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의사가 쓰는 '사랑과 전쟁'

이혼은 당사자에게도 견디기 어려운 스트레스이지만 그 자녀에게도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부모의 이혼이 자녀에게 주는 영향은 그들의 연령, 성별, 가족 내 위치에 따라 달라지며, 이혼 이전에 경험한 부모의 갈등 빈도와 강도, 해결되는 방식, 그리고 그러한 영향을 보완해주는 방법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난다.

먼저 자녀들의 연령에 따라서 반응이 다르게 나타난다. 일반적으로 학령기 이전의 자녀들은 부모의 이혼에 대해 매우 놀라고 자신의 잘못 때문인지 혼란스러워하며 자신도 버림을 받게 되지 않을지 두려워한다. 어린 아이일수록 자신의 감정 표현을 하지 못하고 발달과정의 퇴행을 보이기도 한다.

학령기 자녀들은 부모의 이혼이 자신의 잘못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창피하게 느끼고 외로워하거나 부모로부터 거부된 사실에 대해 분노를 느낀다. 또 표현하지는 않아도 부모의 재결합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있는 경우도 많다. 청소년기의 자녀는 부모의 이혼 결정에 대해 분노, 슬픔, 부끄러움 같은 감정을 느낀다. 그리고 이혼 후에 보이는 부모의 성적 행동에 대해서 혼란과 갈등을 경험한다.

자녀들이 성장하면서 부모의 이혼에 대한 반응과 이해가 달라지기도 한다. 이혼 당시에 부모의 갈등 상황과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경우에는 이혼 후 시간이 지나며 현실적인 인식을 통해서 비교적 안정된 생활을 회복한다. 그러나 이혼 전부터 정서 또는 행동 상의 문제를 보였던 청소년은 부모의 이혼 후에 더 심한 증상을 나타내기 쉽다.

이른 시기에 부모가 이혼한 아이들도 청소년기가 되면 헤어진 부모와 접촉하고 싶은 강한 욕구를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다른 부모와 살았더라면 하는 공상을 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어머니와 살아온 자녀는 스스로 독립심과 자신감이 결여되었다고 느껴서, 아버지와 살기를 바라거나 어머니에게 강하게 반항할 수도 있다.

이런 경우 부모는 자녀의 반발에 충격을 받기 마련이지만, 자녀가 성장하면서 나름대로 부모의 이혼을 극복하는 과정이라는 점을 이해하고 자녀를 도와주려는 태도를 보여주어야 한다.

부모가 함께 사는 동안 얼마나 심하게 싸웠는지도 자녀의 성장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데, 매우 심하게 싸우는 부모 밑에서 영유아기를 보낸 자녀는 성격이 불안하며 대인 관계에서 불안정한 애착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청소년기의 자녀는 부모의 갈등이 외부로 심하게 드러나는 경우일수록 불만을 공격성이나 비행 등으로 표현하며, 부모의 갈등이 만성화되어 숨겨진 경우일수록 우울, 불안, 대인관계 회피 등의 증상으로 나타나기 쉽다.

그러나 부모의 갈등이 심하더라도 자녀가 받을 충격을 완화시켜 줄만한 수단이 있는 경우에는 병리적인 증상으로 발전하지 않을 수 있다.

부모 중 적어도 한 사람이 현명하고 책임감 있게 양육하는 경우, 함께 자라는 형제 자매처럼 타인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경우, 함께 살지 않는 부모와 정기적인 만남을 유지하며 긍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으면 부모의 이혼에 따른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시킬 수 있다.

무엇보다 이혼한 부모가 각자 만족스러운 삶을 살면서 상대를 비난하지 않고 자녀 양육에 협조를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그렇지 못하면 자녀가 오히려 이혼한 부모의 푸념과 상처를 달래주거나, 부모를 대신하여 형제를 돌보는 역할을 떠맡느라 자신의 정서적 사회적 발달을 희생하게 되기도 한다.

부부가 이혼할 때에는 흔히 자녀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기에 어려움이 많으며, 따라서 자녀는 부모의 이혼에 일방적인 희생자가 될 수 밖에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자녀의 성장을 위해서는 이혼하여 같이 살지 않는 부모와의 심리적 유대감도 필요하다.

부부는 이혼하더라도 부모의 역할은 끝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자녀의 신체적, 물리적, 심리적 행복에 대한 관심을 함께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그러나 사실상 이혼 후에 협조할 수 있는 부부가 많지 않다는 점에서 보면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기준을 세워줄 수 있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박수룡 백상신경정신과의원 원장 sooryong@medimai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