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끝 스쳐나온 면발 겉은 부드럽고 속은 단단 이중적 오묘한 질감

1-도삭면 칼 2-도삭면 면발 3- 우육도삭면
4-신사천도삭면 5- 란주도삭면

얼마 전 KBS TV에서 방영된 '누들 로드'. 세계 각국의 다양한 국수를 소개하는 이 프로그램에서 '도삭면'이라고 선을 보였다. 어깨에다 밀가루 반죽을 메고 칼로 '긁어' 면발을 뽑아내는 바로 그 국수! '중국 사람이 하는 저 토종 면 맛을 보려면 중국까지 가야 하나?'

글쎄, 이제 더 이상 그럴 필요까지는 없을 듯 하다. 서울 시내 한 가운데 중국 조리사가 직접 만들어 주는 도삭면 전문점이 최근 들어섰다. 명동 한 복판에 문을 연 '란주라미엔'. 웬만한 중국 도시 골목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는 식당의 이름 그대로다. 우리 기준으로는 '잔치국수집' 정도.

도삭면(刀削面). 특이하게도 면발인데 국수 '면(麵)' 자를 쓰지 않고 얼굴 '면(面)'자를 쓴다. 반죽을 '얼굴에 가깝게 대고 칼로 썬다고 그렇게 했나?'라고 생각해 볼 수도 있지만 실은 필획을 간략하게 줄인 간체자(簡體字)를 사용한 것.

중국 내에서도 국수를 즐겨 먹기로 이름난 산서성의 대표 음식인 도삭면은 무엇 보다 '면발을 뽑아내는' 장면 만으로도 호기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제법 커다란 밀가루 반죽 덩어리를 들고 나온 조리사가 어깨에 반죽을 올려 놓는 것이 첫 순서.

그리곤 '납닥한' 칼로 반죽을 긁어 내는데 신기하게도 길다란 면발이 죽죽 밀려 나온다. 칼 끝을 스쳐 나오는 면발은 바로 앞에 놓여진 뜨거운 솥에 '풍덩'하며 정확하게도 떨어진다. 마치 칼로 긁은 면발을 한 번 더 던져 솥에 집어 넣는 것처럼도 보인다. 조리사의 숙련된 솜씨 때문에라도.

이 집의 '도삭면 장인'인 '시우 리준' 조리사는 '칼질 자체도 중요하지만 면발이 정확히 끓는 솥에 떨어지도록 거리와 높이를 맞추는 것도 숙련된 요령이 필요하다"고 소개한다. 솥으로 들어간 면발은 바로 그 자리에서 삶아지기 때문에 생면 그대로다.

반죽 과정

특이한 반죽, 혹은 칼질 덕분인지, 아님 생면이라선지 면발이 주는 식감도 결코 익숙하지는 않다. 씹을 때 부드러운 듯 하면서도 쫄깃한 감이 겹쳐져 있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면 겉은 부드럽지만 속은 마치 '심지'라도 박혀 있는 것처럼 질감이 단단하다. 하나의 면발에서 두가지 맛을 동시에 보는 격이다.

면발의 모양도 좀 특이하다. 납닥한 것은 우리의 칼국수와 비슷한데 좀 더 넓어 보인다. 물론 칼질하기 나름인 점도 있지만…. 무엇 보다 도삭면의 '이중적인 오묘한' 질감은 면발의 단면에 숨어 있다.

실제 면발을 한 줄기 들어 단면을 살펴 보면 반 타원형을 띤다. 가장 자리는 얇지만 가운데 부분으로 가면 두께가 더 두꺼워지는 모양새. 이는 면발을 뽑아내느라고 칼이 지나간 반죽을 봐도 알 수 있다. 단면의 가운데가 움푹 들어가 있는 것이 증거로 남아 있다.

제면 방식이 독특한 만큼 도삭면은 반죽에서부터도 일상적이지 않다. 밀가루와 물을 섞어가며 반죽을 하는 것은 여느 반죽과 같지만 적당한 농도와 습도 등을 맞추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고 한다. 반죽이 조금만 잘못 되도 면발이 잘 썰리지 않거나 엉키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반죽을 만드는 과정과 모양도 여느 국수처럼 우리에게 익숙한 모습은 아니다. 반죽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또 치기도 하고 말기도 하면서 '약간은 말린듯' 제법 커다란 덩어리 하나를 만들어 낸다. 최종 관건은 길다란 모양새를 띠어야 하고 또 숙성 시간도 거쳐야만 한다.

특히 조리사가 면발을 마지막에 썰어 내는 칼에 대해 갖추는 '예우'만은 '독보적'이다. 처음 보는 모양이라 몇몇 한국 사람들이 만져보고 테스트(?)도 해 보았는데 그만 칼 날이 상해 버렸다.

이를 모르고 있던 시우 리준 조리사는 한 번 '칼 질'을 하다 난리를 쳤다고 한다. "누가 칼을 만졌나며…날이 들지 않아 면발이 뽑아나지 않는다고" 결국 중국에까지 긴급 주문, 특송으로 배달해 칼을 새로 주문했다. 5개가 새로 도착했는데 한 개만 사용중이고 나머지는 아무나 못 만지도록 금고에 보관중이다.

도삭면은 지금 세가지 맛으로 즐길 수 있다. 청경채와 모기버섯, 고사리 등 야채와 중국 고추, 청양고추를 넣은 '신사천면'이 가장 맵고도 인기다. 자장 소스와 카레 소스, 중국 된장 격인 텐멘장을 함께 비벼 먹는 '란주면'은 고소하고 우육면은 비교적 담백하다. 모두 중국식 소스와 육수를 기본으로 하면서 너무 강한 중국 향신료는 빼내고 한국 입맛에 맞췄다.

원래 칼국수도 함께 하던 이 집은 최근 상황이 역전됐다. 너도 나도 도삭면을 시키면서 도삭면이 주메뉴가 돼버린 것. 바쁜 시간대의 점심 때는 조리사가 제면 과정을 시범 보이지 않는데도 도삭면을 시키는 이들이 더 많다. 도삭면의 인기가 마냥 '신기한 볼거리' 때문만이 아니라는 것은 한 번 맛을 본 이들이 다시 또 시킨다는 점에서도 드러난다.



메뉴 란주도삭면 5000원, 우육도사면 5500원, 신사천도삭면 6000원.

찾아가는 길 명동 중앙우체국 옆 건물 대로변 1층 (02)779-4800




글ㆍ사진 박원식기자 park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