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TV는 기본 널찍한 욕조·당구대·수영장까지… 파티세대 입맛에 딱

1979년, 호텔에 갔다 = 주한미국대사를 픽업하기 위해 호텔에 잠시 들렀다.

1989년, 호텔에 갔다 = 생일을 맞아 큰 맘 먹고 호텔 부페 식당에 갔다.

1999년, 호텔에 갔다 = 사랑스러운 그녀를 허름한 여관에서 재울 수는 없어 호텔로 갔다.

2009년, 당신은 무엇을 하기 위해 호텔로 가는가?

작년 크리스마스, 부평에 있는 박스 도로시는 세밑의 흥겨움에 취한 청춘들의 열기로 가득했다. 박스 도로시는 파티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이미 유명한 테마 모텔.

월풀 욕조와 50인치 TV, 노래방 시설이 완비된 스위트룸을 비롯해 일반 룸도 테마별로 각각 다르게 꾸며져 있다. 모텔 측이 마련한 크리스마스 파티에 당첨된 고객들은 이날 앞마당에서 신나게 장기자랑을 펼쳤다. 화곡동에 있는 메이트 호텔도 마찬가지.

수영장이 딸린 복층의 스위트룸은 20대의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하고자 하는 젊은 여성 7명의 아지트가 되었다. 야외 테라스가 있는 다른 스위트룸에서는 5인 가족이 바비큐 파티를 열었다.

호텔의 개념이 바뀌고 있다. 출장 나온 비즈니스맨들의 숙소, 또는 ‘쉬다 가고 싶은’ 연인들의 뜨거운 은신처로만 기능했던 시절과는 딴 판이다. 그때야 별다른 시설이 필요 없었다.

있어야 할 것은 침대 또는 요 정도. 요즘은 대형 벽걸이 TV는 기본, 널찍한 욕조에, 포켓볼 당구대, 수영장까지… 처음 보는 이들은 도대체 여기가 뭘 하는 곳인지 어리둥절할 뿐이다.

■ 갈 곳 없는 청춘들의 멀티 엔터테인먼트 공간

변화의 시작은 아무래도 파티 문화 때문이다. 연말이면 전염병처럼 도는 만남의 욕구. 사랑하는 사람들과 특별한 날을 보내고자 하나 특급 호텔의 럭셔리 패키지를 감당하지 못하는 가난한 청춘들은 그저 누군가의 집이 비기를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파티가 끝난 다음날 피자 박스를 치우고 바닥에 흘린 맥주를 닦는 것은 물론 본인들의 몫이다.

이에 발 빠르게 움직인 곳은 모텔들이었다. 낡은 방들을 널찍하게 트고 특유의 퀴퀴한 냄새부터 없앴다. 라텍스 침대를 들이고 초고속 PC를 갖추었으며 월풀 욕조를 들이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았다. 숙박비는 비싸봤자 10만원 대 초반. 반응은 생각 이상이었다.

굳이 연말만 날인가. 그 이와 처음으로 첫 눈을 맞은 날, 7공주파 창단 기념일, 차장으로 승진한 날 등등. 저마다의 기념일을 싸고 손쉽게 챙기기 위한 청춘들의 발길이 속속히 이어졌다.

비록 바깥에는 상반신을 가리는 녹색 커튼이 잠시 기분을 찜찜하게 할지라도 발걸음을 빨리 해 방에 들어가 문을 닫으면 다른 세상이다. 음식은 싸오거나 시켜 먹으면 되고 지금부터 중요한 것은 방에 얼마나 재미있는 놀거리가 완비되어 있는가다.

역삼동을 시초로 몇몇 모텔이 입소문을 타면서 볼거리, 놀거리로 무장한 획기적인 모텔들이 경쟁적으로 나타났다.

세계 각국을 테마로 모든 룸을 다르게 꾸며 놓았는가 하면, 방 안에 배 모형을 들여 놓아 선상 위에서 잠드는 느낌을 주기도 했으며, 급기야는 실내 수영장에 계단을 뛰어 올라 2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복층형 룸까지 등장했다. 가격도 천정부지로 올라 70만원대 방까지 나왔지만 수요는 끊이지 않았다.

