남용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대통령의 아들이라는 점 이외에는 어떠한 직책도 없는 이들이 부모의 힘을 배경으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러 온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과거와 달리 이를 제재할 수 있는 '법'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실제로 세도가 행세를 하던 역대 대통령 아들 대부분은 각종 범법행위로 검찰의 수사를 받았다. 박근혜 대통령이 자녀가 없어 다행이라는 세간의 비아냥이 가볍게만 들리지 않는 이유다.

최근 전두환 전 대통령의 미납 추징금 집행에 착수한 검찰이 전 전 대통령 장남 전재국씨가 대표로 있는 시공사까지 전격 압수수색하면서 이른바 '왕자들의 수난사'가 또 한 번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다. 이에 <주간한국>에서는 역대 대통령 아들들이 검찰과 맺었던 악연을 꼼꼼히 살펴봤다.

전두환 전 대통령 비자금에 대한 검찰 수사가 이어지는 가운데 전 전 대통령의 장남인 전재국씨를 비롯, 검찰과 악연을 맺은 역대 대통령 아들들이 주목을 받고 있다. 사진은 김영삼 전 대통령의 아들인 김현철씨(왼쪽),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아들인 김홍일ㆍ홍업ㆍ홍걸씨(가운데 위쪽),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아들인 노건호씨(가운데 아래쪽 왼편), 전재국씨(가운데 아래쪽 오른편), 이명박 전 대통령 아들인 이시형씨(오른쪽). 주간한국 자료사진
구속 예상되는 전재국

검찰은 지난 16일 전두환 전 대통령 일가에 대한 압수수색을 대대적으로 시작했다. 1,670억원에 달하는 전 전 대통령의 은닉재산 환수를 위해 서울중앙지검에 설치된 '전두환 일가 미납 추징금 특별집행팀'은 이날 전 전 대통령의 연희동 자택에 대한 압류 절차에 들어가는 것은 물론, 장남 전재국씨가 운영 중이던 시공사 등 10여곳을 전격 압수수색했다.

전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 뇌물 등 각종 수단을 동원해 비자금을 축적한 혐의로 지난 1997년 대법원에서 추징금 2,205억원을 선고받았지만 2004년까지 533억원만 납부했다. 이번 압수수색을 통해 전 전 대통령 가족들의 재산을 면밀히 들여다본 검찰은 전체 자산 규모가 약 1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추정, 잔여 추징금 확보가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의 압수수색 초반 단계에서 가장 주목된 인물은 전 전 대통령의 장남인 전씨였다. 전 전 대통령 내외 명의의 재산이 얼마 안되는데 비해 전씨의 경우 드러난 재산만 수천억원대인 까닭이다.

우선 검찰은 전씨가 대표로 있는 시공사 사옥과 기숙사에서 그림, 도자기 등 고가의 미술품 400여점을 압수했다. 압수한 그림 가운데는 김환기, 천경자 화백 등 국내 유명 화가의 그림들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전씨를 소환해 압수물품이 전 전 대통령으로부터 유래한 재산인지 집중 조사할 방침이다.

또한, 검찰은 전씨 소유의 부동산과 해외 차명계좌 등을 조사하는 한편 시공사의 회계분석을 통해 자금원을 찾아가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전씨는 대법원이 전 전 대통령 추징금을 확정한 직후부터 부동산을 집중 매입했다. 검찰은 부동산 매입의 자금원이 무기명 채권이나 현금으로 숨겨뒀던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검찰은 전씨가 싱가포르에 개설한 아랍은행 차명계좌에 대해서도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한 상태다. 전씨가 만든 페이퍼컴퍼니 '블루아도니스' 명의로 개설된 아람은행 싱가포르지점 금융계좌 현지 관리인인 김모씨를 조만간 소환조사할 방침이다. 전씨는 동생 전재용씨가 차명계좌에 167억원의 뭉칫돈을 보관한 사실이 드러나 대검 중수부에서 구속 수감된 지 불과 다섯 달 만에 블루아도니스를 세운 바 있다.

사정기관 내부에서는 전 전 대통령 일가에 대한 검찰수사를 통해 전씨가 구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사실상 구속이 쉽지 않은 전 전 대통령 대신 전씨가 본보기 삼아 구속되리라는 것이다.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해외로 자금을 빼돌린 혐의로 외환관리법 위반이나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재산도피 혐의로 처벌받을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2004년 조세포탈혐의로 구속된 전재용씨에 이어 전씨마저 이번에 구속될 경우 전 전 대통령은 자신의 재산 때문에 아들 둘을 모두 검찰에게 넘겨주는 '나쁜 아비'가 되는 셈이다.

