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오스노바(Naos Nova)겉모습은 전통 프렌치 스타일, 내용은 한국적 창작 메뉴 어필

서울 밀레니엄 힐튼호텔에서 남산으로 올라가는 언덕 길. 4년 전 독특한 디자인의 초현대식 건물 하나가 들어섰다. 4층 짜리 아담한 빌딩 전체가 레스토랑 & 바인 이 곳은 ‘나오스노바’. 천상의 라운지란 뜻이다.

그래서 오픈부터 미니멀하면서도 모던한 디자인으로 세간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하늘 위에 있는 라운지에 앉아 보면 어떨까’ 해서 때문. 여전히 그 건물, 그 디자인은 변함없이 그대로다.

하지만 한 가지는 처음과 달리 변했다. 그건 바로 음식. 지금 나오스노바가 또 다른 관심을 불러 모으고 있는 가장 큰 이유다.

나오스노바를 기획하고 세운 이는 디자이너 카일 리씨. 프랑스에서 10여년간 패션 디자이너로 활동한 그는 건물의 형태는 물론, 작은 선, 각도, 조명 하나하나까지 세심한 신경을 썼다. 그리고 완성한 것이 지금의 ‘비주얼’이다.

그리고 그는 지금 또 다른 디자인을 하고 있다. 이번에는 건물 외관이나 인테리어가 아닌 음식에서다. 그렇다고 그가 셰프 출신이거나 푸드 스타일리시트 같은 타이틀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그의 메뉴는 요즘 사람들을 감탄시킨다. 그의 디자인적 감각이 음식에도 그대로 투영돼서다. 감히 말하자면 그는 지금 ‘푸드 디자이너’다.

문을 연지 벌써 4년. 메뉴가 ‘좀’ 달라졌다고 뉴스가 되나? 그런데 사실은 ‘조금’ 달라졌다기 보다는 ‘거의 전부’ 달라졌다. 오픈 시절 초기 메뉴는 10여개. 지금은 그 몇 배가 넘는다. 굳이 음식의 가짓수가 늘어나서 때문은 당연히 아니다.

그럼 메뉴는 왜 달라졌나? 아니 달라지고 있나? 오픈 때 나오스노바의 테마는 ‘건축’이었다. 새로운 공간, 새로운 디자인을 보여주는 것. 거기에 모든 신경은 집중됐다. 사람들 또한 새로 지어진 이 건물을 보고 느끼는 데만 먼저 열중했다.

일단 외관 디자인이 완성된 이상 다음 단계는 ‘푸드’. 장소 또한 다름 아닌 레스토랑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하나씩 변화해 오고 달라진 것들. 그 진화의 완성품이 지금 메뉴판에 집약돼 있다.

“저는 레스토랑이 하나의 ‘성(Castle)’을 쌓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매일 벽돌을 끼워놓고 세워 나가듯 음식도 그릇도 서비스도 하나하나 날로 업그레이드 시키는 것이죠. 잘 되서 돈이 모이면 또 더 좋은 그릇을 사고 인테리어도 새로 꾸미고…그렇게…”

건물 기획에만 무려 5년을 투자한 것 못지 않게 그에게 음식과 요리의 기획은 더 큰 시간이 소요되는 과정일 수 밖에 없다. 그는 “럭셔리 라는 것은 전통처럼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라고 단언한다.

그런데 나오스노바의 숙명적인 고민(?). 레스토랑이 레스토랑 같지 않다. 하얀 테이블보도 없고 테이블은 낮기만 하다. 의자도 식탁용이라기 보다는 약간 뒤로 누울 만큼 안락한 소파 같고 도무지 클래식 레스토랑 분위기는 아니다. 그리고 은은하다 못해 어둡다고 할 만큼 몽환적인 조명. 일렉트로닉 음악까지 더해지니 ‘바’라고 생각하는 이도 많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와인만 시킨다. 레스토랑인줄 몰라서 메뉴를 보지 않는 이도 있다. 심지어 ‘여기 음식도 돼요?’라고 물어 보는 경우도 있다. 그나마 레스토랑에 가까운 표시(?)라면 테이블에 집중된 레이저 조명. 정확히는 광섬유를 이용한 신기술의 조명 디자인이다. 하지만 같이 앉아 있는 상대방 얼굴은 결코 밝게 비쳐지지 않는다.

