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너 셰프와 친해지기] (4) 레스토랑 서승호, 서승호하루 단 1개의 테이블… 맛·온도·음악 모든 것 고객에 맞춰

나만을 위한 식탁을 받아 본 적이 있는가? 음식 맛은 물론이고 음식의 양, 음식이 서빙되는 속도, 흐르는 음악, 테이블 세팅까지 오롯이 나에게 맞춰져 있는 그런 식탁 말이다. 이태원의 한 골목에서는 이것이 가능하다. 목적도 없이 정신 없이 달리는 현대인들 사이에서 혼자 다른 박자를 맞추고 있는 서승호 셰프가 거기 있기 때문이다.

청담동의 명소였던 프렌치 레스토랑 라미띠에를 운영하다가 2006년 홀연히 그만두고 떠났던 그가 지난해 이태원에 자기 이름을 내걸고 레스토랑을 오픈했다.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스튜디오 식으로 오픈한 이곳을 손님들이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아 지금은 레스토랑으로도 운영하고 있는 것.

대신 테이블은 하나만 놓았다. 라미띠에에서도 시간과 공을 담뿍 들인 음식을 냈지만 이번에야 말로 영혼의 마지막 한 방울까지 그릇에 담겠다는 각오가 들리는 것 같다.

테이블이 하나뿐이다. 그것도 디너에만 운영하는 이유가 있나

제가 컨트롤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하기 위해서입니다. 오늘 디너 타임에 오실 손님은 2분입니다. 직원은 저를 포함해 6명이죠. 손님을 온전히 그 시간의 주인공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더 이상 받는 것이 힘듭니다. 음식을 조리하는 데만 3시간 정도 소요되니까요.

고객에게 어떤 식으로 특별함을 제공하나

보통 예약을 할 때 손님이 좋아하는 음식이나 못 먹는 재료에 관해 간단하게 언급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부분을 참고하지만 구체적인 메뉴가 확정되는 것은 손님의 얼굴을 직접 대하고 난 후부터입니다. 손님이 레스토랑에 들어온 지 10분만에 성향의 50% 정도가 파악되고, 첫 요리가 나가고 난 다음에 나머지 40%가 파악 됩니다.

미리 메뉴를 정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만든다 것은 어쩌면 위험할 수도 있겠다

돗자리 깔고 하는 거죠(웃음). 음식의 양이라든가 간은 모두 손님이 도착하고 난 후에 결정합니다. 음식뿐 아니라 음식의 온도라든지 실내 온도, 음악의 종류 같은 무의식적인 기호도 각 손님에 따라 다르게 세팅하지요.

손님의 성향을 예측할 때는 편견에서 벗어나는 것이 필요합니다. ‘남자는 양이 많고 여자는 적게 먹을 것이다’라는 식의 편견 말이죠. 이 편견을 깨고 고객의 성향을 얼마나 빨리 알아 맞추느냐에 따라 만족도가 현저하게 달라집니다. 오늘만큼은 저희에게 전부 맡기길 바라는 마음이죠.

손님 한 사람에게 극도의 정성을 기울이는 이유는 무엇인가

음식이 나쁜 집은 왜 그렇다고 생각하시나요? 기술의 문제가 아닙니다. 마음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식당 주인은 주머니 채우는 일 외에는 다른 것을 생각할 여유가 없습니다. 자기 음식이 아니기 때문에 당연히 신경 써야 할 부분을 외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더 안타까운 것은 손님 역시 먹고 배를 채우는 일, 그 이상은 바라지 않는다는 것이죠.

재료비나 인건비가 부족한 곳에서는 맛을 내는데 한계가 있지 않을까

비용과는 상관 없습니다. 그럼 제가 삼겹살 집을 운영한다고 가정하지요. 저라면 상추를 고를 때 좀더 여리고 싱싱한 것으로 고르겠습니다. 불판 옆에 있으면 상추는 쉽게 시들게 되죠. 이를 막기 위해 두 번으로 나누어서 조금씩 서빙할 겁니다. 그러면 여리고 맛있는 상추를 신선하게 먹을 수 있지요.

이건 돈이 들어가는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주인들은 이런 부분에는 관심이 없어요. 오너 셰프라는 것은 더 많은 공을 들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는 의미입니다. 남의 눈치 보지 않고 내가 먹을 음식처럼 한껏 신경 써서 음식을 준비할 수 있지요.

(좌) 레스토랑 서승호의 디저트/ 퐁당 쇼콜라

한창 잘 운영되고 있던 라미띠에를 그만 둔 이유는 무엇인가

제 요리 인생은 마흔 살에 끝이 났습니다. 그 후로는 다른 삶을 살고 싶었어요. 생각한 것이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전달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처음 이곳을 열었을 때는 스튜디오였고 손님은 1주일에 한 번의 디너만 받았습니다. 그러던 것이 고객들의 요청으로 인해 주 3회로 늘어나고 지금은 주 6회의 디너를 받고 있네요.

하지만 하루에 한 팀의 손님을 받는다는 원칙은 철저하게 지킵니다. 크리스마스나 발렌타인 데이도 마찬가지죠. 이런 특별한 날에는 예약 문의가 몇 백 통씩 쏟아지지만 당일 날 모신 손님은 단 두 분이었습니다.

학생들에게는 어떤 것들을 주로 교육하나. 수강비는?

지금 배우는 학생은 2명인데, 한 명의 학생을 가르치는 데 1년에 1억 정도의 비용이 들어갑니다. 하지만 무상으로 교육하고 있습니다. 물론 아무 조건도 없습니다. 수료 후에 이곳에서 일해야 한다는 조건도 없죠. 10년 후에는 이들이 자기가 받은 것들을 다른 사람에게 베풀겠죠. 그게 제가 받는 대가입니다.

대신 철저하게 가르칩니다. 일주일에 5일, 하루에 7시간 이상씩 교육을 하고 매일 숙제를 내주죠. 불어도 가르쳐서 이제 두 학생 모두 웬만한 프랑스책은 그냥 읽을 수 있습니다. 그들에게 ‘너희가 포기하지 않으면 나도 포기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음식을 통해 서승호가 고객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인가

음식은 곧 저입니다. 그 날 제가 가지고 있는 것을 고객에게 다 주는 것입니다. 철저하게 남김 없이 다 줍니다. 이건 사실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이렇게 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죠.

앞으로는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나

글쎄, 특별한 계획은 없습니다. 지금 저한테 오늘 저녁에 예약된 손님을 맞는 것만큼 큰 일은 없는 것 같습니다. 잠시 후 방문할 손님에게 최고의 음식을 대접하는 것, 이것이 제가 지금 가지고 있는 가장 큰 계획입니다.



황수현 기자 soo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