이들은 기존의 잠자리만 제공하는 모텔과 구별하기 위해 스스로를 부티크 호텔, 세미 호텔, 테마 모텔 등으로 칭하고 파티 고객들을 위한 색다른 놀거리를 제공하는 데 골몰했다.

그렇다고 기존의 연인 고객들의 발길이 끊어진 것은 아니다. 이왕이면 예쁘게 꾸며진 곳에서 사랑을 나누고 싶은 여자와 굳이 그녀의 기분을 흐리게 해 집에 가버리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남자의 당연한 결론이었다.

모텔이 파티 고객을 빠르게 흡수하는 것을 보며 1급 호텔이 긴장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해외 체인으로 운영되는 특급 호텔들이야 본사의 방침을 따르기에 바쁘겠지만 토종 호텔들은 멀쩡히 눈 뜬 채 이 거대한 시장을 빼앗길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작년 9월에 문을 연 을지로의 아카시아 호텔은 건축 단계에서부터 3개의 파티 스위트룸을 포함시켰다. 복층 구조에 히노끼 탕(일본식 목조 욕조)을 마련하고 대형 TV와 PC 2대, 그리고 닌텐도를 설치했다.

명색이 관광호텔 급이라(아직 서류 계류 중이다) 모텔들처럼 알록달록하게 방을 꾸밀 수는 없지만 파티나 비즈니스 모임을 가지려는 고객들에게 최대한 편의를 제공하려고 한다.

“기존의 운영 방식에만 매여 있을 수는 없습니다. 고객들이 재미를 원한다면 호텔 측에서 그것을 만족시켜줘야 할 의무가 있죠. 호텔에서는 생수 한 병에도 돈을 지불해야 한다는 고정 관념도 없앴습니다. 1급 호텔들도 한국인의 정서에 맞게 바뀌고 있는 셈입니다”

아카시아 호텔 정진만 매니저의 말이다. 이 호화로운 변화의 끝은 어딜까? 다음은 숙박업계 종사자들의 다양한 의견이다.

“UCC 응모전 같은 것이 있을 때 찍을 장소가 마땅치 않은데 모텔이 적합하지 않을까요?”

“소규모 가족 모임을 갖는 겁니다. 엄마를 하루동안 해방시켜 주고 아이들은 풀장에서 마음껏 놀라고 하죠”

“누드 사진을 찍는 장소로는 어떨까요? 젊은 날의 추억을 간직할 수 있는 누드 사진이요”

“잡지 화보 촬영이나 영화 포스터 촬영 요청이 점점 많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아예 촬영을 위한 룸을 따로 만드는 것도 괜찮은 것 같네요”

굳이 몇 가지 모임에 용도를 한정시킬 이유는 없다. 모텔은 은밀하고 저렴하면서 특별한 공간을 원하는 모든 모임의 대안이 될 수 있으니까.

◇ 혼숙은 불법일까?

남자 2명과 여자 3명이 널찍한 방을 빌려서 파티를 열었다. 파티가 끝난 후 이들이 한 방에서 자는 것은 불법일까, 아닐까?

때론 안 된다고 내쫓고 때론 순순히 받아주는 업소의 태도에 아리송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원칙적으로 말하면 성인 남녀의 혼숙을 막는 법은 없다. 다만 집단 혼음을 하는 것은 불법이다.

그러나 그들이 안에서 무엇을 하는 지 알 도리는 없다. 만에 하나 그들이 남자 둘과 여자 셋이 할 수 있는 가장 문란한 행각을 벌였고 그것이 하필 외부로 알려졌다면 그때에는 문제가 되며 업주가 처벌을 받게 된다. 죄명은 풍기문란. 그러므로 사전에 잡음을 방지하기 위해 아예 혼숙을 금지하는 업소도 있는 것이다.

◇ 후회 없는 파티를 위한 부티크 호텔 선택하기 ◇

8- 역삼동 젤리호텔

방 별로 테마를 달리 한 부티크 호텔의 원조. 2004년 오픈했지만 6개월에 한번씩 리뉴얼을 해 낡은 느낌은 없다. 새로 생기는 호텔들에 비해 저렴한 가격에 맘 편히 쉴 수 있는 곳을 찾는다면 추천.

연회비 7만원을 내는 VIP 고객들에게는 수시로 할인 이벤트를 진행하며 케?? 와인, 선물 등을 제공한다. 포켓볼 당구대로 유명해진 젤리 세븐룸에는 4명이 들어갈 수 있는 900만원짜리 월풀 욕조가 있으니 꼭 이용해 볼 것.

