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의사가 쓰는 '사랑과 전쟁']

분노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경험하게 되는 자연스러운 감정 반응이다. 현대에 들어 인간의 여러 감정들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에 대해 너그러워졌지만, 분노감정을 적절히 표현하는 것은 아직도 간단한 일이 아니다.

유쾌한 것을 좋아하고 불쾌한 것을 피하고자 하는 것은 본능적인 것인데, 대부분의 분노는 불쾌한 상황에 의해서 발생하지만 그 분노에 의해서 더 불쾌한 상황으로 확대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감정들과 마찬가지로 분노 역시 우리가 살아가는 데 불가피한 하나의 요소라는 점에서 보면 자신의 분노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적절한 분노 표현기술을 배우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많은 사람들이 분노는 '그때그때 털어놓고 풀어버리는 것이 상책'이라거나 '참고 살다 보면 사라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불만을 수시로 털어놓았다가 주변사람에게 문제아로 찍히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서로 '마음 속에 있는 것을 솔직히 다 털어놓기'로 했다가 더 큰 반목을 경험하기도 한다.

별렀다가 모처럼 시댁에 대한 불만을 이야기한 며느리는 '되로 주고 말로 받는' 경험을 하기 쉽다. 이런 경우들은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였지만, 그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해서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흔한 조언대로 베개에 주먹질을 하고 산에 올라가서 고래고래 소리치거나 실컷 울고 나서 잠이 들기도 하지만, 그래도 후에 그 상대를 다시 만났을 때 아무렇지 않게 되지는 않는다.

반대로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참고 사는 것으로는 분노가 저절로 사라지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서 사라지는 것이라면 아마 분노라기 보다는 불쾌감 정도였을 것이다.

분노는 불쾌감과 달리 개인의 인격과 깊게 연결된 것이라서 한두 번의 경험으로 형성되지도 않으며 마찬가지로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언제든 생생하게 되살아날 수 있다.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 남편의 외도를 참고 넘어가기를 선택한 부인의 분노는 비슷한 상황에서 언제든 다시 되살아날 가능성이 있다.

이런 점을 모르는 남편은 왜 용서하기로 해놓고 또 다시 문제를 삼느냐고 되레 큰소리치지만, 남편이 그럴수록 남편에 대한 부인의 분노는 깊어져 가고 신뢰는 적어져 간다. 이는 모두 우리가 아직도 분노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분노는 단순한 감정과 달리 한 개인의 전인격적인 반응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분노표현이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합당한 분노라도 그 처리방식은 당사자의 인격적 성숙에 따라 결정되는데, 이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분노는 그 상대와 이유가 있기 마련이며 그 크기도 헤아릴 수 있다. 또 그 분노의 해소를 위해서 요구되는 조건이나 또 해소를 통해서 얻고자 하는 목표를 가늠할 수 있다.

이런 점들을 헤아린 경우에는 '성숙한 분노'라고 하겠지만, 그렇지 못하고 분노 자체의 표현에만 충실하다면 '미성숙한 분노'라고 할 수 있다.

남편의 잘못에 대한 추궁에만 매달려 가정생활의 파탄을 무릅쓴 부인의 분노가 이에 해당될 것이다. 분노의 성숙한 처리는 자신은 물론 상대에게도 발전의 기회를 줄 수 있지만, 미숙한 처리는 서로에게 불쾌감을 더할 뿐이다.

이와는 다른 측면에서 자신이 분노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그것을 드러내어 상대에게 알리고 변화를 요구하는 것을 '적극적 분노'라고 한다면, 객관적으로는 분노할 만한 상황에서도 자신이 분노하고 있는지가 불분명하여 상대에게 변화의 계기를 만들어주는데 실패하고 반복적인 악순환에 빠져들게 되는 것은 '소극적 분노'라고 할 수 있다.

단순한 감정반응을 넘어서서 '성숙하고 적극적인 분노'를 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의 분노감정을 인식하고 적절하게 표현하기 위한 훈련이 필요하다.



박수룡 부부치료클리닉 원장 www.npspecialis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