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의 숨결 느껴지는 이탈리안 수트, 프랑스 넥타이, 영국 구두를 한 곳에서

넥타이에 한 평생을 바친 넥타이 장인이 당신을 위해 넥타이를 골라준다면? 그 다음에는 구두에 미친 구두장이가 나타나 당신의 스타일과 발에 꼭 맞는 구두를 권해준다면? 이 모든 것이 실현되는 곳이 바로 편집숍이다.

편집숍은 억울하다. 편집숍이 뭐하는 곳인 지도 모르는 사람이 태반인데다가 안다고 하는 사람 조차 그 진가를 몰라주고 오해만 하니. 그러나 주변에 옷 좀 입는다는 남자들을 가만히 살펴 보라. 그들이 선보이는 유니크한 센스의 팔할은 편집숍이 책임지고 있다.

편집숍은 뭐하는 곳인가?

편집숍은 다른 말로 멀티 브랜드 숍이라고도 한다. 보통 의류 매장에 들어가면 한 가지 브랜드에서 나오는 여러 가지 아이템을 쇼핑하지만 편집숍에는 20종, 많게는 60여종의 브랜드가 한 자리에 모여 있다. 어떻게 이 많은 브랜드가 한 매장에 들어올 수 있을까? 물론 풀 컬렉션이 들어오는 것이 아니다. 각 브랜드에서 필요한 부분만 뽑아 들여오는 것. 바지가 유명한 브랜드에서는 바지만, 니트가 인기인 브랜드에서는 니트만 가져온다. 이를 선택하는 사람은 바이어로, 이탈리아나 일본, 미국 등지를 돌아 다니며 컨셉트에 맞는 아이템을 바잉한다. 따라서 편집숍에서는 의류뿐 아니라 구두, 속옷, 안경, 향수 등 머리부터 발끝까지 토털 코디네이션이 가능하다.

편집숍에는 왜 가는가?

그럼 편집숍의 좋은 점이 뭐가 있느냐고? 물론 브랜드가 많아서 좋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양한 브랜드를 만나려면 백화점에 가는 방법도 있다. 이곳이 특별한 이유는 브랜드를 늘어 놓고 고객에게 선택을 맡기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미 일정한 기준에 의해 선택된 제품들로 구성된 곳이 편집숍이다. 때문에 고객은 자신이 원하는 스타일이 무엇인지 먼저 파악할 필요가 있다. 날렵하고 클래식한 멋을 풍기는 이탈리안 신사가 되고 싶은지, 빅뱅처럼 트렌디한 캐주얼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싶은지, 아니면 얄미울 정도로 핏이 좋은 일본식 수트가 탐 나는지. 이탈리안 수트에 멋을 느꼈다면 수트를 전문으로 하는 편집숍을 찾아가면 된다. 그곳에는 나폴리의 수트 장인 체사레 아톨리니가 만든 재킷이 기다리고 있다. 이어서 현존하는 구두 장인 중 가장 정확한 구두를 만든다는 스테파노 베메르가 수트와 최고의 궁합을 이루는 구두를 보여준다. 이집트 산 면으로 만든 셔츠와 가장 아름다운 매듭을 유지한다는 넥타이도 빼놓을 수 없다.

패션에 눈을 뜨라고 촉구하면서 편집숍 이야기를 꺼낸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장인들의 브랜드 때문이다. 해외 유명한 패션 도시라면 어디나 장인들이 존재한다. 물론 국내에 널리 알려진 루이비통, 구찌, 에르메스 등도 오랜 역사를 지닌 장인 브랜드에 속한다. 그러나 편집숍에서 만날 수 있는 이 소규모 장인 브랜드들은 신발이면 신발, 셔츠면 셔츠 등 하나의 아이템에만 몇 대째 매달려온 사람들이라 거대한 패션 하우스는 따라잡을 수 없는 숙련된 기술과 그들만의 철학이 있다. 게다가 소량 생산으로 구하기도 쉽지 않다. 영국 황실이나 세계에서 손꼽히는 패션 리더들이 거대 패션 하우스보다 소규모 장인 브랜드를 선호하는 이유다. 당연히 가격도 비싸다. 제대로 입고자 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다 보니 종종 편집숍에서는 가격이 문제가 되지 않기도 한다.

1-분더샵 맨 2-샌프란시스코 마켓의 제품들 3-란스미어 4-샌프란시스코 마켓
1-분더샵 맨
2-샌프란시스코 마켓의 제품들
3-란스미어
4-샌프란시스코 마켓
편집숍은 나비 넥타이 파는 곳?

편집숍은 오해를 많이 받는다. 그 중 하나가 위에서 말한, 가격이 비싼 곳이라는 생각이다. 실제로 편집숍에서 파는 구두는 한 켤레가 300만~400만원에 육박하기도 한다. 그러나 가격을 기준으로 바잉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브랜드의 전문성에 치중하다 보니 자연히 가격이 올라가는 것. 가끔은 유명하지도 않은 브랜드인데 바가지 씌우는 것이 아니냐는 웃지 못할 의심도 나온다. 국내에는 별로 알려지지 않은 브랜드들이다 보니 그럴 만도 하다. 그러니 소위 명품으로 쫙 빼 입고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받기 위한 목적이라면 편집숍은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차라리 백화점 명품관으로 가는 것이 빠르다. '누가 만들었냐' 보다 '나에게 어울리냐'를 기준으로 삼는 사람들에게 편집숍은 보물 창고처럼 자신을 열어 보인다. 시즌 세일을 노려 보는 것도 괜찮다. 바이어가 사입하는 제품들이기 때문에 거의 모든 편집숍에서는 시즌이 끝날 때마다 세일을 진행한다.

