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동조절장애' 도박·쇼핑 중독으로 나타나… 우울증 환자 등 발생 위험 높아

강남에 사는 주부 A씨는 지난해 말, 전재산을 펀드에 쏟아 부었다. 펀드가 고수익 투자라는 기대감은 그를 과감하게 투기성 펀드에 올인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고수익은 커녕 최근 투자 원금까지 몽땅 날리게 되자 그는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 자살충동이 너무 심해지자 정신과 의원을 찾은 그는 “내 인생에서 희망은 영영 보이지 않을 것 같고, 그저 죽고 싶은 마음뿐”이라며 괴로움을 털어놓았다.

고수익 환상을 쫓아 충동적으로 투기에 손을 댔다가 돌이키기 어려운 낭패를 보는 이들이 속출하고 있다.

이들은 “감언이설에 속았다”거나 “운이 나빴다”고 말하기 일쑤지만 따지고 보면 실패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본인의 과다한 물욕에 있다. 지나친 물욕은 이성적인 판단력을 약화시키고, 높은 위험 같은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투자를 감행하는 등 충동을 제어하기 힘들게 하기 때문이다.

물론 부자가 되고 싶어한다든가, 높은 수익을 올리고자 하는 욕망은 지극히 정상적이고 건강한 감정이다. 그러나 전재산 혹은 빚을 내서까지 투자를 할 정도로 무리한 투자를 하거나, 욕망을 이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면 그것은 병적인 욕망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욕망으로 인해 충동적인 행동이 나타난다면 그것 역시 병적인 욕망으로 봐야 한다.

그런데 현대인들은 욕망을 자극하는 외부환경에 너무 많이 노출돼 있어, 병적인 욕망에 빠지기 쉽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예를 들어, 인터넷이 발달한 요즘, 사람들은 언제 어디서나 손쉽게 인터넷에 접속해 쇼핑을 즐길 수 있다. 또, 광고의 홍수 속에서 물질이 행복을 실현시켜 줄 것이라는 무의식적인 환상을 뿌리치기 어렵다.

일부에선 미국 발 금융위기의 원인을 탐욕, 즉 병적인 욕망에서 찾기도 한다. 욕망을 부추기는 각종 자극에 의해 병적인 욕망을 가진 사람들이 너무 많이 양산됐고, 그에 따라 파생상품과 같은 투기거래가 범람하게 됐다. 물리적 재화는 한정적인데, 욕망이 무한대로 팽창하면서 경제의 균형이 깨졌다는 것이다.

■ 병적욕망, 도박중독 등 중독장애로 나타나

아직까지 정신의학은 과도한 출세욕이나 물욕 등 병적인 욕망 자체를 병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정신과 전문의 김정수 원장에 따르면 병적인 욕망은 ‘충동조절장애’라는 이상행동으로 나타나기 쉽다. 충동조절장애를 앓으면 욕구를 충족시키고자 하는 충동을 억제하지 못하고, 즉각적인 만족을 얻으려 한다.

병적인 도박이나 쇼핑중독, 성형중독, 관계중독 등 중독장애에 빠진 환자는 대부분 충동조절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게 정신과 전문의들의 설명이다.

김 원장은 “충동조절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중독에 빠지지만 결과적으로 거의 다 실패하기 마련”이라고 말한다.

“공부든 부의 축적이든 모든 일에 열정은 필수이지만 그와 동시에 욕구와 충동을 적절하게 절제할 줄 알아야 성공할 수 있지요. 그런데 충동조절장애에 의해 어떤 중독장애에 빠지면 그 결과가 자기 자신은 물론 가족과 사회적으로 돌이킬 수 없는 해를 주는 경우가 많아요.”

중독장애에 빠진 사람은 실패한 후에도 실패를 인정하지 못하거나 매우 불편하게 받아들인다. 그리고 거의 회복불능 상태가 될 때까지 같은 일을 반복해서 하는 경우가 많다.

■ 우울증 환자, 과도한 욕망과 중독장애 위험 커

김 원장은 건강하지 못한 욕망과 그로 인한 충동조절장애 및 중독장애를 일으키기 쉬운 사람이 있다고 지적한다.

대표적인 것이 우울증을 비롯해 감정적인 문제가 있는 사람이다. 감정적인 문제가 있으면 욕구를 조절하고 충동을 통제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우울한 사람은 반대 정서인 재미있고 자극적인 것에 대한 호감이 강해진다.

