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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 프랑스 코스요리 같은 한식 맛보세요
노영희 푸드 스타일리스트
'품 서울'오픈… 1인분씩 색깔 조형미 배치 신경써 음식 서빙, 한식 세계화 나서





황수현 기자 sooh@hk.co.kr
사진=김지곤 기자



한 끼를 때우기 위해 중국 음식을 테이크 아웃하고 이성의 마음을 사로 잡기 위해 고급 스시 바를 예약하는 일은 뉴요커들의 일상이 되었다. 그들은 달고 기름진 중국 음식에서 대륙의 풍채를 느끼고, 정갈하고 양이 적은 스시에서는 일본의 예민한 감성과 섬세한 손 재주를 짐작한다. 음식을 그 나라의 얼굴이라고 한다면 한식이 아직까지 세계화의 벽을 넘지 못했다는 사실은 새삼 안타깝게 다가온다. 무엇이 문제일까?

최근 한식당 '품 서울(POOM SEOUL)'을 오픈한 푸드 스타일리스트 노영희가 여기에 대답했다.

"건강하면서 맛도 좋기로는 한식을 따라 올 음식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널리 퍼지지 못한 이유는 세계 사람들의 주목을 끌 만한 무엇이 없기 때문이죠. 저는 그 중 하나를 비주얼이라고 생각해요"

그녀의 말처럼 한식은 건강하다. 이탈리아에서는 샐러드 위에 오일을 듬뿍 드레싱하고 프랑스 요리에는 버터가 빠지지 않는다. 음식의 풍미를 더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과정들이다. 그러나 한식의 레시피에는 기본적으로 기름이나 맛을 내기 위한 첨가물이 배제돼 있다. 그러면서도 약처럼 쓰지 않고 한결같이 입맛을 돌게 하는 것들 뿐이니 오랜 세월에 거쳐 튼튼하게 쌓은 내공이 엿보이는 음식이다. 그러나 내놓을 때가 문제다. 잡채나 전골처럼 큰 접시에 한 데 담아 여러 명이 나누어 먹는 식이다 보니 모양을 내는 것이 어렵다. 감상하며 천천히 먹는 것은 더욱 불가능하다.

'품 서울'이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내놓은 것이 한식의 코스화다. 기존의 한정식과 비슷한 부분이 있지만 단순히 순서에 따라 서빙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외국인들이 생소하게 느낄 만한 요소들을 보완해 친근하게 다가가는 것이 핵심이다. 예를 들면 이렇다. 마른 고추의 붉은 색이 지나치게 강렬해 음식 전체의 모던함을 떨어뜨린다면 과감하게 뺀다. 상 한가운데 놓여 있어 먹기 불편해 으레 남기게 되는 생선 구이는 뼈를 발라내고 명함만한 크기로 포를 떠서 새콤한 야채 소스를 뿌려 낸다. 1인분씩 소량으로 놓여지는 음식들은 색깔과 조형미뿐 아니라 배치에도 신경을 써 마치 프랑스 코스 요리를 보는 느낌이다.

1-품 서울에서 판매하는 그릇들
2-디저트로 나오는 쑥개떡과 오미자차
3-마늘 튀긴것과 간장소스를 곁들인 채끝 등심 숯불구이

한식의 맛에 감상하는 즐거움까지

지금까지 한식의 세계화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시도돼 왔다. 한식의 재료를 사용해 기존에 없던 전혀 새로운 음식을 만드는 이도 있었고, 반대로 '한국적인 것이 곧 세계적인 것'이라며 불고기와 비빔밥을 그대로 들고 나가기도 했다. 전자에는 정체성이 결여돼 있다는 비판이 따랐고, 후자 역시 생소함의 벽에 부딪혀 몇몇 긍정적인 반응에 만족해야 했다. 이번 '품 서울'의 음식도 한식이냐, 아니냐 하는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러나 노영희 대표는 이런 갑론을박이 소모적이라고 말한다.

"좋은 것을 배우는 건 당연하지 않을까요? 프랑스 요리의 예술적인 모양새가 세계적으로 전파되는데 도움이 되었다면 한식도 그 부분을 받아 들이는 겁니다. 대신 좋은 재료를 아끼지 않고 사용해서 한식의 건강함과 맛은 살리고요."

