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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은 문화… 적당히 하면 적당히 끝나죠"
[오너셰프와 친해지기] (10) 비스테까 김형규 셰프
최고급 참나무 숯으로 구운 제대로 된 스테이크 먹고 싶을 때 찾아가는 곳





황수현 기자 sooh@hk.co.kr
사진=임재범 기자 happyyjb@hk.co.kr



셰프 자신이 오너가 된다는 것, 그것은 무한대의 자유를 의미한다. 눈 앞에 널린 수많은 자유들 중 셰프가 응당 가장 먼저 집어들어야 할 카드는 맛이다. 맛 앞에서는 최고의 조리 도구도, 화려한 기술도, 새로운 트렌드도 때론 모두 거추장스러울 때가 있다.

한국에서도 제대로 된 이탈리안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을 알린 레스토랑 라쿠치나를 16년 간 이끈 김형규 셰프가 스스로 오너가 되어 나왔을 때 사람들은 이 스타 셰프가 자신의 내공을 총동원해 보여줄 화려한 변주에 주목했다.

그러나 그는 집과 가깝고 인적이 드문 곳에 테이블 여섯 개를 놓고 스테이크를 팔기 시작했다. 가끔씩 왜 좀더 이목을 끌 수 있는 음식을 시도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이게 제일 맛있다”고 대답하면서.

한 레스토랑에서 16년 간 일하기는 쉽지 않다. 왜 나오게 되었나

라쿠치나가 첫 직장은 아니다. 요리를 시작한 것이 1982년이니 그 전에 힐튼 호텔 등에서도 근무했다. 일을 하는 내내 늘 홀로 서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스트레스를 견디기가 힘들었다. 끊임 없이 밀려 들어오는 주문, 그건 곧 명령이다. 게다가 시키는 대로 하면 되는 요리사와 달리 주방장은 항상 새로운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린다.

오너가 되더라도 그런 압박은 마찬가지이지 않나

다르다. 비스테까는 이제 3년이 다 되어가는데 한 번도 메뉴를 바꾼 적이 없다. 이름을 지을 때부터 우리는 스테이크 하나만 잘 하자는 의지를 단단히 비쳤다. (비스테까는 이탈리아어로 ‘스테이크’라는 뜻) 물론 메뉴가 바뀔 때도 있다. 시장에서 좋은 재료를 발견하면 그 날의 애피타이저나 파스타는 바뀐다.

그러다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또 얼마 간은 메뉴를 그대로 둔다. 압박감에서 해방된 음식, 요리사가 만들고 싶은 음식, 요리사가 가장 맛있다고 생각하는 음식, 이게 오너 셰프 레스토랑에서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간혹 새로운 것을 원하는 손님은 없나

아무리 단골이라고 해도 한 달에 10번 이상 올 수는 없는 일이다. 또 저번에 맛있게 먹었던 음식이 없어지는 것을 싫어하는 손님도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도 종종 이곳을 찾는데 치즈 수플레를 좋아해 ‘따로 주문하지 않더라도 늘 내달라’고 하더라. 이곳은 그저 제대로 된 스테이크를 먹고 싶을 때 찾아오는 곳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어쩌면 기존에 해왔던 요리에 대한 나만의 작은 반항이라고도 할 수 있다 (웃음). 메뉴를 바꾸지 않고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메뉴에 없는 요리를 손님이 원할 경우에는 재료가 허용하는 한 뭐든지 다 해드린다.

그럼 스테이크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겠다. 비스테까의 스테이크는 무엇이 다른가

소스나 양념이 따로 없다. 약간의 소스가 따라 나오지만 접시의 가장 자리에 살짝 곁들이는 정도다. 왜냐하면 고기의 맛은 양념하는 과정 전에 이미 결정이 나기 때문이다. 일단은 질 좋은 고기를 고르는 것이 먼저고 그 다음이 관리다. 적정 기간 동안 적정 온도에서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고기 맛이 크게 달라진다.

마지막으로 굽기인데, 사실 옛날에는 스테이크는 다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미국에 가서 보니 굽는 방법도 천양각색이더라. 불이 위 아래로 나와서 스테이크를 굽는 곳도 있고, 또 거기에 따라서 맛이 달라지는 것을 보고 굽기에 대한 생각을 처음부터 다시 하게 됐다.

