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족'과 '당신네 식구들'


얼마 전 TV 오락프로그램에서 한 연예인이 자신의 결혼 상대자를 구하면서 자신과 결혼하게 되면 "홀 시어머니와 시누이들 그리고 '백수'인 조카들과 곧 태어날 조카손자까지 줄 수 있다"고 말하여 다른 사람들을 크게 웃기는 것을 보았다.

물론 이는 그 연예인 특유의 입담이겠으나, 이 연예인의 말대로라면 그가 결혼하는 목적 중 상당 부분은 자신의 가족의 시중을 들어줄 사람을 고르는 것처럼 들린다.

유교의 영향을 많이 받은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효도는 백 가지 행실의 근본'으로 배워왔다. 이런 점에서 우리나라의 전통적 가족관과 도덕윤리는 세계적으로 자랑할 만하다.

부부와 상담을 하다 보면 '우리 가족'에 대한 남편과 부인의 인식이 다른 경우를 종종 경험한다.

부인이 말하는 '우리 가족'은 부부를 중심으로 하는 핵가족인데 비해서, 남편이 말하는 '우리 가족'은 남편 자신의 부모를 중심으로 하는 남편의 혈연 대가족을 의미한다. 이런 남편은 부인의 혈연 가족을 '당신네 식구들'이라고 부르면서, 자신들의 효도할 대상은 남편 자신의 부모로 한정하여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더욱이 이런 남편은 '그 효도'를 자신이 손수 실천하기 보다는 자신의 부인을 대리인으로 내세워 부모형제에게 잘하도록 요구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래서 부인을 선택할 때 '착하고 부모를 공경하며 형제간에 우애할 줄 아는 여자'를 당연한 조건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효자치고 나쁜 사람 없다'는 말이 있지만, '효자 남편의 아내는 괴롭다'는 말도 생겨났을 것이다.

부모의 은혜에 대한 감사와 정성이 잘못일 수는 없다. 문제는 '효'가 본래의 의미를 잃고 부모에 대한 의존 수단이거나, '자기 가족'이라는 조직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강제될 때 나타난다.

이 경우 본질적인 내용보다는 형식이 중요시되어 개인의 자발적 의사가 무시되고, 그 역할 부담 역시 상대적인 약자에게만 지워지는 결과를 낳게 된다. 실제로 효도의 대부분은 가정 내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바깥 일을 하는 남편보다는 가정을 맡고 있는 부인에게 많은 기대와 책임이 주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어 보였다.

그러나 사회가 발전하고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높아져 갈수록, 많은 부인들이 과거 전통사회에서 당연하게 생각되던 역할을 더 이상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게 되었다.

최근에는 부인의 지나친 친정 의존과 처가의 간섭 때문에 가정 생활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남편들이 늘고 있는데, 이 남편들의 고충은 과거의 며느리들이 겪었던 것과 본질적으로 별반 다르지 않다. 즉 '자신이 원하지 않는 효도'는 남녀 누구에게나 괴로운 것이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가정의 모습은 계속 달라지고 있다. 현대는 미혼 독신자 또는 미혼 동거인 가정뿐 아니라 한부모 가정, 재혼 혼합가정, 동성부모 가정 등 여러 형태의 가정이 출현하고 있어서 대가족과 핵가족의 분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또 입양이나 위탁 가정이 많아지고 대리모나 기증 난자 또는 정자로 출산하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혈연과 관계 없이 형성되는 가족이 낯설지 않게 되었다. 또 이런 추세와 함께 혼인 서약의 '도리'를 넘어 자신의 행복을 찾아서 이혼을 선택하는 것이 이제는 더 이상 비난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전통적 가치를 중요시하는 학자들은 이런 현상에 따른 가정의 붕괴나 해체를 우려하기도 한다. 그러나 역사를 돌아보면 획일적인 교조 체계 아래에서 보다는 혼란스러워 보이더라도 다양한 여러 의견과 실험을 통해서 인류는 발전하고 보편적 진리에 더 가까워질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흔들리는 것처럼 보이는 현시대의 부부관계와 가정생활도 결국 개인의 '자유'와 '사랑'을 중요시하는 이상적인 모습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자신의 부모형제에게 배우자가 정성을 다해주기를 기대하는 사람은 '효의 도리'를 설명하기보다 배우자를 사랑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그리고 이런 모습이 효도의 본질에 더 부합하는 것이기도 하다.


입력시간 : 2008-11-30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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