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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악의 식탁, 괴식하는 사람들
호기심과 재미 위해 말도 안되는 맛 조합 시도하며 그 자체를 즐겨




황수현 기자 sooh@hk.co.kr



1) 삿포로 맥주 캐러멜.
2) 프라이드 치킨 찌개.
3) 라면 오코노미야키.
4) 포두 주스와 맥주.
5) 오레오 튀김.
먹는 것 가지고 장난 치지 말랬다. 뒤샹도, 박찬욱도, 쿠엔틴 타란티노도, 남의 속 뒤집어 놓는 것에 일가견 있는 사람들도 식탁 앞에서만큼은 제 정신으로 돌아와 자신의 몸을 기능하게 할 소중한 생채 에너지원을 즐거운 마음으로 소담스럽게 먹어야 할 일이다. 그러나 여기에 조차 예외가 있으니 괴상한 먹거리에 눈독 들이는 이들이다.

튀긴 오레오(초콜릿 쿠키), 깻잎 맛 콜라, 흑마늘 젤리, 오렌지 주스에 만 고래밥… 듣는 것만으로는 맛을 상상할 수 없는, 아니 상상하고 싶지 않은 음식을 찾는 사람들. 식탁 위 최고의 가치로 추앙 받던 맛을 밀어내고 실험 정신과 호기심을 대신 차려내는 이들은 누구인가. 혐오와 호기심이 진득하게 버무려진 '괴식'의 세계로 떠나보자.

튀긴 오레오 위에 크림과 시럽을 올리면?

괴식은 괴상한 음식이다. 상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억' 소리를 낼 만한 재료의 조합 또는 모양새, 맛 등이 괴식의 조건이 된다. 온라인 블로그를 중심으로 공유되고 있는 괴식 문화는 여러 가지 뜻으로 쓰인다.

집에서 음식을 만들 경우 내공의 부족으로 맛이 없을 때도 괴식이 되지만, 들끓는 모험심의 발로로 일부러 말도 안 되는 조합을 시도했을 때 – 예를 들어 프라이드 치킨을 찌개에 넣었을 때도 괴식이 된다.

식당에서 맛 본 음식이 영 입에 안 맞거나 기괴할 정도로 특이할 때, 또는 식품 회사에서 출시한 통조림이나 음료수의 맛이 헛웃음을 자아낼 정도로 이상할 때에도 괴식이라고 부를 수 있다. (해외 여행 중 도저히 식재료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것 - 이를 테면 선인장 같은 것들을 활용해 만든 음식도 괴식의 하나다)

20대 초반의 여성 L씨는 감자 칩을 딸기 잼에 찍어 먹거나 소주에 생크림 케이크를 먹는 등의 가벼운(?) 괴식이 일상화 되어 있다. 세상에 맛있는 음식이 많은 데도 불구하고 굳이 위험을 무릅쓰는 이유를 묻자 대답했다.

"라면이 끓는 것을 보고 있으면 자연히 맛이 짐작되잖아요. 매번 같은 맛은 질리니까 새로운 걸 맛보고 싶어요. 혹시 여기에 마요네즈를 넣으면 더 맛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면 바로 시도하죠. 성공하면 다행이고 아니면 어쩔 수 없는 거구요. 아이스크림을 먹다가 너무 달아서 간장에 찍어 먹은 적도 있어요. 이런 경우는 반 정도는 장난이에요."

맛있는 것을 먹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같지만 괴식주의자들에 한해서는 미식에 대한 욕구보다 호기심이 앞설 때가 많다. 식당에 갈 때마다 매번 새로운 메뉴를 시켜 맛 본다거나 난생 처음 듣는 재료라면 일단 시도하고 보는 것도 공통점이다.

당연히 식료품 회사와 식당이 내놓는 실험작의 주 고객이 된다. 돈까스를 넣은 와플이라든지, 대합 엑기스를 넣은 조개 맛 토마토 주스, 삿포로 맥주 맛이 나는 캬라멜, 마늘 엑기스가 들어간 흑마늘 젤리 등은 누군가에는 "지옥의 맛"이지만 이들에게는 신세계요, 정복해야 할 고지다.

지옥의 맛, 어디까지 맛 봤니?

먹기 위한 괴식은 그나마 건전한 편이다. 지금부터 소개할 괴식에 비한다면.

