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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한식을 바깥으로 끌어내라
서양에서는 반찬의 개념… 한식의 생소함 줄여 세계화의 디딤돌




황수현 기자 sooh@hk.co.kr
사진=임재범 기자 happyyjb@hk.co.kr



1-민가다헌의 안심 카르파치오
2-사리원의 갈비, 3-한일관의 비빔밥, 4-사리원의 고기와 와인

얼마 전 이마트에서 와인을 새로 출시했다. 이름은 마리아주. 네이밍 그대로 '맞춤'에 초점을 둔 와인으로, 맞추려는 대상은 다름아닌 한식이다.

맵고 짠 한식의 맛에 와인이 어울리냐 아니냐를 두고 말들이 많자 아예 맞춤 와인을 만들어 버린 듯하다. 개발을 위해 호주의 유명 와이너리를 지정했다는 후문에 일부에서는 '오버한다'고 했지만 어떻게든 한식과 와인을 결합시켜 보려는 절박함이 엿보이는 시도다.

와인과 한식은 새로운 주제가 아니다. 미디어에서는 연일 비빔밥에는 이런 와인, 녹두전에는 저런 와인을 마셔보라고 추천하고, 해외 유명 와이너리에서는 한국에 직접 방문해 와인과 한식을 늘어놓고 얼마나 잘 어우러질 수 있는지를 설파하고 있다.

왜 이런 시도가 계속 이어지고 있을까? 물론 첫번째 이유는 한국에 와인을 많이 팔고자 하는 것이겠지만 단지 이것뿐이라면 정부까지 이토록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는 없을 터다. 바깥으로 눈을 돌리면 금세 답이 나온다. 한식이 세계로 진출하기 위한 조건 중 하나가 바로 와인과의 궁합이기 때문이다.

서양 식탁의 중요한 구성원, 와인

술이 음식을 이끈 사례는 없다. 스시가 뉴요커들의 입맛을 사로 잡은 후에 사케가 따라갔고, 피자와 파스타도 먼저 건너가 이탈리아 와인을 친숙하게 만드는데 디딤돌 역할을 했다.

늘 음식이 먼저고 그 다음에 술이 따라 들어간다. 그렇다면 와인은 바깥으로 나간 우리 한식에게 도움을 줄 수 있기는 할까?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은 와인은 술이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 말에 반주라는 개념이 있지만 그것과도 조금 다르다. 차라리 반찬에 가깝다.

서양에서 와인은 곁들여도 되고 없어도 상관 없는 것이 아니라 음식, 빵, 치즈와 함께 한 끼 식사를 구성하는 4대 요소 중 하나다. 우리 식탁에 김치가 없으면 뭔가 빠진 듯한 느낌이 드는 것과 비슷하다. 같은 액체인 국에 비유하는 것이 낫겠다.

유럽은 예로부터 물이 좋지 않았다. 국물 음식이 발달하지 않은 이유도 석회질이 가득한 물 때문이다. 따라서 텁텁한 고기를 부드럽게 넘기기 위해서는 와인이 꼭 필요했다. 우리가 밥을 먹으면서 목이 멜 때마다 미역국을 뜨듯이 그들은 와인을 홀짝거렸다.

처음에 우리 입맛에는 느끼하기 짝이 없던 크림 파스타는 김치 덕에 어느 정도 연착륙할 수 있었다. 처음 본 보쌈과 비빔밥의 생소한 모양새에 거부감을 느끼는 외국인들에게, 와인은 익숙하게 먹던 식탁을 떠올리게 만드는 한 가닥 끈과 같다.

보쌈에 와인을 한 모금 마셨을 때 마리아주(음식과 와인 맛의 조화)까지 기막히게 들어 맞는다면 한식의 세계화는 한꺼번에 세 계단 정도를 오르게 되지 않을까?

국물 많은 한식, 와인과 어울리려면?

와인은 한식의 해외 진출에 훌륭한 파트너지만 모든 한식에게 그렇지는 않다. 어울리지 않는 한식도 꽤 된다는 이야기다. 그렇다고 한식에 맞춘 와인을 아예 새로 만들어야 할 정도는 아니다. 현재 나와 있는 와인만 해도 한 사람이 평생 마셔도 다 못 마실 만큼 다양하기 때문이다.

