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너 셰프와 친해지기] (5) 핫토리 키친 손지영매일 바뀌는 메뉴와 주인장과의 대화 속 늘어나는 단골 손님

지난해 7월 문을 연 핫토리 키친은 이자까야다. 술집이지만 다녀온 손님들의 화제는 항상 술보다는 음식이다. 거기에 음식을 만드는 셰프이자 사장 손지영 씨의 유쾌함에 대한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일본 3대 요리 학교 중 하나인 핫토리영양전문학교를 나와 차린 그녀의 식당 벽에는 ‘소녀시대 동행 시 50% 할인, 김C님 환영’ 이라고 그녀가 직접 써놓았다. 다른 쪽 벽에는 수백 장에 이르는 메뉴판이 마치 일일 달력처럼 차곡차곡 겹쳐 걸려 있다.

매일 메뉴를 바꾸는 탓에 산처럼 쌓인 메뉴판을 손님의 제안으로 기념 삼아 모으기 시작했단다. 저녁 7시, 작은 식당 안에 불이 켜지고 음악이 흘러 나오면 손지영의 음식에 홀린 사람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고 곧 왁자한 밤이 시작된다.

테이블이 없고 모든 사람이 일렬로 앉아 셰프를 바라보게 돼 있다. 일부러 이렇게 했나

아니요. 공간이 부족했어요. 하하하. 제가 워낙 모르는 사람들 이야기에도 끼어 드는 걸 좋아해서 손님들이 얘기하고 있으면 말을 걸기 좋아요. 주방에서 음식 만들다 보면 나오고 싶어 근질근질하죠. 자리가 좁다 보니까 자주 오는 손님들끼리도 서로 친해져서 같이 기타 배우러 다니고 그러던데요?

매일 바뀐다는 메뉴가 화제다

주류는 손님들 반응을 봐서 일주일에 한번, 음식은 매일 바뀌어요. 그래도 원칙은 있어요. 월요일과 화요일은 회 종류를 주로 하고 수, 목은 고기, 주말은 튀김과 샐러드를 많이 하죠. 영업이 시작되기 전에 장을 보고 메뉴가 정해지면 손으로 직접 써서 이렇게 유리컵에 꽂아 놔요. 손님들이 자주 찾는 사라다 우동이나 도미뱃살 데리야키 같은 음식은 고정 메뉴고요.

일주일에 한 번도 아니고 매번 메뉴를 새로 쓰는 게 귀찮지 않나

귀찮아요. 하하. 사실 귀찮은 것보다는 매번 시행 착오를 겪어야 하는 것이 더 어려워요. 보통 밤에 잠들기 전에 내일은 어떤 어떤 요리를 해야겠다고 미리 생각해 놔요. 다음 날 메뉴를 정하고 첫 주문을 받으면 정말 떨려요.

처음 만드는 거잖아요. 만들어서 그릇에 담은 직후부터 후회가 밀려오죠. 아, 더 맛있게 할 걸. 더 예쁘게 담을 걸. 그리고 또 누군가 주문해주길 은근히 기다리죠.

그런 위험을 겪으면서도 굳이 메뉴를 바꾸는 이유가 있나

일본에서 요리 학교에 다닐 때였는데요. 생활비를 벌려고 이자까야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거기 주인이 마치 한량 같은 사람이었는데 메뉴 판을 둘로 나눠서 한쪽에는 고정 메뉴를 넣고 한쪽에는 글을 쭉 써놓곤 했어요.

오늘 내가 너무 좋은 고등어를 손에 넣었는데 찜으로 먹을 지 조림으로 먹을 지 택하십시오, 뭐 이런 내용의 글이었는데 그게 너무 멋진 거에요. 꼭 왕 같잖아요. 저도 그래서 따라한 건데.. 뭐, 결과적으로 왕이 아니라 식순이가 되긴 했지만. (웃음)

매일 장을 본다고. 재료는 어디에서 구입하나

야채는 이 앞 시장에서 사오구요. 고기는 횡성에서, 해산물은 통영에서 받기도 하고 해산물 시장에 가기도 하구요. 생선과 고기는 얼리지 않는다가 원칙이에요. 그리고 또 하나, 대용품을 쓰지 않는다. 버터 대신 마가린, 동물성 크림 대신 식물성 크림, 생크림 대신 우유, 이렇게 한다면 당장 재료비는 아끼겠지만 풍미가 확실히 떨어져요.