그럼 지금 비스테까에서는 어떻게 굽나

나는 숯불로만 굽는다. 화력이 일정치 않고 다루기가 까다로워 적응에 시간이 걸리지만 익숙해지고 나니 이게 가장 고기 맛이 괜찮더라. 최고급 참나무 숯만 쓴다는 것도 비결이라면 비결이겠다. 이렇게 구운 고기는 적당한 기름기에 씹는 느낌도 훌륭하고 육즙이 그대로 보존돼 있어 소금 외에 아무 것도 필요 없다.

채소 한 두 가지만 곁들인다. 재료 본연의 맛을 최대한으로 끌어 올리는 것이 내 음식의 특징이다. 가리비만 해도 찌기, 삶기, 굽기 등 수십 가지의 조리법이 있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다양한 변주가 가능하지만 나는 그 중 한 가지 방법만 쓴다. 가리비 맛이 제대로 나기만 한다면 방식은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좌) 립 아이 스테이크와 치즈 수플레


자신의 색깔을 마음껏 펼칠 수 있어서 좋지만 한편으로는 운영을 겸하느라 힘들 때도 있겠다

본래 음식은 장사가 아니고 문화다. 돈 벌 생각으로 시작하면 오래 갈 수 없다. 이 식당을 열기 전에 시장 조사 차 오토바이를 타고 청담동 골목골목을 누볐는데 내로라하는 식당들이 운영난을 겪고 있고 몇몇은 이미 문을 닫은 곳도 있더라. 오너 셰프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음식은 기본이고 사업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모르는 사람이 더 많지만 비스테까 이전에도 두 번 식당을 연 적이 있다. 손님은 그럭저럭 들었지만 시행 착오가 많았다. 10년 전에 일반 회사원들을 대상으로 파스타와 와인 전문점을 열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장사가 뭔지를 알았다. 그때 배운 것들이 지금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

레스토랑 컨설팅도 수 차례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어떤 점을 가장 강조하나

요즘에는 식당을 시작하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망하려면 식당 하라”고 한다 (웃음). 오래 근무하던 곳을 나오면서 다양한 곳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다. 그런데 대부분 식당 운영을 취미로 생각하더라. 흔히 ‘식당이나 할까?’ 라고들 말하지만 신발을 좋아한다고 신발을 만들 수는 없는 일이다.

오죽 답답했으면 그냥 혼자 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 지금의 비스테까 건물을 보자마자 그 자리에서 바로 계약을 해버렸다. 내가 늘 하는 이야기는 ‘적당히 하면 적당히 끝난다’는 말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음식은 장사라기 보다는 문화다. 단순하게 와인을 가져다 놓고 파는 것과 와인을 제대로 즐길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것은 천지차이다.

요리를 직접 하는 것은 물론이고 아직까지 서브도 한다고 들었다

단골들은 내가 얼굴을 비추지 않으면 섭섭해하니까 어쩔 수 없다. 서브뿐 아니라 주문도 받고 설거지도 한다. 재료가 떨어지면 급하게 노량진 수산 시장으로 오토바이를 몰기도 하고 2층 화단의 꽃과 포도도 전부 직접 가꿨다. 힘들어도 차차 자리를 잡아간다는 사실이 뿌듯하다.

테이블 6개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2층까지 확장했고 3명이던 주방 인원도 6명으로 늘었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사람들도 비스테까의 고객이다. 내가 맛있다고 생각하는 음식에 동감해주는 이들이 많다는 사실이 기쁨이 된다.

앞으로는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나

6월말 경에 청담동에 레스토랑을 하나 더 오픈한다. 오띠모라는 이름으로, 1층의 멤버십 와인바와 함께 운영될 예정이다. 비스테까보다는 조금 더 가격대가 높고 고급스러운 느낌을 지향하는 레스토랑이다. 반대로 비스테까에서는 지금보다 좀 더 홈 메이드 스타일에 가까운 요리를 보여주려고 한다. 투박하고 꾸밈 없는 비스테까만의 색깔을 더 확실하게 표현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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