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쏟아지는 잠의 폭탄 '기면병'
단순 피로와 혼동하기 쉬워…치료하지 않으면 증세 호전 없어




황수현 기자 sooh@hk.co.kr
사진=임재범 기자 happyyjb@hk.co.kr





‘아.. 분명히 일하는 중이었는데 또 언제 잠이 든거지?’

재빨리 주위를 살피는 신입사원 L씨. 다행히 본 사람은 없는 것 같지만 이번만 잘 피해갔다고 좋아할 일은 아니다. 지난 주에는 임원들이 모두 참석한 회의에서 졸고 있는, 아니 아예 대놓고 자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두려움을 경험하지 않았던가.

점심을 많이 먹어서? 아니면 만성 피로? 후끈하게 달궈진 실내? 나는 도대체 왜 이렇게 졸린 걸까?

기면병. 미치도록 졸린 겨울 오후, 따뜻한 실내에서 두시간 째 컴퓨터를 마주하고 있는 직장인이라면 한번쯤 떠올릴만한 단어다.

특히 졸음의 강도가 예전 같지 않을 때, 커피나 차가운 바깥 바람으로도 여전히 눈꺼풀이 무겁기만 하다면 이게 혹시 말로만 듣던 기면증이 아닐까 의심이 드는 것이다. 물론 이런 생각은 쌓여 가는 업무와 함께 금세 책상 저쪽으로 치워지고 만다. 피를 보지 않는 이상 병원에 가는 것도 눈치 보이는 바쁜 현대인들에게 졸음을 가지고 고민할 시간은 많지 않으니까.

기면병인지 아닌지는 자신의 졸음이 적절한 상황에서 찾아 왔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나 수업 시간에 졸았어”는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지만 “나 수능 볼 때 잤어”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기면병은 시험 시간, 사장과의 일대일 미팅, 심지어 길거리를 걸을 때 조차 사정을 봐주지 않고 찾아 든다. 전문가들이 ‘슬립 어택(sleep attack)’이라고 부르는, 기습적으로 강력하게 찾아오는 잠이 특징이다.

또 하나의 특징은 조는 것이 아니라 잠이 든다는 것. 자신이 언제 잠들었는지 모르게 곯아 떨어져 있고, 잠깐 사이지만 만일 꿈이라도 꿨다면 기면병일 가능성이 대단히 높아진다. 마지막으로 크게 웃거나 흥분했을 때 갑자기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 않은 적이 있다면 반드시 병원에 찾아가 볼 것을 권한다. 기면병일 확률이 90% 이상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기면증’으로 알려진 이 병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 원인이라든지 증세가 명확하지 않았다.

다만 길거리를 걷다가 푹 쓰러져 자는 모습이 영화나 만화를 통해 대중에게 보여지면서 기억상실증만큼이나 흥미로운 병으로 알려졌을 뿐이다. 때문에 시나리오 작가나 소설가들에게는 시도해보고 싶은 소재가 되지만 정작 병을 앓는 장본인은 죽을 맛이다.

기면병을 앓고 있는 한 대학생은 고등학교 1학년 때 처음 증세가 나타났는데 그 때문에 3년 동안 반석차가 20등 이상 뒤로 밀려났다고 했다. 병인 줄 알았다면 더 일찍 병원을 찾았을 것이라고 땅을 치며 후회하지만 돌이키기에는 늦었다.

중요한 미팅이나 위험한 생산직에서 졸음을 참지 못해 직장에서 해고되는 경우도 있다. 잘리는 것도 억울한데 주변의 동정은커녕 ‘얼빠진 놈’ ‘게을러 터진 놈’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써야 하니 억울하기 짝이 없다.



■ 유전? 환경? 기면병은 왜 걸리나?

그렇다면 기면병은 왜 걸리는 것일까? 걸렸다면 완치되기는 하는 걸까?

나쁜 소식이지만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원인은 확실치 않으며 완치되는 방법도 아직 나와 있지 않다.

얼마 전 미국 스탠포드 대학에서 낮에 깨어 있게 하는 호르몬(하이포크레틴)이 부족해 생긴 병이라는 사실을 밝혀 냈지만 호르몬이 왜 부족한 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연구중이다. 남녀의 비율은 비슷하고 특별히 지역이나 계절을 타지 않으니 원인을 밝히기가 어렵다.

대부분의 환자가 10대 후반에 발병했다는 것이 공통점이라면 공통점인데, 무서운 사실은 한번 발병이 되고 나면 자연스럽게 증상이 호전되는 일은 없다는 것. 국내 환자들 중에는 50년 이상을 기면병 환자로 살아온 할머니도 있다.

따라서 기면병이 의심된다면 지체하지 말고 병원을 찾아가 검사를 통해 약물을 처방 받아야 한다. 다행히 현재 나와 있는 기면병 치료약은 상당히 효과적이라 증세가 심각한 환자라 해도 70~80% 가량 호전이 가능하다.

물론 계속 복용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고 두통, 식욕부진 등의 부작용도 따를 수 있다. 이밖에도 전문가들은 15분씩 낮잠을 잘 것을 권유한다. 졸음을 참을 수 없다면 오전과 오후에 일정한 시간을 정해 놓고 토막잠을 자라. 그러면 한결 개운하게 일상 생활을 할 수 있다.

기면병인지 아닌지도 중요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밤에 잘 자고, 낮에 잘 깨어 있는 지의 여부다. 꼭 기면병이 아니더라도 밤에 수면을 방해해 낮 활동에 지장을 주는 수면 질환은 셀 수 없이 많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코골이와 수면무호흡증, 하지불안증후군 등으로, 푹 자지 못하기 때문에 낮에 참을 수 없이 졸리는 증상은 기면병과 마찬가지다. 이런 경우에는 기면병과 치료 방법도 다르고 처방 약물도 다르니 수면센터에서 시행하는 수면다원검사 등을 통해 자신의 정확한 증세를 아는 것이 치료의 시작이다.

◇ "깬 채로 꿈을 꾼다고?"

기면증 환자들을 다른 수면 장애 환자들과 구분 짓는 가장 큰 특징은 렘(REM) 수면이다. 사람들은 렘 수면 중에 꿈을 경험하기 때문에 ‘꿈꾸는 잠’으로도 불리는데, 일반인들이 자는 도중에 렘 수면을 경험한다면 기면증 환자들은 시도 때도 없이 렘 수면에 빠지는 것이 문제다.

만약 눕자마자 렘 수면에 빠졌다면 깬 채로 꿈을 꾸는 격이라 꿈 속의 이미지를 환각으로 착각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정신병과 혼동해 속앓이를 하는 이들도 많지만 엄밀히 정신병과는 구분되어야 한다.

도움말: 가톨릭대학교 성빈센트 병원 수면센터 홍승철 교수/미국수면의학전문의 의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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