또 다른 오해는 못 입을 옷만 늘어 놓는다는 것. 편집숍의 문을 밀고 들어가면, 아니 들어가기도 전에 쇼윈도에 걸린 보우 타이(일명 나비 넥타이)를 보고 발 길을 돌리는 남자들이 많았다. 그러나 편집숍은 해 봤자 웃음 거리가 될 게 뻔한 보우 타이와 짤막한 발목 길이의 바지를 억지로 권하는 곳이 아니다. 다양한 브랜드와 꼭 그 수만큼의 다양한 감성이 숨 쉬는 장소인 만큼 선택할 수 있는 여지는 많다. 편집숍의 매니저들은 언제, 어디서, 어떤 옷 차림이 가장 어울릴 것인지에 대한 금쪽 같은 조언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패션은 사치가 아니다. 남자의 옷은 더욱 그렇다. 현재 국내에서 편집숍을 찾는 남자들의 나이와 직업에는 대중이 없다. 20대의 젊은 CEO도 있고 60대의 전문직 종사자도 있다. 이들에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패션을 사치가 아닌, 상대방에 대한 예의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자신감 있고 어법에 맞는 말을 구사하는 것이 성숙한 남자가 갖추어야 할 자질인 것처럼 옷 차림도 마찬가지다.

샌프란시스코 마켓의 한태민 대표


옷 잘 입는 남자 되기 위한 몇 가지 기본 원칙

1. 첫번째 보유해야 할 수트는 반드시 차콜 그레이. 블랙이나 감색이 먼저가 아니다. 전 세계 비즈니스맨들의 90%는 차콜 그레이 수트를 입는다.

2. 구두는 블랙이든 브라운이든 상관 없다. 단, 끈으로 묶는 옥스퍼드 화로 시작할 것. 본딩하지 않고 꿰매서 만든 구두 한 켤레 정도는 있어야 한다. 발등 위에서 번쩍이는 버클은 품격을 떨어뜨릴 수 있다.

3. 바지 자락 질질 끌고 다니지 마라. 생각보다 많은 남자들이 범하고 있는 실수다. 바지의 길이는 적어도 구두의 굽이 보이도록, 또는 그보다 더 위라도 상관 없다. 요즘엔 짧을수록 트렌디하다.

4. 셔츠는 흰색, 하늘색, 스트라이프를 기본으로 갖추고 있을 것. 분홍 셔츠를 입는 것이 멋쟁이라는 고정 관념은 제발 버리길.

5. 타이는 광택 없는 것이 멋지다. 프린트가 현란한 타이는 가끔씩만, 솔리드와 레지멘탈(스트라이프), 잔잔한 올 오버 프린트 넥타이를 기본으로 갖춰 놓는다.

6. 블루 재킷을 2벌 이상 구비할 것. 여기에 베이지 색 면바지를 매치하는 것이 캐주얼을 멋지게 입는 첫 걸음이다. 캐주얼과 수트 차림에 모두 활용할 수 있다.

7. 양말은 바지 색깔보다 약간 진하게.

8. 니트는 얇을수록 몸에 붙게, 벌키할수록 약간 큰 듯 하게 입는다.

패션에 눈 뜬 남자들을 위한 편집숍 추천

■ 분더숍 맨: 청담동 분더숍에서 분리된 남성 전용 편집숍. 돌체 앤 가바나, 마틴 마르지엘라 등 인기 브랜드의 제품 중 국내 수입되지 않은 아이템들부터 초고가 장인 브랜드의 수트까지 다양하게 쇼핑할 수 있다. 서서히 뜨고 있는 신진 디자이너들의 컬렉션을 빠르게 들여오는 것도 장점. 총 3개층으로 남성 단독 편집숍으로는 국내에서 가장 크다. 02-3445-2841

■ 란스미어: 클래식 수트의 매력을 보여주는 곳. 영국, 이탈리아, 프랑스 등지에서 최고의 퀄리티를 자랑하는 수트, 셔츠, 타이 브랜드를 선별해서 들여온다. 남성 하이엔드 패션의 정점을 만나볼 수 있다. 수입 상품뿐 아니라 란스미어 자체 맞춤복도 판매한다. 02-542-4177

■ 샌프란시스코 마켓: 아메리칸 캐주얼과 이탈리안 수트, 그리고 구두, 안경, 향수를 비롯한 다양한 액세서리에서 주인의 감각이 빛난다. 초고가 브랜드와 합리적인 가격의 브랜드가 적절히 믹스돼 있다. 최근에는 '이스트 하버 서플러스'라는 자체 브랜드를 론칭했다. 02-542-3156

■ 텐 꼬르소꼬모: 밀라노 텐 꼬르소꼬모의 한국 지점. 국내에서 보기 힘든 희귀 브랜드들의 제품뿐 아니라 커피, 음식, 책, 코스메틱, 리빙 소품도 판매하는 멀티숍이다. 패션과 함께 문화를 보여준다는 것이 컨셉트. 02-3018-1010

■ 쿤: 국내 남성 편집숍의 터줏 대감. 지금은 여성복도 들여와 비율이 50 대 50이다. 입생 로랑, 오뜨, 발망 등이 인기 브랜드로, 편집숍 치고는 합리적인 가격대를 추구하는 것이 특징. 사장의 취향을 따라 캐주얼한 제품들이 많다. 02-517-4504

도움말: 샌프란시스코 마켓 한태민 대표, 란스미어 브랜드 매니저 남훈





황수현 기자 soo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