"와인의 종류는 너무나 다양해요. 인간이 맡을 수 있는 향기가 2000가지라고 하는데 와인이 가지고 있는 향은 그 중 10%인 200가지입니다. 그 200가지 중에서 한식과 어울리는 것이 없을까요?" 한 와인 전문가의 말이다.

와인이 그 다양성을 무기로 어떤 음식과도 함께 할 준비가 끝났다면, 와인과 공존하기 위해 한식 쪽에서는 어떤 준비가 필요할까? 지금 와인을 판매하고 있는 한식 레스토랑에서 여러 가지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

설립 초기부터 외국인을 대상으로 지어진 인사동의 한옥 레스토랑 민가다헌에서는 코스 형식의 퓨전 한식을 택했다. 고객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외국인들은 문화재로 지정된 최초의 개량 한옥을 보며 감탄하지만 된장과 고추장의 생소함을 견딜 각오가 되어 있지는 않다.

그들을 위해 모양새와 담음새, 그리고 내놓는 순서를 바꾸었다. 물론 이 모든 과정에는 와인의 자리를 내주는 배려가 숨어 있다. 예를 들면 모든 메인 요리에는 국물이 제외된다.

와인과 함께 먹을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대신 코스 초반에 수프를 내되 단호박이나 들깨를 이용해 한국적 취향을 표현한다. 전채 요리로 나오는 안심 카르파치오는 변형된 육회다.

육회의 미끄덩한 질감을 싫어하는 그들의 입맛에 맞춰 페퍼로니처럼 얇게 저미고 인삼과 파를 곁들였다. 외국 대사들은 안심의 부드러운 맛을 살려주는 마크햄 메를로 와인을 함께 마신다.

비즈니스의 핵심, 와인의 손을 잡아라

사리원 역시 한식과 함께 70여종의 와인 리스트를 갖추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한식 세계화를 목표로 시작한 만큼 와인은 물론이고, 고기 굽는 연기가 와인 향을 방해하지 않도록 환기 시설까지 철저하게 갖추었다. 단, 한식을 변형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낸다는 점은 다르다.

"스시가 원래 모양 그대로 진출해서 성공했듯이 한식도 그대로 나가는 것이 맞다고 생각해요. 대신 거부감을 느낄 수 있는 것들은 빼고 먹힐 만한 것들만 보여주는 거죠. 동치미나 김치 때문에 한식 자체를 싫어하게 되는 외국인들이 많거든요. 일본도 스시만 성공했지 낫또는 그들만의 음식이지 않습니까." 라성윤 사장의 말이다.

라 사장이 추천하는 와인과 어울리는 한식은 닭죽, 나물 무침, 빈대떡, 두부 등 다양하다. 물론 가장 폭발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은 육류다.

양념 갈비의 단 맛은 칠레 산 몬테스 알파와 먹을 때 더 살아나고, 생고기의 맛을 제대로 느끼려면 프랑스 산 도멘 베르타냐의 라이트함이 적당하다.

한일관은 정통 서울식으로 와인과의 매치를 시도했다. 흔히 맵고 짠 한식을 대표하는 전라도 음식과 달리, 정통 서울식은 간이 약해 재료의 맛이 살아 있기 때문에 와인과 잘 어울린다고 설명한다.

"칠레 와인인 산타이네스 리저브 까베르네 쇼비뇽을 저희 하우스 와인으로 지정했어요. 칠레 와인에는 스파이시한 향이 있기 때문에 마늘, 고추가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 한식과 잘 어울립니다. 화이트 와인의 레몬향은 생선의 비린내를 줄여주고 생선살을 더 탱탱하게 느끼게 해주기 때문에 생선전 등과 자주 매치해요."

한일관의 와인 컨설팅을 맡고 있는 조필수 팀장의 말이다.

와인은 반찬의 개념 외에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지금 세계 어디에서도 비즈니스와 파인 다이닝을 이야기할 때 와인을 빼놓고 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식이 해외로 진출할 때 상류층을 공략하려거든, 음식을 변형하든지 와인을 새로 만들든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와인과의 매치를 주장할 필요가 있다.

또 하나, 지금은 와인의 손을 잡고 나가지만 한식이 세계적으로 사랑 받게 될 경우 우리의 전통주에도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게 된다. 문배주, 복분자 주 등 질 좋은 우리 술이 세계인의 식탁에 오르려면 한식이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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