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너 셰프와 친해지기 ② - 줄라이 오세득 셰프현대적 감각의 정통 프렌치 레스토랑최고의 재료와 조리도구에 '자연과 진심' 담아

(우) '저온 조리한 양갈비(뼈가 꽂힌 쪽)와 오리 가슴살+푸아그라 요리. 각각 양 뼈와 오리 뼈를 우려서 만든 소스를 곁들이고 자연산 시금치, 돌 미나리, 취나물 등과 함께 냈다.'

겉과 속이 같기는 어려운 법이다. 그러니 겉보다 속을 단장하는 것은 당연히 더 어렵다. 줄라이의 오세득 셰프는 10개의 테이블을 채우는 손님을 대접하기 위해 식당 2층에 식당만한 주방을 만들었다. 조리 기구만 1억 원어치를 사들였을 때 ‘미쳤냐’는 주위의 반응에 “잠깐 하고 접을 게 아니니까요”라고 대답했다.

프렌치 레스토랑들이 고상한 인테리어로 손님들을 내쫓을 때 그는 프렌치라는 말에 주눅들 사람들을 위해 스테이크 아래 취나물을 깔았다. 그렇게 만들어진 음식은 2년을 채 넘기기 전에 대한민국의 모든 미식가들을 서래마을로 불러 모았다.

컨템포러리 프렌치 레스토랑을 표방하는데 무슨 뜻인가

제가 만든 말이에요. 맛은 정통 프랑스 음식에 가깝지만 모양이나 순서를 현대에 맞게 재해석했다는 의미에서 컨템포러리라는 단어를 사용했어요. 완전히 현대적으로 바뀐 모던 프랑스 식보다 조리 방법이나 재료의 질에 있어서 한 등급 위라는 의미이기도 하구요.

프렌치 레스토랑은 많다. 그래도 줄라이를 찾는 이유를 뭐라고 생각하나

물론 맛있기 때문이겠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맛은 기호잖아요. 제가 아무리 최고로 맛있는 음식이라고 주장해도 그건 주장일 뿐이지 반대하는 사람은 어디에서든 나오게 돼 있어요.

줄라이를 오픈하면서 생각한 주제는 ‘자연과 진심’이에요. 제가 만든 음식에는 항상 자연과 진심이 담겨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자연은 좋은 재료를 의미하는 것이겠고 진심은 무엇을 의미하나

맞습니다. 계절마다 맛과 영양이 듬뿍 오르는 재료가 다른데 이것들을 사용하는 것이 모든 요리의 기본이구요, 진심은 음식을 만드는 자세, 조리 방법, 재료에 모두 관련돼 있어요. 예를 들면 저는 코팅된 프라이 팬을 쓰지 않아요. 손님을 생각해서 정성껏 만든다고 하면서 바닥이 다 벗겨진 프라이 팬으로 요리를 한다는 건 앞뒤가 맞지 않죠.

스테인레스 팬은 코팅 팬 가격의 10배가 넘고 조리 기술도 더 필요하지만 당연히 해야 할 투자라고 생각해요. 훌륭한 조리 도구에서 건강이 나오거든요. 매일 아침 시장에서 재료를 구입해오는 것도 진심을 담는 방법 중 하나에요. 저는 수입 야채를 잘 쓰지 않아요.

노지 시금치라든가 병풍초, 신선초, 원추리처럼 국내에도 좋은 야채들이 많은데 굳이 멀리서 들여오거나 제철이 아닌 재료를 써서 농약의 위험에 노출될 필요가 없죠.

조리 방법에는 어떻게 진심이 들어가나

돼지 고기가 쇠고기보다 건강에 좋은 건 알고 계시죠? 항정살을 메인 디쉬에 사용할 때가 많은데 36시간 동안 저온 조리해서 식탁에 내요. 진공 포장한 고기를 60℃의 물에 오랫동안 담가두는 거죠.

찜을 하면 단백질이 굳어 버리고 질겨지는데, 이렇게 하면 지방이 빠지고 조직이 풀어지면서 육질이 부드럽고 촉촉해져요.

