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요네즈·초콜릿·아이스크림 등과 어우러져 마니아 양산

코가 지끈, 머리가 띵, 눈물이 찔끔. 어쩌다 양 조절에 실패해 조금이라도 더 먹었다가는 잠깐 동안 눈을 감고 이 고통이 어서 빨리 지나가기를 기다릴 수 밖에 없다.

매번 상처 받으면서도 돌아서면 아른거리고 결국에는 중독되어 버리는 와사비. 같은 매운 맛이되 고춧가루처럼 입 안에 들척지근하게 남지 않고 단 번에 뇌관을 울렸다가 미련 없이 사라져버리는 모습이 흡사 나쁜 남자 같다.

주변에 와사비를 즐기는 사람을 본 적이 있는가? 횟집에서 남들 간장에 살짝 풀어 먹을 때 회 위에 엄지 손톱만한 크기로 올려 먹고, 그것도 모자라 밥에 비벼 먹는 사람들 말이다.

"맵지 않냐구요? 당연히 맵죠. 코로 불을 뿜을 것 같이 괴롭다가도 지나고 나면 이상하게 또 찾게 돼요. 스트레스가 풀린다고 할까." 와사비 마니아를 자처하는 한 대학생의 말이다.

그렇다고 모든 와사비 마니아들이 고통을 즐기는 마조히스트(masochist)들은 아니다. 지금의 와사비 마니아들이 양산된 이유는 와사비와 다른 재료들의 기막힌 궁합 때문이니까.

와사비 라테, 와사비 아이스크림…

와사비는 회를 먹을 때만 필요하지 않느냐고? 그렇다면 정말 섭섭한 소리다. 단독으로 먹을 때는 폭력에 가까운 매운 맛을 내지만 다른 재료들과 섞인 와사비는 완전히 다른 얼굴로 변신한다.

특히 기름진 것이나 단 것과는 환상적인 조화를 이룬다. 대표적인 것이 마요네즈인데, 마요네즈에 와사비를 섞으면 고소함과 부드러움은 그대로 남고 쏘는 듯한 매운 맛이 느끼함만 쏙 빼준다.

뒤에 은은하게 남는 와사비 향은 입맛을 개운하게 해준다. 초콜릿과는 어떨까? W호텔 총주방장인 키아란 하키가 4월부터 새로 선보이는 수제 초콜릿에는 와사비 초콜릿이 있다. 큼직한 초콜릿을 한 입 깨물면 크림에 넣고 끓여 부드러워진 와사비 페이스트가 씹힌다.

"평소 와사비 향을 좋아해서 초콜릿에 넣어 보았습니다. 맛이 너무 강하지도 않고 매콤 쌉싸름한 것이 특히 다크 초콜릿과 잘 어울리더군요."

그는 와사비와 아이스크림의 조합도 훌륭하다며 와사비로 만든 셔벗을 추천했다.

와사비는 미각보다는 통각을 더 자극하기 때문에 함께 섞인 재료들의 맛을 해치지 않으면서 알싸함을 남긴다. 요리하는 입장에서는 모험을 불사하고 어디에나 넣어 보고 싶은 재료다. 따라서 일본에서는 와사비를 다른 재료와 믹스한 기상천외한 음식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

와사비 아이스크림, 와사비 새우깡, 와사비 껌, 와사비로 코팅한 콩 등. 와사비의 향만 살린 것도 있고 생 와사비를 삼킨 것처럼 강렬한 매운 맛을 내는 것들도 있다. 와사비는 가열하면 매운 맛이 날아가기 때문에 자유자재로 맵기를 조절할 수 있다.

그럼 우리나라는 어떨까? 일본만큼 다양하지는 않지만 국내에서도 와사비를 이용한 음식을 맛볼 수 있다. 가로수길의 카페 머그포래빗에서는 1년 전부터 와사비 라테를 만들어 왔다. 엔터테인먼트 계열에 종사했던 사장이 색다른 메뉴를 구상하다가 와사비를 넣은 라테를 시도한 것.

우유 거품으로 하얗게 덮여 순해 보이지만 조금 급하게 마시면 이마에 땀이 살짝 맺힐 만큼 맵다. 달콤한 시럽과 와사비 맛이 조화돼 마니아들은 올 때마다 마시는 것도 모자라 집에서 만들어 먹겠다고 레시피를 물어간다.

분당의 맛집 나마비 비스트로에서는 마요네즈에 와사비를 넣은 달콤한 소스를 랍스터 튀김에 발라서 낸다. 랍스터와 튀김, 마요네즈의 조합은 이름만으로도 느끼하지만 은근하게 올라오는 와사비 맛이 깔끔하게 정리해준다. 한우 채끝 등심을 회처럼 얇게 저며 생 와사비, 파, 무와 함께 먹는 와사비 네기(파) 스테이크는 와사비와 고기가 얼마나 잘 어우러질 수 있는 지를 알게 해준다.

담백한 음식에도 포인트가 되는데 압구정동의 테이스티 블루바드에서는 매쉬드 포테이토에 와사비를 넣어 낸다. 으깬 감자를 휘핑 크림과 버터를 넣어 부드럽게 만든 후 와사비를 섞는 것.

1-나마비 비스트로의 '와사비+마요네즈 소스를 곁들인 랍스터 튀김'과 '와사비 네기 스테이크'
2-와사비 라테를 판매하는 카페 머그포래빗


'와사비 초보자'들은 달고 기름지게

와사비 맛에 눈 뜨는 사람들이 생기면서 집에서 먹고자 하는 이들도 늘고 있다. 와사비는 특별한 조리법이 없다. 알아두어야 할 것은 차갑게 하면 더 매워지고 뜨겁게 하면 덜 매워진다는 것. 따라서 무엇보다 신경 써야 할 것은 좋은 와사비를 구하는 일이다. 시중에서 파는 분말 와사비는 일단 열외다.

"분말로 만들어진 와사비와 생 와사비의 차이는 엄청 납니다. 와사비의 맛을 제대로 느끼려면 생 와사비를 먹어 봐야죠." 나마비 비스트로 김윤오 매니저의 말이다.

하지만 생 와사비를 개인이 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일단 일본에서 건너온 생 와사비를 취급하는 재료상을 알아야 한다. 국내에서도 와사비를 재배하지만 안타깝게도 토양과 기후로 인해 일본산보다 맛이 약간 떨어진다.

개인이 시도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백화점 수입 식품 코너에서 일본산 와사비 제품을 구입하는 것이다. 좋은 와사비를 손에 넣었으면 이제 여기저기 넣어 보는 일만 남았다. 와사비에 입문하는 초보자들은 달콤한 생크림이나 마요네즈에 넣어서 소스를 만드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다.

주로 튀김이나 고기를 찍어 먹을 것. 와사비 맛이 익숙해져 좀더 날 것의 맛을 즐기고 싶다면 참치 김밥을 말 때 마요네즈 짜넣듯이 한 줄을 짜서 넣거나 볶음밥에 두반장과 함께 넣어 보라. 노란 계란 말이 위에 데코레이션 하듯이 와사비를 올리는 것도 좋고 두부와 곁들여도 잘 어울린다. 완전히 익숙해졌다면 최종 코스로 우롱차에 타 마시는 것을 추천한다. 코 끝이 아릿해지는 와사비의 진한 맛을 느낄 수 있다.

이제 와사비에 중독될 준비가 끝났는가? 급한 마음에 벌써 한 입 먹고 매워서 어쩔 줄 모르고 있다면 재빨리 입을 벌려라. 입을 벌리면 와사비의 매운 맛이 조금 덜해진다.



황수현 기자 soo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