그리고 마음에 위로가 되는 관계에 집착하기 쉽다. 만성적인 스트레스를 받고 있거나 마음속에 화가 쌓여 있는 경우에도 자기조절능력이 떨어진다. 한편, 지나치게 내성적인 사람은 내적 욕망이 적절히 표현되지 못해 충동조절장애를 겪게 될 확률이 높다. 자부심이 낮은 사람도 절제력을 잃게 되기 쉽다.

성격장애가 있는 사람도 주의대상이다. 김 원장은 자기애성 성격장애나 히스테리성 성격장애, 경계성 성격장애를 가진 사람도 물욕이나 성욕 등 욕망이 지나치며, 충동조절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게 보통이라고 덧붙인다.

또, 주의가 산만한 사람, 자기애가 남달리 강하고 자기도취 성향이 있는 사람도 위험하다.

이와 함께, 선천적으로 승부욕이 강하거나 공격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이 빗나간 욕망의 덫에 걸리기 쉽다. 문제는 요즘사회는 제도적으로 강한 승부욕과 공격적 에너지를 가진 사람이 주류가 되기 쉽다는 점이다. 따라서 광적인 욕망을 제어할 사회적 분위기와 제도가 마련돼 있지 않은 현실이다.

■ 병적욕망 높은 자존감으로 치료하라

김 원장은 이런 사회분위기와 제도 때문에 현재 병적인 욕망에 대한 진단명조차 없지만 이를 방치하면 물질적으로는 물론, 정신적으로 매우 위험한 상태에 이를 수 있다고 경고한다.

“우울증이 있는 충동조절장애 환자라면, 먼저 우울증을 치료해야 합니다. 화병 등 다른 감정문제가 있다면 역시 그것을 치료해야 하고요. 그러면 욕망과 충동 조절이 잘 되는 편이죠. 감정문제가 아닌 충동조절장애의 경우, 기분 조절제와 같은 약으로 치료합니다. 그런 다음에 본인이 깨달을 수 있도록 심리치료를 하지요.”

병적욕망과 그에 따른 충동조절장애를 겪는 환자에게 김 원장이 제안하는 심리치료는

▲하루 중 느린 시간 갖기 ▲TV,라디오, 인터넷, 핸드폰 등을 잠시 꺼둠으로써 외부의 자극을 차단하기 ▲자존감을 키우고 자기중심을 찾기 ▲혼자 있는 시간을 늘리고,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기 등이다.

“내가 있고 나를 포장할 옷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자존감이죠.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명품을 위해 내 몸이 존재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명품을 쫓는 욕망이 조절되지 않는 지경까지 이르게 되기 쉽죠. 또, 뉴스나 광고 등 욕망을 자극하는 각종 외부의 정보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도움말: 정신과 전문의 김정수 원장

◇ 행복 하려면 욕망을 다스려라

지난 여름, 한국사회학회가 정부수립 60년을 맞아 전국의 성인남녀 천명을 대상으로 삶에 대한 의식조사를 실시했다. 조사결과 응답자의 32.3%가 돈을 행복의 첫 번째 조건으로 꼽아, 행복의 조건으로 건강(32.1%)과 가족(24.0%)보다 돈을 우선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7년 전, 같은 조사에서는 행복의 최우선 조건으로 건강(36.8%)과 가족(35.0%)을 꼽는 사람이 돈(14.19%)보다 많았다.

그렇다면 물질적 소유가 얼만큼 행복에 기여할까.

서울대심리학과 권석만 교수는 “조사결과 행복이 소득에 비례하지 않았다”며 “오히려 지나친 물질의 추구는 행복지수를 떨어뜨리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말했다.

권 교수에 따르면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발달할수록, 개인의 소득이 높아질수록, 상류층일수록 욕망의 과잉 현상에 빠지는 경향이 강하다. 점점 더 비교대상의 기준치가 높아져 현재 상태에 만족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물질적 욕망을 채워갈수록 상대적 결핍감과 불안감은 커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권 교수는 “개인의 행복을 위해서라도 과도한 욕망은 조절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참고자료: <긍정심리학-행복의 과학적 탐구>, <현대이상심리학>, 도움말 서울대심리학과 권석만 교수



전세화 기자 cand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