법정 들락날락한 '소통령'

대통령의 아들이 법적 단죄의 대상이 된 것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ㆍ차남만이 아니다. 대통령의 아들로서 대한민국 최초로 검찰 구속된 것은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인 김현철씨였다.

'소통령'이라는 별칭을 얻을 정도로 강력한 권력을 행사했던 김씨는 한보그룹 등 대기업으로부터 66억원을 받고 12억원을 탈세했다는 혐의로 1997년 구속기소된 바 있다. 그것도 김 전 대통령의 임기 중에 벌어진 일이다. 당시 징역 2년과 벌금 10억5,000만원, 추징금 5억2,000만원을 선고받은 김씨는 1999년 광복절에 잔형집행면제로 사면ㆍ복권됐다.

김씨의 구속은 아버지인 김 전 대통령에게도 큰 타격을 입혔다. 집권하자마자 '친인척 정치 금지' 원칙을 내세웠던 김 전 대통령은 "아들 허물이 아비 허물"이라며 대국민 사과를 해야만 했고 국정 장악력을 상실할 채 표류하다 1997년 11월 신한국당으로부터 방출당하는 신세가 됐다.

김씨는 2004년 14대 총선을 앞두고 조동만 전 한솔그룹 부회장으로부터 20억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혐의로 또 한 번 구속됐다. 7년 만에 검찰에 출두한 김씨는 송곳으로 자신의 배를 찌르는 자해 소동을 벌이기도 했다. 1심에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던 김씨는 2005년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그 밖에도 김씨는 자신을 구속했던 검사가 2008년 15대 총선에 출마하자 인터넷 기사에 장문의 악성 댓글을 게재한 혐의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기도 했다.

'홍삼트리오' DJ 국정운영에 차질

김대중 전 대통령은 김홍일, 김홍업, 김홍걸씨 등 세 아들 모두 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는 진기록을 세웠다. 특히 김홍업씨와 김홍걸씨의 경우 김 전 대통령이 청와대에 있을 당시 구속된 바 있다.

김 전 대통령의 세 아들에 대한 비리 의혹이 흘러나온 것은 2001년 말부터였다. 당시 의혹의 주인공은 장남인 김홍일씨였으나 이듬해 정작 구속된 것은 삼남 김홍걸씨였고 그로부터 한 달 뒤 차남 홍업씨도 같은 처지가 됐다. 김홍업씨의 경우 대통령 아들로서는 처음으로 특검 조사의 대상이 될 뻔했으나 당시 여당이던 민주당이 특검팀의 수사기한 연장을 거부하는 바람에 수사가 중단됐다.

김 전 대통령의 세 아들은 저마다 다양한 '게이트'에 연루돼있었다. 김홍일씨는 '진승현 게이트'와 관련해 진씨 및 정성홍 전 국정원 경제과장으로부터 선거자금을 제공받은 혐의를 받았고, '이용호 게이트'와 관련해서도 여운환씨와 접촉한 것이 논란이 됐다. 결국 김홍일씨는 2003년 '나라종금 로비사건'에서 1억5,000만원을 수수한 혐의가 드러나 불구속 기소됐다. 지병을 이유로 구속은 면했지만 유죄판결을 받고 2006년 국회의원직을 상실했다.

'정현준 게이트', '진승현 게이트', '이용호 게이트'에 복합적으로 연루된 김홍업씨는 이권청탁 대가 등으로 기업체로부터 20억원을 받고 세금을 포탈한 혐의로 2002년 7월 구속기소됐다. 이후 2003년 항소심에서 5월 징역 2년이 확정됐지만 같은 해 9월 우울증 등 건강문제를 이유로 형집행정지 결정을 받아 석방됐다. '최규선 게이트'에 연루된 김홍걸씨는 체육복표 사업자 선정 등에 관련된 청탁 명목으로 기업들로부터 불법자금을 수수했다는 혐의를 받고 구속 수감된 뒤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추징금 3억원을 선고받았다.

'홍'자 돌림의 세 아들이 잇달아 기소되며 '홍삼트리오'라는 비아냥 섞인 말까지 세간에서 유행되자 결국 김 전 대통령도 대국민 사과에 나섰다. 대선 당시 '대통령 친인척 부당행위 금지법'을 공약으로 내걸었던 김 전 대통령은 "자식들과 주변 인사들이 일으킨 사회적 물의에 무어라 사과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다"며 당시 여당인 새천년 민주당을 탈당했다.

