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부터 약물·인슐린 투여 추세… 예비 당뇨 환자에 투약은 논란

세계적으로 당뇨병 환자가 급증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30년까지 당뇨병환자가 현재보다 두 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2007 한국인 당뇨병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국내에서 당뇨병 유병률은 2003년 기준 전국 20~79세 성인 가운데 7.7%에 달하며, 매년 10%의 신규 당뇨 환자가 발생하고 있다.

이처럼 당뇨 대란이 코앞의 현실로 다가오자 최근 적극적인 조기치료가 강조되는 추세다.

우선, 당뇨병 진단 즉시 당뇨 약을 복용토록 하는 것이 점차 일반화되고 있다. 과거엔 당뇨병으로 진단되면 즉시 약물투여를 하지 않고, 식이요법과 운동 등 생활습관 교정부터 들어갔다. 생활습관 교정 후 2개월이 지나도 혈당이 조절되지 않으면 그때부터 약물복용을 시작해 단계적으로 약의 용량을 올렸다.

이대 목동병원 내분비내과 성연아 교수는 “이러한 방법으로는 거의 모든 환자들이 혈당조절에 실패하고 합병증 발생률이 높아진다는 연구결과가 있었다”며 “당뇨로 진단되면 처음부터 적극적으로 약을 투여하도록 권고하는 것이 최근 치료의 경향”이라고 설명했다.

또, 미국 당뇨병학회는 2006년부터 당뇨병 초기단계부터 생활습관 교정과 함께 당뇨병 약 복용을 권장하고 있다. 당뇨병의 진행을 늦추기 위해 초기단계부터 약물을 사용한다는 방침인 것이다.

이 같은 치료 방침은 미국뿐 아니라, 유럽과 우리나라 등 전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심지어 일부 전문가들은 당뇨병 발병을 예방하고 합병증을 막기 위해 당뇨 전 단계인 공복 혈당장애나 내당능장애 때부터 약물투여를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공복 혈당장애는 공복 시 혈당이 100~125mg/dL, 내당능장애는 포도당 섭취 후 2시간 뒤의 혈당이 140~199mg/dL이다.

조기치료 지침이 강조됨에 따라 진단기준도 보다 엄격해졌다. 지난해 대한당뇨병학회 진단소위원회는 당뇨병 진단기준을 기존 140mg/dL에서 126mg/dL로, 공복혈당기준도 110mg/dL 미만에서 100mg/dL로 낮췄다고 발표했다.

또, 검진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공복혈당이 100~125mg/dL일 경우, 경구당부하 검사를 받거나 반복해서 공복혈당 검사를 받도록 했다.

경구당부하 검사는 당뇨병을 정확하게 진단하기 위해 시행되는 검사로, 공복시 혈당치와 포도당 섭취 후 2시간 뒤의 혈당치를 함께 검사한다. 공복시 혈당 검사로 대부분의 당뇨병 발병 유무를 확인할 수 있지만, 혈당 이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서는 경구당부하 검사의 반응성이 더 우수하다.

당뇨에서 최후의 치료수단으로 꼽히는 인슐린 투여도 보다 초기단계에서 시행하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다는 지적이 활발히 제기되고 있다.

미국당뇨병학회(ADA)와 유럽당뇨병학회(EASD)는 11월 초, 제2형 당뇨병 치료에 대한 개정 권고안을 내놓았다. 이번 개정 권고 안은 혈당강하 효과에 있어 인슐린을 가장 효과적인 치료방법으로 기술하며, 목표 혈당 치에 도달하지 못하는 환자들에게 조기 인슐린 치료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개정 권고안에 따르면 이 같은 조기 인슐린 치료는 특히 8.5% 초과 당화혈색소(HbbA1C) 수치를 보이는 환자들에게 중요하다.

하지만 실제 임상에서 인슐린 사용은 당화혈색소 수치가 9%에 이를 때까지 지연되고 있으며, 많은 제2형 당뇨병 환자들이 인슐린 치료를 시작할 무렵이면 이미 당뇨 관련 합병증이 진행된 상태에 있다고 미국 및 유럽당뇨병학회는 지적했다.