요즘 말로 표현하면 퓨전 한식이지만 워낙 퓨전이라는 단어가 여기 저기 쓰여 노 대표는 퓨전이라는 말을 쓰기를 꺼린다. 모던 한식이라는 표현도 적합하지 않다. 그래서 내세운 것이 'Korean Cuisine Now'다. 한국 음식이되 바로 지금 여기에서 만들어 낸 한국 음식이라는 의미다.

잡지사 기자 출신의 노영희 대표는 지난 93년부터 푸드 스타일링을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배우고자 96년경 유학을 준비하던 중 접촉하게 된 외국인들로부터 한식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그 중 어느 하나 확실하게 대답을 해주지 못하는 자신을 보면서 음식을 배우는 한국인으로써 한식에 대해 너무 모른다는 사실을 알고 과감하게 유학을 포기한 채 한식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녀를 가르친 사람은 유명한 요리 연구가이자 반가 음식(양반가의 음식)의 대가인 강인희 선생. 약식 하나를 만들 때도 중탕으로 7시간씩 쪄서 만드는 스승 밑에서 5년간 사사하는 동안 좋은 재료와 정성이 음식의 맛을 얼마나 좌우하는 지를 절감했다. 한식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을 가지게 된 것도 이때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한식의 세계화를 꿈 꾸지는 않았다. 그저 쉰 살이 되기 전 테이블 2~3개를 놓고 최고의 그릇에, 최고의 음식을, 최고의 스타일링으로 담아 내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꿈의 실현은 좀 더 빨리 다른 방향에서 찾아왔다. 궁중음식연구가인 한복진 교수와 전문경영인 황건중, 광주 비엔날레 총감독인 디자이너 은병수, 이렇게 세 사람이 이미 한식의 뛰어남을 세계에 알리고자 하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었던 것. 여기에 노영희 대표가 메뉴 개발, 주방 디자인, 식기를 맡으면서 합류해 4명의 공동 투자로 ㈜품 글로벌이 창립됐다. '품 서울'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향후 품 도쿄, 품 베이징, 품 파리 등으로 넓혀 나가기 위한 안테나 숍이다.

"전 세계에서 직영으로 운영할 만큼 큰 회사는 아닙니다. 일단 저희가 서울 지점을 운영하면서 확고한 소프트 웨어를 구축할 예정이고, 해외에서 적당한 하드 웨어를 갖추어 놓은 곳이 발견되면 그때 저희의 노하우를 전수하는 식으로 넓혀 갈 예정입니다."

품 서울 이어 품 도쿄, 품 파리로

'한식의 품격 상승과 세계화'라는 그들의 철학은 '품 서울'의 인테리어에서도 그대로 묻어난다. 창가에는 병풍이 쳐 있지만 흔히 볼 수 있는 난이나 글씨는 없고 은은한 색깔의 패브릭으로 감쌌다. 병풍을 모르는 외국인이 본다면 한국 전통 장식인지, 새로운 인테리어 소품인지 헷갈릴 정도다. 흔한 커튼 대신 반투명 발을 쳤는데 한지를 바른 위에 한글을 쓴 모양이 어느 커튼 못지 않게 모던한 느낌을 준다. 미니멀한 공간에서 풍겨 나오는 한국의 멋이 하도 은은해 해외 어디에 내놓아도 이질감을 형성하지 않을 만하다.

고객에게 신선한 재철 재료만을 내기 위해 100% 예약제로 운영하고 있다. 전날 예약을 하면 당일 아침에 손님 수만큼만 재료를 구입해서 조리한다. 냉동고가 크면 자꾸 이것저것 저장하게 될까 봐 일부러 미니 냉동고만 하나 두었다. 한 국내 유명 디자이너는 당일 아침에 점심 식사를 예약하려다가 받아주지 않자 "얼마나 잘났길래 나를 퇴짜 놓느냐"며 펄펄 뛰었지만 재료 없이 손님을 받을 수는 없는 일. 결국 다음날 음식을 맛본 그는 이렇게 아름다운 음식과 그릇은 처음이라고 평했다는 에피소드도 있다.

밖으로 나가는 우리 것은 무엇이 되었든 예뻤으면 한다. 미스 코리아가 그렇고 김연아가 그렇듯이, 한식도 최고의 모습으로 세계인의 식탁에 올라 한국의 얼굴이 되어 주었으면 한다. 여기 앞장 선 노영희 대표의 꿈에 날개가 달리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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