아들보다 딸이 문제 되기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아들 노건호씨도 '박연차 게이트'로 검찰을 드나들었다. 노씨는 2009년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이 노 전 대통령 측에 송금한 500만달러 중 250만달러가 자신이 대주주인 회사에 투자된 배경 등과 관련해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의 소환조사를 두 차례 받은 바 있다. 그러나 검찰이 노씨 부자 모두를 엮기에 부담을 느낀 데다 2009년 5월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하는 바람에 결국 기소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

노 전 대통령의 경우 아들인 노씨 대신 딸 노정연씨가 사법처리되는 불운을 겪었다. 노정연씨는 미국 아파트 매매대금 중도금 100만달러를 당국에 신고하지 않고 불법 송금한 혐의로 지난해 8월 불구속 기소됐다.

아들이 아닌 딸이 검찰을 드나든 것은 노태우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노 전 대통령의 딸 노소영씨는 1993년 남편인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미국 은행에 20만 달러를 밀반입해 예치했다가 미국 법원에 의해 전액 몰수당했다. 당시 노소영씨는 결혼축의금이라고 둘러댔다가 나중에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일부라는 사실이 밝혀지며 검찰 수사를 받았지만 처벌은 피했다.

최초로 특검 대상된 MB 아들

지난해에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아들 이시형씨가 내곡동 사저 부지 매입 의혹을 수사 중인 특검에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으며 체면을 구겼다. 1999년 한국조폐공사 파업 유도, 옷로비 사건 이후 역대 10차례 특검 가운데 대통령의 아들로 수사대상에 오른 것은 이씨가 처음이었다. 전직 대통령 아들들이 40대 중년의 나이에 수사를 당한 것을 감안할 때, 30대 초반의 젊은 이씨는 더욱 주목됐다.

배임과 부동산실명법 위반 혐의를 받고는 있었지만 이씨의 경우 여타 전직 대통령 아들과는 차별점이 있었다. 전직 대통령 아들들의 비리가 개인 차원에서의 비리였거나 부친 퇴임 후 드러났다면 이씨는 현직 대통령의 문제에 함께 얽혀들어 간 것이다. 당시 이씨는 이 전 대통령이 퇴임 후 거주할 사저 부지를 자신의 이름으로 계약하고, 같은 부지를 매입한 청와대 경호처에 비해 싼값으로 땅을 사들인 사실이 드러나며 특검의 제물이 됐다.

각종 로비의혹 휩쓸려 국정운영에 악영향도
■ 영부인들의 수난사



갖은 사건을 일으키며 대통령을 골치 아프게 했던 것은 아들들만이 아니었다. 자신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보살피며 내조해주기를 바랐지만 결국 아내 때문에 골머리를 앓은 대통령도 적지 않다.

대표적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를 꼽을 수 있다. 이 여사는 1999년 '옷로비사건' 당시 외환 밀반출 혐의를 받고 있던 남편 최순영 전 신동아그룹 회장의 구명을 위해 옷로비를 일삼았던 이형자씨로부터 1억원대의 미술품을 받았다는 의혹에 휩쓸려 수개월 동안 시달렸다. 국회 청문회, 특검 수사까지 진행된 지루한 공방 끝에 해당 사건 자체가 흐지부지됐지만 이 여사를 둘러싼 소문은 김 전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부인인 김윤옥 여사도 로비 의혹에 시달렸다. 남상태 전 대우조선해양 사장이 연임을 위해 김 여사에게 1,000달러짜리 수표 다발을 전달했고, 김 여사는 정동기 전 민정수석에게 남 사장의 연임을 부탁했다는 내용이다. 당시 검찰이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의 불법 금품수수 의혹 수사에 집중하며 해당 의혹은 유야무야 묻혔지만 집권 중반기의 이 전 대통령에게 만만찮은 부담으로 작용했다.

최근 검찰의 집중포화를 맞고 있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부인인 이순자 여사도 검찰과 악연을 맺은 바 있다. 2004년 전 전 대통령의 은닉재산을 추적하던 검찰은 이 여사에게서 대납 형식으로 채권 102억원 현금과 수표 28억원 등 130억원을 받아냈다. 당시 검찰에 소환된 이씨는 조사과정에서 "(국고로 환수된 130억원은) 10년간 친정살이하면서 모은 알토란같은 내 돈이고 남편의 비자금과는 상관없다"라며 30여분간 눈물을 쏟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현준기자 realpeac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