술도 화학식 소주는 없고 전부 정통 방식으로 만든 증류주에요. 화학식 소주 찾는 손님이 화낸 적도 있다니까요? 하지만 어쨌든 재료가 좋아야 해요. 모양도 예뻐야 되구요. 제 원칙이에요.

요즘에는 한국에도 이자까야가 많이 생겼다

네. 그런데 별로 좋아 보이지 않아요. 일본 이자까야 중에서도 냉동 음식을 내놓는 저가 프랜차이즈가 주로 들어왔는데 가격은 엄청 높더라구요. 일본 현지에서는 싸게 팔리는 음식을 빨간 등 몇 개 달아 놓고 그렇게 비싼 값을 매기다니. 일본 문화에 대한 동경을 이용한 상술인지…어쨌든 별로 반갑지 않아요.

한국은 일본과 달리 술과 음식을 따로 먹는 문화다. 핫토리 키친의 음식을 안주로만 생각한다면 비싸다고 하는 사람도 있겠다 (자연산 광어회 4만원, 간사이 오뎅 2만 3천원선)

네, 가끔 있어요. 전 그럼 이렇게 말해요. 식당이라면 이 가격의 2배를 받아도 된다고. 자연산 광어를 예로 들면 배송비까지 합하면 20만원이에요. 배송비는 제가 문다고 치고 16만원이라고 해봐요. 여기에 다른 데서 하는 것처럼 2~2.5배를 매기면 가격이 너무 올라가요. 그래서 딱 밑지지 않을 만큼만 가격을 붙여요.

그것도 어쩌다 주문이 덜 들어와서 남기라도 하면 밑지는 거죠. 손님들도 인정하세요. 가격은 다소 비싸지만 재료와 맛을 생각한다면 적당하다고. 그냥 소주 마시기 위해 들어오는 손님들이라면 좀 놀라죠.

요리와 운영을 동시에 하기 때문에 좋은 점도 나쁜 점도 있을 것 같다

아, 정말 가끔은 홀가분하게 음식 만들면서 손님들하고 떠들기만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재료값 대비 음식값 산정, 세금 계산 이런 거 너무 복잡해요. 하지만 좋은 점도 있죠. 예를 들면 손님들과 협상이 가능해요. 생선 소금 구이를 메뉴로 내놨을 때 조림으로 해주면 안돼? 라고 묻는 손님들이 있어요.

이유를 들어보고 타당하면 조림으로 바꾸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제가 바로 주방에서 나와서 설득을 해요. “손님, 이 생선은 이러저러한 이유로 이렇게 해 먹는 게 가장 맛있답니다.” 손님들과 이런 식으로 의견을 조율하고 소통하는 것, 제 가장 큰 즐거움 중 하나예요.

가장 보람 있는 때는 언제인가

당연히 맛있다고 해주실 때죠. 저는 칭찬을 먹고 살아요. 계산하면서 일부러 주방에 있는 저를 불러 맛있었다고 하시는 손님들이 계세요. 술 한잔 따라주시기도 하고요. 그런 게 가장 큰 보람 아니겠어요?

최고의 셰프가 사랑하는 최고의 재료
후추


손지영 셰프의 모든 음식에는 후추가 들어간다. 고기의 잡 냄새를 없애주고 드레싱에는 강한 포인트를 주는 등 쓰임새가 많기 때문이다.

가공 과정에 따라 검은 후추, 하얀 후추, 빨간 후추로 나뉘는데 여기에서 매운 맛의 정도도 갈린다. 검은 후추는 가장 강한 맛을 내기 때문에 고기 요리 등에 사용되고 하얀 후추는 맛이 부드러워 생선, 채소 요리에 쓴다.

붉은 후추는 색깔이 예뻐 디저트와 초콜릿, 아이스크림 등에도 종종 쓰인다.





황수현 기자 soo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