우리 밥상 문화와 프랑스 식탁 문화는 어떻게 다른가

많은 차이가 있지만 시간에서 차이가 많이 나는 것 같아요. 프랑스 식탁에는 와인이 곁들여지기 때문에 2차가 없이 그 자리에서 모든 것이 해결돼요. 밥을 먹는 자리에서 술도 마시고 그만큼 식탁 앞에 있는 시간이 길죠. 하지만 우리 나라는 밥을 먹고 얼른 일어나 다음 자리로 이동하죠. 술이나 차를 마시러 가야 하니까요.

그래서 손님에 따라 코스를 조정하기도 해요. 와인을 가지고 오시는 손님에게는 코스를 길게 짜서 천천히 음식 맛을 볼 수 있도록, 반대로 와인을 주문하지 않는 손님에게는 짧은 시간 동안 모든 재료의 맛을 충분히 느낄 수 있도록 구성하죠. 연세가 있으신 분들의 경우 코스가 너무 길면 졸기도 하세요.

이럴 경우에도 코스를 짧게 짜고, 당뇨가 있는 분에게는 소금을 줄이고 단백질 위주로 구성하는 식으로 탄력적으로 조정하죠.

셰프가 오너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인 것 같다. 좋은 점이 또 있을까

덤이 있죠. 가끔씩 인터넷에서 블로그 후기를 보고 찾아온 손님들이 불평을 하기도 해요. 왜 나에게는 거기서 본 것 같은 서비스를 주지 않느냐고. 하지만 제가 블로거 분들을 우대한 것이 아니라 저와 친한 분들이라 조금이라도 더 드리고 싶은 거예요.

제가 직원이라면 남의 것을 가지고 선심 쓸 수 없지만 제 건데 눈치 볼 일이 없잖아요. 이런 게 오너 셰프 레스토랑을 찾는 재미기도 하구요.

그럼 셰프와 친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자주 오시면 제가 기억하죠(웃음). 주방이 위층에 있는데 손님들을 보기 위해 홀에 자주 내려옵니다. 가끔 혼자 오시는 분들이 있으면 제가 맞은 편에 앉아 말동무를 해드리기도 해요.

지금은 깊은 친분을 유지하고 있는 분들이 꽤 많구요, 이름을 밝힐 수는 없지만 유명한 대기업의 총수들도 자주 찾으세요.

주방을 위층에 만든 이유가 있나

주방이 홀 크기랑 거의 비슷해요. 보통 주방은 좁고 어둡지만 줄라이의 주방은 40평이 넘는 크기에 창문이 많아서 밝아요. 일부러 그렇게 했습니다. 좁은 데에서 복닥거리며 날카로워진 신경으로 만든 음식과 쾌적한 기분으로 만든 음식은 다르니까요. 저는 주방에서 욕도 못하게 해요.

주방의 불쾌한 기분은 홀의 서버에게 전달되고 바로 손님의 식탁에까지 올라가거든요. 손님에게 욕이 들어간 음식을 드려서야 되겠습니까.

앞으로 어떤 줄라이가 되고 싶은가

저희 식당은 파인 다이닝을 표방하지 않아요. 부담을 가지고 오는 곳이 아니라 맛있는 게 먹고 싶은 사람이면 누구나 올 수 있는 공간이었으면 합니다.

취나물이나 시금치 같은 익숙한 재료를 일부러 사용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에요. 지금보다 저렴한 런치 코스를 곧 선보일 계획이니 기대하세요.

최고의 셰프가 사랑하는 최고의 재료
신선초



명일엽, 신립초라고도 불리는 신선초는 엽록소와 마그네슘을 풍부하게 함유하고 있어 항암, 피로 방지, 백발과 대머리 예방에 효과가 좋다. 녹즙 재료로 자주 쓰이지만 쌉싸름한 맛에 씹히는 맛이 좋아 쌈 채소로도 많이 먹는다.

오세득 셰프는 신선초를 살짝 데쳐서 버터와 함께 볶아 고기에 곁들이는 식으로 한국의 쌈을 표현했다. 핵심은 프랑스 산 버터를 쓰는 것.

보통 버터 가격의 4배 가량이지만 진한 풍미를 내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황수현 기자 soo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