Tip: 부티크 호텔이라고 해서 환상의 인테리어를 기대하고 갔는데 잉? 입구에 웬 칸막이 요금소? 원조니 만큼 연식이 오래 되어 어쩔 수 없이 군데 군데 옛 흔적이 남아 있다. 하지만 방에 틀어 박혀 다음날까지 나오지 않을 생각 아니었나? 그냥 얼른 들어가자.

문의: 02-553-4737 www.jellyhotel.co.kr

9- 부평 박스 도로시

브라이덜 샤워, 일명 처녀 파티 장소로 널리 알려진 곳. 파티 박스는 친구들과 캐주얼한 파티를 하기에 좋고, 쥬얼 박스는 함께 딸려 있는 야외 정원까지 넉넉한 공간을 자랑한다.

드레스를 대여해주기 때문에 젊은 여자들이 모여 마음껏 공주 기분을 내기에는 제격이다. 숙박업소 인테리어로 시작한 회사라 전체적인 디자인이 톡톡 튄다. 각 방을 혈액형별 행운의 색깔로 꾸며 굳이 스위트 룸이 아니라 일반 객실에 묵더라도 심심하지는 않을 것.

Tip: 부평 박스 도로시를 가보고 반해서 다른 지역의 박스 도로시를 찾았는데… 부평점과 너무 다른 시설과 서비스에 놀랐다고? 현재 8개의 지점이 있지만 각 지점마다 독자적으로 운영되고 있어 동일한 퀄리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번 2월에 오픈할 하남점은 직영으로 운영될 예정이라니 기다려 보자.

문의: 02-454-8784 www.vaxdoroci.co.kr

10- 화곡동 메이트 호텔

<우리 결혼했어요>의 김현중 황보 커플의 집으로 유명해진 수원 메이트 호텔이 업그레이드 버전의 2호점을 냈다. 작년 11월 오픈해 모든 시설이 최첨단. 눈 질끈 감고 최고의 날을 보내고 싶은 이들에게 적합하다.

65평의 챠이룸에서는 대형 수영장에서 물놀이를 즐길 수 있고, 카페 로얄룸에서는 옥외 정원에서 바비큐 파티를 할 수 있다. 냉장고도 무소음으로 여기저기 신경 쓴 흔적이 역력하다. 전 객실에 커플 PC가 설치돼 있으며 월풀에서 영화를 감상할 수 있다.

Tip: 일류 호텔 뺨치는 인테리어 만큼 ‘헉’ 소리나게 비싼 것이 문제. 하긴 챠이룸 하나에만 10억원이 들었다고 하니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루 숙박비가 70만원이지만 5인 기준이니 두 사람이 묵는다고 하면 가격을 대폭 낮출 수 있다. 특별한 날에는 시도할 만한 듯.

문의: 02-2605-1700 www.matehotel.net

11- 을지로 아카시아 호텔

아무리 예뻐도 모텔은 싫다? 그렇다면 여기를 주목하라. 호텔의 뻣뻣한 체면을 버리고 젊은 고객들의 취향을 만족시키려는 노력이 엿보이는 아카시아 호텔. 물이나 이온 음료 등은 무료로 제공되며 따로 요금을 내야 했던 TV도 공짜다.

복층 구조로 된 40여평의 파티 스위트룸에서는 63인치의 대형 TV를 통해 영화를 보거나 닌텐도 게임을 즐길 수 있다. 숙박비는 50만원이지만 파티 고객에게는 16만원짜리 일반 룸과 묶어 45만원에 제공한다. 게다가 조식 뷔페는 8,000원 할인 받은 1만원에 즐길 수 있으니 일석이조.

Tip: 파티 공간을 제공하기는 하지만 규모상 아무래도 ‘모텔급’보다는 제한이 많은 편. 새하얗게 바른 벽에 그을음이 생길 수 있으니 촛불은 안 되고 풍선도 벽에 붙이는 건 금지. 공중에 띄우는 것만 가능하다. 대신 예식홀이 딸려 있어 핑거 푸드 등의 간단한 음식은 손쉽게 준비할 수 있다.

문의: 02-2277-4917 www.hotelacac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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