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의존증'에서 벗어나세요


진료실에는 부부의 갈등을 호소하는 사람들 외에도 이성 친구와 헤어진 미혼 남녀나 그 동안 숨겨놓고 만나던 애인과 헤어질 것을 고민하는 유부녀도 찾아온다.

이들이 호소하는 고통은 사별이나 이혼 후의 경우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차이가 있다면 헤어진 후에 다시 시작할 가능성이 얼마나 있고 없고의 정도다.

대개는 헤어질 것을 결정한 본인보다는 결별을 통고 당하는 사람이 더 큰 정신적 상처와 심각한 신체적 증상을 겪게 된다.

정신적 증상으로는 불안과 우울 외에도 정서적 과민, 현실과 분리된 듯한 느낌, 원하지 않지만 자꾸 떠오르는 생각들, 조절할 수 없는 눈물 등이 있으며 신체적 증상으로는 숨이 막혀 답답하다거나 심장이 빠르게 뛰어 죽을 것 같은 공포와 함께 손발이 떨리거나 마비되는 느낌 등이 있다.

이들은 학업이나 직업 또는 가정에서의 역할을 제대로 해낼 수가 없게 되어버린 자신에 대해 당황한다. 그리고 자신이 무엇을 잘못해서 상대를 떠나게 했는지, 상대를 다시 붙잡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에 골몰한다. 마치 사랑을 위해서는 자존심과 자신감을 모두 포기한 사람처럼 보인다. 이들의 상황은 일종의 ‘사랑 의존증’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을 것이다.

이들에게는 ‘세상에 괜찮은 남자 혹은 여자가 얼마나 많은데 그런 일로 그러느냐?’고 위로를 하는 사람은 ‘진정한 연인’과 헤어져야 하는 고통을 모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으로 쉽게 지울 수 있는 상처라면 그처럼 아프지도 않았을 것이다. ‘세월이 약’이라는 말이 맞는 줄은 알지만, 그 시간 동안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살아간다는 것이 가능할 것 같지가 않다.

아니 설령 가능하다고 해도 그러고 싶지 않다. 이렇게 깊은 상처라도 남아 있어야 내가 그 사람을 얼마나 진정으로 사랑하였는지 알 수 있을 것 아니냐? 이들은 자신들의 이러한 심정을 증상을 통하여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정작 자신들은 미처 의식하지 못하고 있지만.

이들은 막상 진료실을 찾아오기는 했어도 정신과 치료로 자신이 과연 나아질 수 있을지 믿지 못한다. 이들의 증상은 약물치료 등의 방법으로 어렵지 않게 해소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이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자신의 ‘사랑 의존증’이다. 이 장애를 적절히 해결하지 못하면 같은 사람과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하거나 다른 사람을 만나서도 비슷한 상황이 되풀이되기가 쉽다.

이런 경우는 상대가 정말 헤어지기 아까운 사람인지, 객관적 기준에서 차라리 헤어지는 것이 나을 것 같은 사람인지는 관계가 없다. 어차피 이들에게는 자신을 아끼는 가족이나 친구들의 충고도 더 이상 들리지도 않는다. 이들이 ‘사랑 의존증’에서 벗어나기 가장 좋은 때는 그 ‘사랑’에서 잠시 벗어나 자신이 혼자로 남아있게 된 기간이다.

이들이 이별을 겪으며 깨달아야 하는 것들 중 첫째는 그 동안 자신이 상대를 통해서 좋아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발견하는 것이다. 상대의 모든 것이 다 좋았다는 식의 추상적인 감상에서 벗어나 구체적인 사실들을 지적할 수 있어야 한다.

상대와의 만남을 통해서 얻은 것과 잃은 것, 그리고 그 만남 전후에 자신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도 헤아려 보아야 한다. 또 다시는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 없을 것 같다는 두려움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도 냉정하게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

실제로 이런 심리적 의존은 자신의 일방적인 기대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으므로, 자신이 극복해야 할 과제로 인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한 자신이 그 동안 얼마나 의존적인 삶을 살았던가, 또 상대와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자기 자신에게는 얼마나 소홀했던가를 발견해야 한다. 이들은 진료실에 와서도 주로 상대가 무슨 말을 하고 어떤 행동을 했는지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어서, 자기 자신의 생각과 계획에 대한 질문이나 자기 자신이 자기 삶의 주인공이어야 한다는 권고에 당황해 한다.

또 사랑이 깨어진 후 그 동안의 행복뿐 아니라 자신의 반 쪽이 사라지고 자신은 ‘반 쪽 인간’으로 남은 것처럼 혼자서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한다. 이들은 자신이 비록 완벽하지는 않지만, 사랑의 환상 없이도 자기 자신이 온전한 개별적 존재라는 점을 발견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위기를 통하여 잘못된 점을 발견하고 그 위기를 극복하여 발전을 이루는 것처럼, 사랑하는 사람을 잃게 되었을 때 자신의 약점을 발견하고 또 발전의 계기로 삼을 수도 있다.


박수룡 www.npspecialist.co.kr
입력시간 : 2008-11-16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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