국제당뇨연맹(IDF)이 2003년 발표한 자료를 보면, 전세계 당뇨병 환자 중 50% 이상은 조기진단과 치료시기를 놓쳐 당뇨병으로 인한 실명, 신장병, 족부 절단과 심장혈관질환 등 심각한 합병증을 동반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적극적인 조기치료만이 살 길이라는 학계의 목소리는 강한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러나 실제 많은 당뇨병 환자들에게 조기 약물복용이나 인슐린 투여 권고가 달갑지 만은 않다. 당뇨 약의 복용이나 식사를 불규칙하게 하면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인슐린 투여 역시, 하루에 한번에서 수차례 환자 스스로 정확한 용량에 맞춰 주사해야 한다. 그만큼 환자에게 불편함을 초래한다. 환자들은 무엇보다 장기적인 약물 사용에 따른 부작용을 우려한다. 그래서 가급적 약물이나 인슐린 사용 시기를 늦추고, 생활습관 교정을 통해 예방 및 개선효과가 있기를 바란다.

한림대학교 한강성심병원 내과 유형준 교수는 조기치료는 매우 중요하지만 그래도 조기에 약물과 인슐린을 투여하는 것은 신중을 가해야 할 문제라고 강조했다. 부작용이 가장 큰 이유다. 유 교수는 또, "당뇨 예방과 치료에 약물과 생활습관 교정 중 어느 것이 더 효과적인 지에 대해 현재 대규모 연구조사가 실시 중"이라며 "아직까지는 둘 중 어느 것이 더 효과가 있다고 확언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다만, 임상 경험에 비춰보면, 생활습관 관리가 철저하게 된다면 약물 못지 않은 효과를 거둔다고 덧붙였다.

유 교수는 그러나 "예비 당뇨 환자인 공복혈당장애 및 내당능장애부터 약물투여를 해야한다는 것은 일부의 주장일 뿐"이라며 "이 같은 과잉 예방법은 육체적으로나 심리적으로 환자에게 결코 득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영양사가 당뇨병 환자에게 음식모형을 이용하여 식이요법을 설명하고 있다.

■ 당뇨병 진단

다음 중 어느 한 항목이라도 해당되면 당뇨병으로 진단된다.

공복 혈장혈당이 126mg/dL 이상

심한 갈증과 다뇨, 피로, 시력장애 등 당뇨병의 전형적인 증상이 있고, 임의 혈장혈당이 200mg?dL 이상

75그램 경구당부하검사 후 2시간 뒤 혈장혈당이 200mg/dL

정상혈당은 공복 시 혈당혈장이 100mg/dL미만이고, 75그램 경구당부하 검사 후 2시간이 지나서 혈장 혈당이 140~199mg/dL이면 내당능장애, 공복 혈장혈당이 100~125mg/dL이면 공복혈당장애다.

40세 이상의 모든 성인과 가족력과 과음 등 당뇨병 위험인자가 있는 30세 이상 40세 미만 성인은 공복혈당 혹은 경구당부하검사로 당뇨병의 선별검사를 실시한다.

- 대한당뇨병학회 당뇨병 진단지침

■ 부작용 적은 당뇨 약은?

합병증 예방을 막기 위해서는 조기치료가 필요하지만 여전히 약물복용이 부담스러운 가장 큰 이유는 부작용 때문이다.

장기 당뇨 약 복용으로 인한 부작용 중 대표적인 것이 인슐린 투여로 인한 체중의 증가다.

강남성모병원 내분비내과 차봉연 교수는 "인슐린 사용은 대부분의 경우 심각한 체중 증가를 일으켜 치료에 방해가 될 수 있다"고 언급했다. 그런데 국제임상연구지(International Journal of Clinical Practice) 최신판에 제2형 당뇨병환자가 하루에 한번 투여하는 인슐린 제제 레버미어를 사용해 체중의 증가 없이 효과적으로 혈당을 조절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게재됐다.

연구 결과, 참여환자 중 약 82%가 하루 한번의 레비미어 요법을 통해 체중의 증가 없이 혈당 강하효과를 봤다.

제2형 당뇨병환자의 경우, 대부분 인슐린 요법을 시작한 첫해에 2.5~7.7kg의 체중증가를 경험한다. 그러나 이번 연구에서 68%의 환자들은 레버미어를 사용하는 동안 체중의 증가가 나타나지 않았고, 13%의 환자들은 오히려 체중이 3킬로그램 이상 감소했다.

차 교수는 "이번 연구는 약효의 감소 없이 당뇨 환자의 체중조절이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했다"며 "레버미어는 인슐린 치료를 처음 시작하는 단계의 환자들에게 특히 유용하다"고 말했다.

도움말: 한림대 한강성심병원 내과 유형준 교수, 이대목동병원 내과 성연아 교수,



전세화 기자 cand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