그 와중에도 아는 이들은 나오스노바의 푸드를 결코 놓치지 않는다. 먼저 미식가들 사이에 알음알음으로만 전해진 메뉴가 소문난 이유는 단 한가지. 오너인 카일 리가 선보이는 ‘누벨 퀴진’ 때문이다. 굳이 번역하자면 신 메뉴 또는 창작 메뉴.

그의 프렌치 메뉴들은 프렌치 같으면서도 프렌치 같지 않다. 가장 큰 이유는 한국의 식재료들이 사용됐기 때문. 프렌치 요리인데도 장어가 메인 푸드로 나오고 오미자와 까만 쌀, 산마와 홍삼, 전복, 유자, 고추 등이 메뉴 이름에 오른다. 그런데도 우리 요리에나 익숙할 듯한 이들 재료로 훌륭한 프렌치 퀴진들이 탄생한 것.

애피타이저와 수프, 메인, 디저트 등 코스의 경계선도 없다. 달콤한 디저트 같은데 메인 전에 나오고 수프나 애피타이저처럼 보이는데 코스의 맨 마지막에 배치돼 있다. 디저트가 식단의 가장 끝이어야만 하는 것도 아니고 샐러드가 메인 전에 나와야만 하는 상식과는 전혀 거리가 멀다.

어릴적부터 해외 생활이 잦았고 해외 음식을 접할 기회가 잦았던 카일 리. 그는 세계 각국의 음식들을 맛 보며 결국 ‘음식은 하나로 다 연결돼 있다’는 결론을 얻었다. 결국 푸드는 뿌리와 본질(에센스)의 문제라는 것. 역시 남산에서 유명한 이탈리아 레스토랑 일비노로소를 꾸려오는 어머니의 솜씨를 이어받은 것도 무시할 수는 없다.

때문에 그의 요리는 전통 프렌치의 형식을 띠고 있지만 내용은 자못 한국적이다. 프랑스의 데코레이션과 미각은 살아 있으면서도 입맛이나 건강, 웰빙에서는 토종의 뿌리를 그대로 살렸다. 프렌치인데도 여느 프렌치 메뉴에서는 전혀 찾아 볼 수 없었던 음식들이 선보이는 것은 이 때문.

그는 패션에서도 기성복과 주문복(오뜨 꾸뛰르)의 중간격인 누벨 꾸뛰르에서 솜씨를 보였다. 아방가르드(전위적)랄 수 있는 이런 그의 성향은 건축 디자인은 물론 그의 푸드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음식에서 국경을 허무는 이 같은 절묘한 조합은 오로지 그의 빼어난 창작성에서 비롯된 셈이다.

더불어 빌딩에서처럼 그의 프렌치 요리는 모던하고 미니멀하다. 또 전통 프렌치라기 보다는 현대적이다. 그래서 복잡해 보이지도 않고 간단해 보이지만 여러 성분과 요소, 배려들이 모두 집약되고 함축돼 있다. 수입해 써야만 하는 프랑스산 식재료를 과감히 떨쳐 버리고 한국산 재료를 기꺼이 사용하는 것도 음식은 신선한 제철, 제 곳의 재료로만 써야 최상의 맛을 낼 수 있다는 신념 때문에서다.

“레스토랑은 살아 있는 유기체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조금씩 성장해 나가고 꾸준히 진화해 나가는 것이죠.” 그의 푸드 디자인은 여전히, 또 앞으로도 진행중이기만 하다.

메뉴 : 에로틱, 호모에로틱 등 3가지 코스가 각각 8만, 10만, 12만원.

찾아가는 길 : 밀레니엄 힐튼호텔에서 남산 올라가는 길 우측 100m (02)754-2202



글ㆍ사진 박원식기자 park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