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서 만든 OEM 와인… 친근한 지역명에 가격 인하 효과도

떼루아(terroir)란 프랑스어로 토양(Soil)을 뜻한다. 흙을 뜻하는 ‘terre’로부터 파생된 단어로 흔히 와인을 얘기할 때 많이 나오는 용어이기도 하다. 광범위하게는 와인의 주재료가 되는 포도밭의 입지, 지세, 지질, 그리고 이에 영향을 미치는 기후, 강수량, 태양, 바람, 날씨까지도 모두 포함한다. 이들 조건에 따라 포도와 와인 맛이 달라져서다.

최근 ‘떼루아’란 이름의 와인이 시장에 나타났다. 물론 프랑스어이고 프랑스 와인을 설명할 때 자주 등장하는 말이지만 한국산 와인이다. 프랑스에서도, 한국에서도 딱히 그런 이름의 와인은 전에 없었다. 그럼 왜 한국산 브랜드 와인에 프랑스 와인 용어가 붙었을까?

떼루아는 엄밀히 말하자면 주문자 상표 생산방식(OEM)의 와인이다. 한국에서 ‘이런저런 재료들로 이러이러하게’ 만들어달라고 주문해 자체 브랜드를 붙인 것. 좀 더 미학적으로 표현하자면 ‘한국형 브랜드 와인’이라 해도 틀리진 않다.

프랑스에서 병에 담기고 상표가 이미 붙어 있는 와인을 그대로 수입해도 될 텐데… 쉬운 방법을 마다하고 굳이 한국형 와인으로 태어난 데는 이유가 있다.

지금 시장에 선보이는 떼루아 와인은 크게 2가지. 보르도 지역과 부르고뉴 지역 와인들이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와인 산지인 두 지역에는 각각의 이름을 가진 수많은 와이너리들이 있다. 모두 서로 다른 이름들.

떼루아 브랜드의 와인은 ‘떼루아 보르도’와 ‘떼루아 부르고뉴’ 두 이름을 다 가지고 있다. 보르도 지역 와인은 또 떼루아 메독, 떼루아 쌩떼밀리옹, 떼루아 부르고뉴 와인은 각각 루즈와 블랑 이름을 더했다. 5가지 와인 모두가 프랑스 대표 와인 산지의 이름을 그대로 갖다 쓴 격.

와인 브랜드에 왜 굳이 지역명을 내세웠을까? 이름을 팔아 와인을 많이 팔기 위해서? 그런 기대도 할 수 있겠지만 더 정확히는 와인을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한국 사람들은 프랑스 와인을 접할 때 샤또, 즉 와이너리 이름으로 먼저 접하기 쉬운데 이것이 처음에는 너무 어렵다는 것. 그래서 소비자 인식을 돕기 위해 유명하고도 쉬운 지역명을 앞세운 것이다.

또 떼루아, 메독 등 여러 단어들은 익숙하고도 외우기 쉽다는 점도 작용한다. 그렇게 와인의 초보 기준점이 잡히면 그 다음에는 이름난(물론 이름이 어려운 종류도 많다) 와인들로 넘어갈 수 있다는 것.

더불어 한국형 브랜드 와인으로 만들면 가격 인하 효과도 있다. 완제품을 사는 것이 아니라 재료와 반제품만 사서 자체 상표를 달기 때문에 가격이 내려가서다. 가방이나 신발 등을 주문해 생산하는 것이나 와인 모두 마찬가지. 그래서 떼루아는 동급 와인들보다는 몇 천원씩이라도 더 싼 축에 속한다. 특히 보르도와 부르고뉴 와인들 중에서도 크게 비싸지 않고 맛 괜찮은 와인들이 많다는 것을 알리는 효과도 부수적으로 거두고 있다는 평.

굳이 와인이 어디서 가져온 것인지를 알려면 와인 병의 백 라벨을 보면 된다. 보르도의 어디, 부르고뉴의 어느 와이너리산 와인인지 기록돼 있다. 하지만 걱정 한 가지. 앞으로 소비자들의 와인 인식이 높아지면 와인 브랜드에서 떼루아라는 이름은 시시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직까지 우리 와인 시장이 전혀 그럴 단계는 아니니까 기우일까!



박원식기자 park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