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예절교육 담당하는 서당, 아이들 체험학습 공간으로 안성맞춤

서풍이 불어 비 처음 개니(西風吹動雨初歇)

만리 먼 하늘에 한 조각 구름도 없어라(萬里長空無片雲)

빈방에 앉아 온갖 묘한 이치를 생각하니(虛室戶居觀衆妙)

하늘의 계수나무 향기 어지러이 떨어진다.(天香桂子落紛紛)

사명대사(1544~1610)가 지은 청학동추좌(靑鶴洞秋坐)라는 시다. ‘청학동의 가을을 노래함’ 정도로 해석할 수 있는 이 시를 지금 만약 청학동의 초막 툇마루에 앉아 읊조릴 수 있다면 정말 축복받은 여행을 하고 있는 중일 것이다.

지리산 삼신봉에서 흘러 내려오는 골바람이 만추의 서정을 가득 담고 있는 청학동을 지나 내려가면 토담 너머 빨간 홍시가 바람에 흔들거리는 풍경은 두고두고 잊지 못할 황홀한 추억이 된다.

지리산 중턱에 위치한 청학동은 해발 800m에 자리 잡고 있다. 사람의 인체 구조상 700~800m 사이의 고지대에서 생활할 때 생체 리듬이 가장 좋다고 하는데 청학동도 바로 그 높이에 있다.

신라 때의 학자 고운(孤雲) 최치원 선생이 은거하던 곳으로 알려졌으니 정말 오래된 마을이기도 하다. 푸른 학이 많이 노닐던 곳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마을에는 예로부터 수많은 소인묵객(騷人墨客)들이 찾아와 마음을 다스렸던 곳이라 마을 구석구석에 문향(文香)이 진동을 한다.

청학동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푸른 학’은 신선이 타고 다니면서 도술을 부리는 새다. 사람의 몸에 새의 부리를 하고 있다고 전해지는 이 새는 신선을 상징하고 있는데, 그런 이유로 청학동은 신선들이 살았던 곳이라는 이야기까지 남아 있다.

지금 청학동은 도인촌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신선들은 아니지만 도를 닦는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어 이런 이름이 붙어 있다. 이들이 믿는 유불선삼도합일편정유도회(儒彿仙三道合一更正儒道會)라는 종교는 유교를 근간으로 하되 ‘유도, 불교, 선도와 동학, 서학을 하나로 합하여 큰 도를 크게 밝히자는 교리를 지니고 있다.

이렇듯 신비스런 청학동은 땅이 기름져서 곡식이 잘되며 삼재가 들어오지 않고 석정의 물을 마시면 오래 살고 특히 청학동에 살면 인재가 많이 날 것이라 전한다. 이런 이유로 이 마을에는 한자와 예절교육을 담당하는 서당이 여러 곳 있어 아이들의 한문 공부와 우리 고유의 예절을 배우는 체험학습 공간으로 요긴하게 쓰이고 있다.

신비의 땅 청학동에서 골짜기 하나만 건너면 삼성궁(三聖宮)을 만나게 된다.

삼성궁의 정확한 명칭은 지리산 청학선원 삼성궁으로 이 고장 출신 강민주(한풀선사)가 1983년에 고조선 시대의 소도를 복원, 민족의 성조인 환인, 환웅, 단군을 모신 배달민족 성전이다. 이곳은 종교시설이 아니라 민족의 정통 도맥인 신선도를 가르치며 화랑도 교육과 무예를 연마하는 도장으로 33명이 수행중이다.

청학을 형상화한 건물인 청학동박물관에서 시작되는 산길을 10여분 걸어 오르면 굳게 닫혀있는 문과 우측에 매달려 있는 징이 나그네를 맞이한다.

이 징을 세 번 치고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있으면 삿갓 쓰고 도포 입은 수행자가 나와 간략하게 주의사항을 알려주고 길 안내를 한다. 궁 안으로 들어서면 가파른 지리산 자락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넓은 평지를 만나게 된다. 이곳에 단군을 모신 건국전과 단전호흡을 하는 움집, 태극 문양을 본뜬 연못 등이 묘한 조화를 이루며 자리 잡고 있다.

삼성궁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솟대. 환웅이 나라를 다스릴 때 하늘에 제사 지내던 소도를 의미하는 이 솟대는 한풀선사가 어렸을 때부터 돌을 쌓아 만들었다고 하는데 솟대는 무려 1,000여개에 달한다.

사철 신비로운 분위기를 만들어 내고 있는 솟대이지만 가장 힘있게 하늘을 향하고 있는 계절은 가을이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화려한 단풍과 함께 장관을 이루고 있는 솟대가 있는 삼성궁을 걷다보면 몸도 마음도 튼튼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삼성궁 입장료 어른 2,000원 어린이 1,000원 문의 055-880-2383)

■ 청학동의 별미 대통밥

청학동이 자리한 청암면은 천지가 대밭이다. 먹을 것이 부족하던 시절 대통 한 마디 잘라서 감자, 보리 등을 대충 섞어 넣고 통째로 구워먹었다고 하는데 여기서 청학동 대통밥이 시작되었다고 전해진다.

쌀, 현미찹쌀, 조, 수수, 검정콩, 대추 등 오곡으로 지은 대통밥에 지리산에서 채취한 산나물 반찬을 내고 있는 청학동 대통밥은 주차장 부근의 성남식당(055-882-8757)등 몇몇 대통밥집에서 쉽게 맛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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