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 요리학교 음식 맛 좀 볼까코스로 각각 5~6가지 전채·메인·디저트서 골라 먹는 재미가 있다

세계 최고 명성의 프랑스 요리학교 ‘르 꼬르동 블루’. 요리 교육 기관인 이 곳에서 직접 음식을 만들어 팔지는 않을까? 음식에 대해 잘 가르치는 것 만큼 만드는 솜씨도 대단할 것 같은데….

많은 이들이 한 번쯤은 가져 볼 만한 기대 사항이다. 하지만 더 이상 그렇게 궁금해 하거나 기다릴 필요까지는 없을 듯 하다. 왜? 이미 서울 한 복판에 현실화 돼 있기 때문이다.

서울 여의도 LG타워 건너편에 자리한 CCMM빌딩 12층. 서울시티클럽으로도 불리는 이 곳 한 켠에 프렌치 레스토랑 하나가 최근 들어섰다. 이름은 ‘시그너쳐스(Signatures)’, 르 꼬르동 블루가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직접 운영하는 레스토랑이다.

그런데 왜 레스토랑 이름에 그 유명한 ‘르 꼬르동 블루’란 단어를 가져다 쓰지 않을까? 아니, 들어가 있다. 입구에 쓰여진 상호를 조금 자세히 들여다 보면 ‘시그너쳐스’ 앞에 르 꼬르동 블루란 단어가 리본 모양과 함께 적혀 있다. 단지 크기가 작아서 눈에 덜 띄는 것일 뿐.

굳이 르 꼬르동 블루를 놔두고 ‘시그너쳐스’를 메인 이름으로 갖다 쓴 이유는 단어의 의미 그대로다. 음식에 대한 ‘서명’, 즉 다른 말로 맛을 ‘보장’한다는 암시인 것.

그럼 르 꼬르동 블루가 자신의 이름을 내건 레스토랑은 몇 개나 되는 지도 궁금하다. 전세계에 걸쳐 40개 가까운 학교를 운영하고 있는 학교이니 만큼 비슷한 정도일 것으로 생각하기도 싶다. 하지만 정식 르 꼬르동 블루 레스토랑은 하나 뿐. 캐나다 오타와에 있는 역시 같은 이름의 ‘시그너쳐스’이다. 이 곳은 북미 레스토랑 가이드에서 별 5개를 획득했을 만큼 벌써 유명 레스토랑으로 자리매김 돼 있다.

하지만 오타와의 시그너쳐스는 르 꼬르동 블루 요리학교 안에 세워진 레스토랑이라 일반 레스토랑과는 성격이 다르다. 때문에 학교와 독립적으로 세워진 르 꼬르동 블루의 레스토랑은 서울이 사실상 세계 처음이자 유일한 곳인 셈이다.

시그너쳐스의 오픈을 위해 한국에 파견된 쟈끄 드뻬르 셰프(총주방장)가 리드하는 르 꼬르동 블루 레스토랑의 특색은 우선 메뉴판에서부터 드러나기 시작한다.

블루란 이름에 걸맞게 푸른 색 표지의 메뉴판을 펼쳐 들면 가장 먼저 크게 보이는 것은 세 단어. ‘앙트레(Entree), ‘플랫(Plat)’, 디저트(Dessert)다. 앙트레는 우리 말로 전채 요리, 식전에 식욕을 돋우기 위한 메뉴고 여기서는 메인 요리를 플랫이라고 부른다.

메뉴판에서 느껴지듯 식사는 주로 코스로 이루어진다. 가장 간단한 코스는 전채와 플랫, 디저트 3가지. 조금 다채로운 코스는 플랫이 생선과 육류, 2가지로 짜여져 있거나 전채가 따뜻한 요리와 차가운 요리 2가지로 구분돼 있다.

또 치즈가 디저트에 앞서 하나 더 추가돼 있기도 하다. 때문에 차를 제외하고서 가장 긴 코스에 나오는 음식은 모두 6가지. 보통 수프나 샐러드가 전채와 메인 사이에 별도로 적혀져 있는 코스 메뉴가 많은데 여기서는 찾아 볼 수 없다. 대신 수프류는 앙트레 항목에 편입돼 있고 샐러드는 앙트레나 메인 요리에 함께 나오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코스 요리를 시키는 방식이 조금 독특하다. 보통 코스라면 미리 짜여진 음식들로만 구성된 몇 개의 코스 메뉴 중에서 고르는 것이 일반적. 하지만 여기서는 코스 마다 하나씩을 다 따로 시키도록 한다.

