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의사가 쓰는 '사랑과 전쟁'

이혼하는 사람들이 많아짐에 따라서 재혼도 많아지고 있다. 그런데 재혼 이혼율이 초혼 이혼율의 4배에 이른다는 통계 결과에서 보듯이 초혼에 비해 재혼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초혼의 경우에는 연애 기간을 통해서 서로에 대해 알아가면서 주위의 의견을 듣기도 하며 상대를 고를 시간이 충분한 경우가 비교적 많다. 그러나 재혼의 경우에는 함께 살 것인지를 처음부터 서둘러 결정해야 하기 때문에 서로를 알아가는데 시간적인 제약을 받는다.

또 이미 이혼이라는 불명예스러운 경험을 한 때문에 심리적으로 위축되어 있거나 빨리 재혼을 해서 ‘정상적인 생활’을 하려는 강박적 태도 때문에 재혼 후의 생활에 대해 충분한 고려를 하기 어렵다. 이것은 사별로 혼자 살게 된 경우에도 별로 다르지 않다. 성공적인 재혼을 위해서는 상대에 대해서만 아니라 자신에 대해서도 잘 알아야 하는데, 그럴 틈을 갖지 못한다면 그만큼 위험을 무릅쓰는 셈이다.

재혼을 결심하는 이유는 남녀 모두 외로움에서 벗어나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지만, 그 다음의 이유는 남성들은 살림이나 자녀 양육을 해줄 사람이 필요하고 여성들은 경제적 필요나 가장의 역할을 해줄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재혼 상대를 고를 때 배우자 개인의 인성이나 상호 애정에 대한 고려보다는 남자의 재산이나 직업 같은 현실적 조건을 우선 순위로 두는 경우가 초혼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많다.

이는 이전 결혼에서 경험한 어려움을 다시 겪지 않으려는 심리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를 탓할 수 만은 없겠으나, 초혼이든 재혼이든 결혼 당사자의 사랑이 있어야 많은 장애들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은 다르지 않다.

이혼이나 사별 후에 재혼을 하는 사람들은 상대가 자신의 상처를 잘 이해하고 도와줄 것을 기대하면서, 동시에 상대가 자신을 과연 어떻게 생각할지에 대한 의구심을 가지기도 한다. 그래서 상대의 전 배우자와 비교를 당하는 것 같은 느낌을 가지기도 하고, 자신도 역시 새 배우자에게서 전 배우자와 비슷한 점을 발견하면 깜짝 놀라기도 한다. 이는 이전 결혼의 상처에서 충분히 벗어나지 못한 경우에 더 심할 수 있다.

특히 이혼의 원인이 상대 배우자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신이 또 다시 같은 상황에 놓이지 않을까 하는 강박적 불안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상대의 잘못이 컸다고 해도 자신이 책임져야 할 점들과 당시에 존재했던 다양한 원인을 찾아보고 문제점을 인정해야 이혼의 상처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재혼을 할 때 자녀가 있는 경우에는 어려움이 몇 배로 늘어난다. 자신의 자녀와 새 배우자의 사이가 어떨 것인지, 자신은 새 배우자의 자녀와 어떻게 지내야 할 지 초혼에는 전혀 없던 문제를 맞게 된다. 자녀가 재혼 가정에서 함께 살게 되는 경우뿐 아니라 전 배우자가 맡고 있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자신은 맡아 키우지 못하는 자녀 때문에 죄책감을 가지면서도, 새 배우자가 자녀 문제로 전 배우자와 연락을 주고 받다가 관계가 지속되지는 않을지 염려되거나 자신 모르게 돈이나 선물을 하지는 않는지 신경 쓰인다. 또 친 자녀가 아닌 경우에는 재혼 부부 당사자뿐 아니라 주변 혈연가족들의 유별난 관심 때문에 자연스러운 관계형성이 오히려 지장을 받기도 한다.

만약 재혼 후에 자녀를 얻는 경우에는 문제가 더 복잡해질 수 있다는 것도 예상해야 한다. 실제로 재혼 부부 중 상당수가 재혼 자녀의 출산으로 기존 자녀와의 사이가 나빠질 것을 염려하여 출산을 기피하며, 자녀를 둔 독신 남녀가 재혼을 꺼리는 큰 이유 중의 하나가 자녀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줄 것을 염려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많은 어려움 때문에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채 사실혼 관계로 살아가거나 이성친구로만 지내는 남녀들도 많다. 그러나 그런 방법들도 그 나름대로 문제점을 많이 가지고 있다.

결혼이나 이혼과 마찬가지로 재혼을 결정할 때에도 적잖은 어려움이 있을 것을 미리 염두에 두는 것이 좋겠다. 하지만 장래에 대한 막연한 기대나 불안으로 멈추지 않고 예상되는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지에 대해서 함께 구체적으로 의논하여 합의에 도달할 수 있다면 성공적인 재혼이 가능할 것이다.



박수룡 백상신경정신과의원 원장 sooryong@medimai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