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나쁜' 배우자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연극 '늙은부부 이야기'

공부 잘하기를 바라지 않는 학생이 없겠지만, 그들이 다 공부를 잘 하기 위한 노력을 하지는 않는다. 또 부자로 사는 것을 싫어할 사람은 없겠지만, 그들 모두 진정으로 부자가 되기 위해서 필요한 최선을 다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공부를 잘하거나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타고난 소질이나 환경, 그리고 행운까지도 필요하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마찬가지로 결혼 생활에 있어서도 누구나 행복하기를 바라지만, 그들이 모두 정말로 행복한 부부가 되기 위하여 자신이 해야 할 준비나 인내를 감당하지는 않는 것 같다.

진료실에 찾아오는 부부들을 보면, 자신의 배우자가 나쁜 사람이거나 충분히 노력하지 않아서 자신의 결혼생활이 불행해졌다고 믿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객관적으로 보기에도 함께 살기에 너무나 힘든 배우자들도 있는 것은 사실이다. 심한 경우에는 차라리 결혼생활에 대한 포기와 새로운 출발을 위한 과감한 결단과 용기가 필요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들의 대부분은 결혼생활의 만성적인 갈등에 지쳐서 더 이상 노력을 기울일 마음이 없으면서 이혼 후의 삶에도 자신이 없기 때문에 진료실에 와서 배우자의 잘못을 강조하며 배우자를 고쳐주기를 바란다. 경우에 따라서는 배우자가 달라질 거라는 기대조차 포기하고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면서 타인의 동정을 받는 것 이상의 희망을 가지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이들이 나름대로 많은 고통을 견디고 노력하였지만 그 결과가 너무 실망스러워 자포자기의 상태에 빠져있거나 상대 배우자에 대한 원망만 남아있게 된 상황에 대해서는 정말로 안타까운 마음을 갖게 된다.

빅터 프랑클은 나치의 강제수용소에서 극적으로 죽음을 벗어났던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처한 모든 상황에 대해 어떻게 반응할지를 선택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삶에서 의미를 찾아내려고 노력하는 것이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동력이다."고 강조하였다.

비록 배우자의 잘못으로 가정의 불행이 시작되었다고 인정하더라도 상대의 책임을 추궁하기만 하는 경우에는 누구도 도움을 주기가 어렵고 결국 행복을 되찾을 수 없다. 상대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스스로를 고치려고 노력한다면 좋겠지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도 않고 배우자가 바라는 것을 해주지 않는 ‘참 나쁜’ 배우자도 적지 않다.

이런 경우에도 ‘자신의 행복에 대한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는 자세로 배우자가 어떻든지 간에 자신이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지를 결정하는 수밖에 없다. 자신의 노력으로 배우자가 변할 수 있다면 가정을 위해서 좋은 일이며, 배우자가 바뀌지 않더라도 자신의 삶을 불행에서 구할 수 있다.

부부처럼 가까운 관계에서 한 사람의 태도 변화는 다른 사람에게도 쉽게 감지된다. 만성적인 갈등에 빠진 부부들은 ‘상대가 이렇게 한다면 나도 저렇게 해 주겠노라’는 조건을 걸고서 상대를 지켜보는 경우가 많다. 또 ‘지금은 상대가 노력하지만 과연 어디까지 가나 두고 보겠다’며 냉담한 태도를 버리지 않으려 한다.

그러나 위기에 놓인 결혼생활일수록 그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상대가 잘한 점은 억지로라도 찾아서 격려하고 상대의 선의에 대해서는 애써서 긍정적으로 반응하는 것이 큰 역할을 한다.

배우자의 많은 잘못에 대한 실망과 비난 대신에 비록 대단하지는 않아도 잘한 점에 대해 인정하고 감사를 표현하기 시작하면, 대부분의 사람은 더 잘하려는 마음을 갖게 되기 마련이다.

이미 불행해진 결혼생활을 벗어나기는 쉬운 일이 아니지만, 서로의 선의를 확인하기 시작하면 긍정적인 예상을 하기가 더 쉬워지기 때문에 행복에 점점 가까이 갈 수 있다. 자신은 잘못이 없기 때문에 상대가 먼저 태도를 바꾸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도 가정의 행복과 자신의 삶을 되찾기 위해서는 자신만이라도 달라지려는 노력을 기울일 만한 가치가 있다.


박수룡
입력시간 : 2009-01-02 15:21


박수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