전채는 앙트레 코너, 메인은 플랫, 디저트는 디저트 항목에서 각자가 원하는 것을 주문할 수 있도록 한 것. 각 항목마다 대 여섯 가지의 메뉴가 줄줄이 적혀 있어 고객은 고르는 ‘기쁨과 고민’을 함께 느껴야만 한다. 주방 입장에서야 힘들겠지만 손님들의 다양한 입 맛을 위해 셰프가 기꺼이 수고를 아끼지 않는 덕분이다.

메뉴 구성과 조리는 전적으로 프랑스인 셰프 쟈끄 드뻬르가 책임진다. 레스토랑 오픈을 위해 지난 4월부터 한국을 찾은 그는 실내 인테리어 공사 이후 최근 한 달간 시험 가동 기간을 가졌다.

이 때 주방에서 직원들이 자신이 요구하는 기준에 맞지 않는 수준의 음식을 내놓지 못할 때 그는 ‘음식들을 쓰레기통에 내팽개치는’ 과감한(?) 행동도 전혀 서슴지 않았다. 당하는 직원이야 ‘쓴 맛’이겠지만 그만큼 음식의 맛에 충실하려는 장인 정신을 보여준다는 해석이다.

그가 내놓는 메뉴들은 결코 익숙치 않아 보인다. 우선 거의 모든 메뉴 이름이 한결같이 길다.

‘프랑스 디예프 스타일의 홍합 크림 스프와 성게알을 올려 구운 크루통’ ‘헤이즐 넛과 건자두를 넣은 오리 발로틴, 바삭한 크루통과 로켓 샐러드<국내산 오리>’ ‘부드럽게 익힌 돼지 족과 송이버섯, 살사피를 넣은 부르고뉴 스타일의 쇠고기 스튜’ 등…. 기존에 국내에서 일반에게 익숙한 음식들을 내놓기 보다는 프랑스적인 메뉴 구성을 한 때문.

“이름만 어렵지 모두 맛있습니다. 한국 사람들 입 맛에도 맞추었고요. 처음 약간 짜다거나 향이 진하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그런 지적을 받은 후 모두 부드럽고 순하게 조정했습니다. 그렇다고 전통 프랑스 요리의 전형에서 벗어난 것은 전혀 없습니다.”

그리고 이 곳 메뉴판에는 음식 이름들이 한글 바로 옆에 불어로만 쓰여져 있다. 영어는 찾아 볼 수 없다. “제가 만드는 음식의 특성을 좀 더 정확히 표현하고 고객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원문을 그대로 실은 것 뿐입니다.” 자신이 만드는 음식에 대한 책임감과 자신감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드뻬르 총주방장은 “시그너쳐스에서 맛 볼 수 있는 모든 음식은 클래식한 프랑스 메뉴를 기본으로 하면서도 현대적인 감각으로 풀어낸 퀴진”이라고 소개한다. 또 현지화 노력도 그가 애쓰는 부분 중의 하나. 신선하고 질 좋은 국내산 식재료들을 활용하기 위해 그는 수시로 직원들과 시장 쇼핑에 나선다.

그리고 그가 특히 신경 쓰는 부분은 디저트. 아이스크림 조차 주문 후에야 비로소 만들어 내놓는 후레시 아이스크림들이다. 셔벳 또한 마찬가지. 그는 이를 위해 아이스크림 기계를 별도로 주문하기 까지 했다. “모든 음식은 주문 후 조리가 들어가야만 고객에게 신선한 맛을 선사할 수 있습니다.”

4- 아뮤즈 부슈로 나온 푸아그라(거위간)와 브레드
5- 프랑스 디예프 스타일의 홍합 크림 스프와 성게알을 올려 구운 크루통
6- 헤이즐 넛과 건자두를 넣은 오리 발로틴, 바삭한 크루통과 로켓 샐러드
7- 다양한 야채 브뤼누아즈를 곁들인 가리비 스튜
8- 조개와 그린 아스파라거스, 버섯을 곁들인 샴페인 향의 민어 찜
9- 오븐에 구운 양 갈비와 크림을 넣은 정통 감자 그라탱, 남 프랑스 레드 와인 소스와 익힌 마늘
10- 호두와 아몬드를 넣은 빵과 샐러드가 곁들여진 프랑스 산 모듬 치즈
11- 제철과일을 곁들인 다양한 아이스크림과 셔벳

◇ 메뉴

3가지 코스로 구성되는 점심 특선 세트 6만8,000원. 메뉴가 매일 바뀐다. 3~6가지로 짜여진 일반 코스는 8만~12만5,000원. (02)781-9662



글ㆍ사진 박원식기자 park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