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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테이스트] 프랑스와 한국 '와인 입맛' 다르네
보르도 최고 빈티지 2000, 2003, 2005제치고 2002 지존등극, 예상외 결과




박원식 기자 parky@hk.co.kr  



브란깡뜨낙 와인 빈티지 버티컬 테이스팅
당대 명품 와인의 본산지라고도 할 수 있는 프랑스 사람들과 한국 사람들의 와인 입 맛은 과연 같기만 할까? 만약 다르다면 어떤 차이가 있을지도…!

그래서 국내의 내로라 하는 와인 전문가들이 모여 '재미있는 실험'을 해 봤다. 이른바 '블라인드 테이스팅(Blind Tasting)'. 눈을 가리고, 아니 정확히는 와인 병의 라벨을 가린 채 잔에 따른 와인들을 마시고 '어느 와인이 가장 괜찮은지'를 가늠하는 자리다. 그리고 나온 결과는 한 마디로 '충격'이다.

와인전문지 '와이니즈' 주최로 최근 열린 '버티컬(Vertical) 테이스팅'. 프랑스 보르도 그랑크뤼 2등급 와인인 샤또 브란 깡뜨낙의 2000~2007년 빈티지 와인을 비교 시음해 평가하는 자리로 마련됐다.

보통 블라인드 와인 테이스팅이라면 국가간에, 혹은 같은 지역이나 품종 내에서 여러 와인들을 비교 시음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것이 상례이다. 하지만 이번 테이스팅은 한 와이너리에서 생산된 같은 이름의 와인들을 연도별로 평가한다는 점에서 독특한 시도로 주목을 끈다. 버티컬이란 단어도 '평가가 연도별로 내려진다는' 이유로 붙여진 이름이다.

평가에는 국내에서 '와인 맛을 안다'는 와인전문가들 33명이 총출동했다. 프랑스 대사관의 와인담당 한관규 상무관, 양조학의 권위자인 한국 와인아카데미 김준철 원장, 대한항공 와인사업부의 방진식 박사를 비롯 국내 유수의 호텔 및 레스토랑 소믈리에 및 와인칼럼니스트들이 평가단으로 참여했다.

비교 시음은 샤또 브란 깡뜨낙의 최고 빈티지(Vintage)를 찾는 블라인드 테이스팅으로 진행됐다. 와인의 레이블을 가리고 똑 같은 잔에 따른 와인들을 마셔서 각각 채점하는 방식. 각각의 와인 잔에는 일련 번호 만이 매겨져 있고 와인 향이 쉽게 달아나지 않도록 뚜껑이 덮혀 있을 뿐. 2000년산 와인부터 2007년까지 모두 8년 간에 걸쳐 생산된 8가지 와인들이 평가 대상이 됐다.

당초 기대했던 결과는 2000년 산 와인과 2003년, 그리고 2005년 와인이 '가장 좋은 점수'를 받을 것이라는 예상이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결과는 '엉뚱하게' 나타난 것. 전혀 예상치 못했던 2002년산 와인이 평가자들로부터 최고 점수를 받았다. 한 마디로 국내 와인 전문가들에게 2002년 산 빈티지 와인이 '가장 맛이 좋은 와인'으로 선정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보르도 최고의 빈티지라면 2000년과 2003년, 그리고 2005년이 꼽힌다. 이들 연도에 재배되고 수확된 포도의 작황이 제일 좋고 이들 포도로 담근 와인의 품질과 맛 또한 가장 뛰어나다는 얘기. 이는 프랑스 내에서는 물론, 가히 전세계적인 '기준'으로까지 자리잡고 있다 해도 결코 틀리지 않다. 국내에서도 '와인을 꽤 마신다'는 전문가들도 같이 공언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하지만 일단 국내에서 '맛에 관한한' 샤또 브란 깡뜨낙 2002가 최고의 와인으로 선택됐다. 그 뒤를 이은 것은 2005와 2006 빈티지 와인. 2위를 차지한 2005년산 와인 만이 '프랑스인들의 입맛'과 '정확히 일치'했고 2006 빈티지 와인 또한 3위를 당당히 차지하며 '다크 호스'로 떠올랐다.

