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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의사가 쓰는 '사랑과 전쟁'] 통제불가능한 분노에서 벗어나자






배우자에 대한 분노가 너무 커서 통상적인 방법으로는 상담이 어려운 경우들이 있다. 이런 분노는 대개 긴 세월 동안 쌓인 것이라서 본인이나 주변에서 아무리 애를 써도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 배우자의 외도를 알게 되었을 때의 분노는 결혼관계를 청산하는 것으로 간단히 끝나는 것이 아니고 상대의 모든 것을 파멸시키고 싶을 정도로 크다.

시어머니나 시누이에게 호된 시집살이를 당한 부인들의 분노는 그 상황에서 자신의 편을 들어주지 않은 남편에게 더 크게 집중되곤 한다. 남편에게 모욕과 폭력을 당한 부인의 분노는 남편이 나이가 들어 약해질 때를 기다려온 듯 앙갚음처럼 나타난다.

이들의 분노는 상대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면서 앞으로는 잘하겠다고 약속하는 것으로 수그러들지 않는다. 상대가 잘 하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자신이 겪은 고통만큼 상대도 겪어야만 분이 풀릴 것 같다. 이런 사람들은 진료실에 와서는 배우자의 잘못을 지적하고 자신이 얼마나 힘들게 견디어 왔는지 설명하는 것에 열심이다. 심한 경우에는 어떻게 하면 가정생활이 나아질 것인지에 대해서는 큰 관심이 없고 오히려 자신이 받은 것보다 몇 배의 고통을 되돌려 주고 싶어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때문에 부부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 제안하는 통상적인 치료방법들이 효과를 내지 못한다.

분노는 우리의 욕구나 기대가 적절히 채워지지 않거나 부당하게 상처 받고 권리를 침해 받았을 때 나타나는 정서적 신호이다. 이 신호를 통해서 우리는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낄 수 있고, 분노를 적절히 표현함으로써 타인의 잘못을 수정하도록 요구하고 자신의 정당함을 되찾을 수 있다. 때문에 분노는 잘못된 것을 바로잡게 할 수 있는 일종의 정서적 에너지로 볼 수도 있다. 분노는 상당히 큰 에너지를 가지고 있어서 이 에너지를 잘 활용하면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예를 들어 자신의 잘못된 생활습관에 대해서 분노를 느끼면 그 에너지를 이용하여 고치기 어려운 습관도 고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자신에게 잘못한 상대에 대해서는 부당함을 수정하도록 지속적이고 효과적인 요구를 할 수 있게 한다. 사실 분노가 사랑이나 감사처럼 긍정적으로 보이는 감정들보다 반드시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이 분노가 너무 커서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경우에는 '증오'라는 수준에 이르게 된다. 이 정도까지 분노가 차오르게 되면 통상적인 방법으로 상대와 화해를 하기가 거의 불가능하고 만성화된 갈등 때문에 상호관계는 더 악화되기 쉽다.

더 큰 문제는 통제력을 상실한 분노 감정은 상대보다도 자기 자신에게 더 해로울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상태에 있는 사람은 상대에 대한 의심과 미움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자신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노력을 소홀하게 되고, 정서적 과민이나 불면증 등의 정신적 장애를 갖게 되는 경우가 많다. 신체의학적 측면에서도 분노는 만성적인 스트레스와 긴장상태를 일으켜서 혈압을 높이며 심장질환을 유발하는 것은 물론 신체의 회복능력을 감퇴시켜서 알레르기성 질환이나 여러 염증 질환을 악화시킨다. 만성적인 분노 감정은 최소 9년의 수명단축을 가져온다는 연구 보고도 있다.

이런 사람들은 잘못한 상대에게로 향하는 관심을 잠시 멈추고 자신이 현재 빠져있는 통제 불가능한 분노에서 벗어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즉 자신이 응급한 장애 상태에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정신과 의사 같은 전문가를 찾아서 마음의 안정부터 되찾도록 해야 한다. 이는 마치 다른 사람이 쏜 화살을 내가 맞았을 때, 내게 화살을 쏜 그 사람을 붙잡아 보복을 하기를 서두르는 것 대신에 내 상처가 얼마나 위급한지부터 우선 돌보아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상대를 용서하거나 대가를 치르게 하는 것은 자신이 충분히 회복된 다음에 적절한 방법을 찾을 수 있다.


박수룡 백상신경정신과의원 원장 www.npspecialist.co.kr
입력시간 : 2009-02-19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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