웹 상에는 한 남자가 시중에 파는 자양 강장제를 모조리 섞어 끓여 마시는 내용의 동영상이 있다. 마셔보니 잠이 안 오더라는 영상 속 주인공의 말에 '역겹다, 재미있겠다, 나도 해봤다' 등의 댓글이 폭주했다. 몇 해 전에는 펩시 블루에 우동을 말아 먹는 영상이 유행했다. 펩시의 신제품이 맛 없다는 평이 돌면서, 여기에 우동까지 말아 먹으면 얼마나 역겨울까 하는 발상에서 시작된, 그야말로 놀이였다.

볼 거리, 놀 거리로서의 음식은 괴식의 또 다른 모습이다. 이들은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조합을 시도하며 말도 안 된다는 그 자체를 즐긴다. 혐오스런 먹거리를 만들고 먹고 경악하는 일련의 과정이 모두 오락이다.

지난 해 방영된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에서는 주인공 강마에가 녹차 티백을 씹어 먹는 모습이 방영됐다. 그 날 인터넷 커뮤니티 디씨 인사이드에서는 30명이 넘는 사람들이 녹차 티백을 씹어 먹는 자신의 모습을 찍어 올렸다.

음식 칼럼니스트 미상유는 재미와 이슈를 원인으로 들었다.

"괴식 중에는 작정하고 못 먹을 음식을 만드는 경우도 있어요. 과자로 먹으라고 나온 라면을 끓이거나 오렌지 주스를 넣거나, 일종의 장난이죠. 블로그에 올리면 이슈가 되니까 관심을 끌 수도 있구요."

괴식의 모태는 어디일까? 굳이 발생 동기를 추적하는 것도 우습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괴식이 일본의 엽기 문화와 상당 부분 닮았다는 사실이다.

약 6~7년 전 엽기 문화가 트렌드로 부상했을 때 오직 보는 이의 미간을 찡그리게 만들겠다는 단 하나의 목표를 가진 수많은 영상과 사진들이 웹 세상을 휩쓸었다. 추하고 기괴한 것들이 선사하는 짜릿한 자극은 역겨우면서도 눈을 뗄 수 없었고, 그 소재에 음식도 예외는 아니었다. 위에서 언급한 '자양 강장제 짬뽕' 영상과 '펩시 우동' 영상도 모두 일본이 출처다.

종종 괴식을 시도한다는 '배길수'라는 닉네임의 블로거는 괴식 문화를 두고 이렇게 말한다.

"음식이 풍요로우면 상대적으로 놀이로서 시도할 수 있는 여유도 많아지는 것 아닐까요? 하지만 자기가 먹지도 않을 음식을 일부러 만드는 것에는 비판적이에요. 버려지는 음식물 쓰레기도 문제거니와 거기에 들이는 시간도 아깝지 않나요?"

기자의 파란만장 괴식 체험기


기자로 말할 것 같으면 그 많은 31가지 아이스크림 중에서도 주야장천 한 가지만 먹어대는, 선택의 폭을 기쁨이 아닌 노동으로 받아 들이는 사람 중 한 명이다. 이 말을 미리 꺼내는 이유는 물론 "지금 이 정도를 가지고 괴식 체험이라고 할 수 있느냐"는 비난을 피해 보려는 속셈이다.

괴식은 역시나 맛에 대한 기대는 둘째 치고라도 호기심을 자극하는 측면이 있다. 사무실에 새로 들여온 탄산수와 아이스 커피를 보며 전에 없던 모험심이 불끈 솟았으니 말이다. 어차피 물이면서 너무 비싸 미운 페리에를 종이컵에 따르고 아이스 커피 한 봉을 다 부었다. 앗, 거품이 뽀글뽀글 차올라 바닥을 적시는 것은 예상치 못했던 일이다.

거친 거품이 카푸치노 같은 고운 거품으로 진정된 후 한 입 맛 본 탄산 커피의 맛은… 역시 대중화 되지 않은 것은 다 이유가 있다라는 결론이랄까. 물론 기자에게야 미운 사람 골탕 먹이기 용으로 쓰이겠지만 커피의 밋밋한 질감에 질린, 또는 탄산수의 존재 의미를 의심하는 누군가에게는 신대륙에 버금가는 발견이 될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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