예상과 전혀 달리 나온 이번 와인 평가가 특히 주목을 끄는 것은 물론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 동안 귀에 익숙했던' 기존의 최고 빈티지 와인들이 아닌 '신생(?)'와인이 '맛의 지존' 자리에 올랐다는 사실.

놀란 것은 평가에 나선 와인 전문가들이나 주최 측만이 아니다. 블라인드 테이스팅 시간 내내 함께 했던 샤또 브란 깡뜨낙의 와인 메이커인 앙리 뤼르통 또한 "(결과가) 매우 흥미롭다"고 소감을 밝히면서도 '당황스런' 표정을 전혀 감추지 못했다. 이를 의식한 듯 주최 측도 이들이 매긴 점수를 3번 씩이나 재확인을 거듭하며 발표했다.

특히 평가자들은 와인의 색, 맛, 향에서부터 와인이 가진 숙성력까지 정확하고 예리하게 포착하기 위해 40여분 동안 집중력을 발휘해 평가에 임하는 모습을 보였다. 평가지 또한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 주로 사용하고 국제양조협회가 공인한 '평가 양식'을 그대로 사용, 공정성을 기했다. 평가자들은 수십 가지 이상의 항목에 일일이 꼼꼼하게 점수를 매기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버티컬 테이스팅의 예상치 못한 결과가 드러난 이후 여전히 논란도 분분하다. "한국 사람들의 자극적인 음식과 입 맛이 작용했다" "와인이 시간이 지나고 디캔팅 등 여러 과정을 거치면서 조금씩 맛이 달라질 수도 있다" 등등 다양한 해석들도 나오고 있다.

결과에 대해 앙리 뤼르통은 "한국의 와인전문가들은 정직하게 이 와인들을 평가했으며, 그 결과 또한 정직하다"고 덧붙였다. 전체적으로 공통된 의견은 "숙성 연도 마다 디캔팅하는 시간에 따라 와인 맛이 달라질 수 있다" "지금 평가 후 한 시간 후 또 평가를 하면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빈티지마다 동일한 디캔팅 시간이 주어지지 않은 부분도 있다" 등.

어쨌든 1위를 차지한 샤또 브란 깡뜨낙 2002는 와인평가단들로부터 '타닌과 아로마가 풍부한 와인으로 장기 숙성력이 있는 잠재된 명품와인' 이라는 평을 받았다. 당장 보여주는 와인의 모습보다는 발전가능성 있는 잠재성을 인정 받아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는 후문.

2위를 차지한 샤또 브란 깡뜨낙 2005는 보르도 최고의 수확기였던 만큼 부드러운 타닌과 섬세한 구조를 보여준다는데 대다수의 견해가 일치했다. "What a Margaux(역시 마고야)!"라는 찬사를 받았다. 샤또 브란 깡뜨낙 2006은 훌륭한 균형, 긴 여운, 장기 숙성력, 풍부한 아로마를 가진 와인이라는 평을 얻으며 3위를 차지했다.

이번 블라인드 테이스팅은 국내 와인 전문가들만을 대상으로 나온 결과라는 점에서 의미가 결코 작지 않다. 아무래도 와인 맛에 일가견이 있다는 전문가들의 평가 결과가 일반 한국인들의 입맛을 어느 정도 반영할 수 있다는 짐작 때문. 또 샤또 브란 깡뜨낙 한 와인에만 국한되기 보다는 보르도 와인이나 프랑스 와인에 전체적으로 일정 부분 적용될 수 있는 소지도 담겨 있다.

이에 대해 와인업계에서는 "이번 평가는 와인 맛의 우열을 따지려는 절대적인 가늠자를 확보했다기 보다는 와인이 명성에 좌우되지 않고 펼칠 수 있는 다양한 맛의 세계를 입증한 것"이라는 해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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