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1년에 한두 명 정도서 올해는 6명이나 기사 작위 영예

1-김상용 동원와인플러스 사장과 한관규 프랑스대사관 경제상무관실 부상무관(왼쪽부터)
2-기사작위식에서 쟝미쉘까즈와 함께 한 김상용 동원와인플러스 사장
3-금양인터내셔날의 박재범 부사장

“저만 받는 줄 알고 ‘숨기고 가만 있었는데’ 프랑스로 날아가 보니 한관규 상무관과 같이 받더라고요.(웃음)” 김상용 동원와인플러스 사장의 말이다.

프랑스 ‘와인 훈장’의 봇물이 터졌다. 예년 같으면 프랑스에서 와인 기사 작위를 받는 한국인은 1년에 한 두 명 정도. 그런데 올 해는 무려 6명이나 된다. 와인업계에서도 놀랄 만한 일이다.

김상용 동원와인플러스 사장과 한관규 프랑스대사관 경제상무관실 부상무관, 박재범 금양인터내셔날 부사장, 아시아 최초 와인마스터 지니 조 리(한국명 이지연), 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 회장 등. 이들은 모두 프랑스에서 최근 열린 와인엑스포(비넥스포)에서 기사 작위를 받는 영예를 누렸다.

이들 중 한관규 부상무관은 생테밀리옹(Saint-Emilion)의 유서깊은 쥐라드(Jurade) 기사로 추대됐다. 다른 5명은 프랑스 보르도 지역 와인연합회로부터 ‘코망드리 와인 기사(Commanderie du Bontemps de Medoc et des Graves)’ 작위를 받았다.

옛날 영국이 보르도 지역을 지배하던 시대에 생겨난 생떼밀리옹 쥐라드는 81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한다. 1948년 재조직돼 지금까지 와인 생산자 및 유통업자 등 와인 소비문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이들에게 기사 작위를 수여해 오고 있다. 수상자는 크게 3부류. 국가 원수급에게 수여하는 프로텍퇴르(Protecteurs), 정계와 재계의 VIP나 연예인들에게 수여하는 페르(Pair), 와인 산업 관계자에게 부여되는 프뤼돔므(Prud’ hommes) 등으로 나뉜다.

한관규 상무관은 이 중 프뤼돔므 기사 작위를 수여받았다. 이 분야는 포도재배자나 네고시앙, 유통업자, 소믈리에 등이 보통 그간의 수상자들이다. 한 상무관은 ‘당연히 프랑스 와인을 위해서 일해야 하는’ 대사관 직원, 공무원이라는 특수한 신분임에도 작위를 받아 무척 예외적인 케이스로 꼽힌다. 그만큼 와인 분야에 끼친 공적과 역할을 인정받았다는 반증.

와인 수입회사 금양인터내셔날의 박재범 부사장 등이 받은 것은 프랑스 ‘코망드리 와인 기사’ 작위. 생떼밀리옹보다는 포도 경작과 와인 생산 규모가 큰 편이라 수상자도 더 많은 편이다.

1949년 시작돼 올해 60회째를 맞는 코망드리 기사 작위는 보르도 지역의 와인 발전에 기여한 세계 각국의 전문가와 명사들에게 수여되는 명예로운 기사 칭호다. 그 동안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부군인 필립공과 에드워드 및 앤드루 왕자, 프랑스 디자이너 코코 샤넬, 미국 배우 찰턴 헤스턴, 중국 배우 공리 등이 이 칭호를 받았다.

코망드리 와인 기사 수여식은 보르도와인협회가 매년 6월 와인 엑스포 기간 중 개최하는 와인 축제인 ‘꽃의 축제(Fete de la Fleur)’의 메인 행사로 진행된다. 코망드리 기사단이 되면 보르도 와인의 홍보대사도 맡게 되고 이 밖에 각종 모임과 특별회의 등을 개최하면서 세계 각 지역의 기사단과 끊임없이 교류하는 기회도 갖게 된다.

특히 박재범 부사장이 이번 ‘코망드리 와인 기사’ 작위를 받은 것을 포함하면 금양인터내셔날은 한 회사에서 총 4개의 프랑스 기사작위를 보유하는 기록을 갖게 됐다. 금양인터내셔날의 김양한 대표가 지난 2007년 보르도와인협회로부터 ‘코망드리 와인 기사’ 작위를 이미 수여 받은 것. 김양한 대표는 생떼밀리옹의 ‘쥐라드(Jurade of St-Emilion) 와인 기사’와 ‘샤블리 기사 작위’도 받아 혼자서만 모두 3개의 작위를 갖고 있다.

박재범 부사장은 보르도 지역의 그랑크뤼 와인뿐 아니라 가격 대비 우수한 품질의 훌륭한 샤토 와인을 발굴해 국내에 소개하는 데 앞장 서 왔다는 공적을 인정받았다.

박 부사장은 "한국에 보르도 유명 샤토의 오너나 와인 메이커들을 초청해 국내서 다양한 행사를 기획하는 등 보르도 와인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고자 노력한 점을 현지 연합회에서 높이 평가한 것 같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와인과 전혀 상관없는 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 회장 경우도 주목거리. 수년 전까지만 해도 와인에 대해 전혀 모르는 것으로만 알려졌던 이 회장은 최근 해박한 와인 지식을 자랑할 정도로 와인과 관련해 뜨거운 애정을 과시하고 있다는 것이 와인업계의 평가다.

이처럼 국내에서 프랑스 와인 기사 작위 수여가 러시를 이루고 있는 것은 국내 와인 시장의 성장과도 무관하지 않다. “수년 전까지만 해도 일본 사람들이 기사 작위를 많이 받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가 보니 한국인은 물론, 중국인들 중에도 기사 작위를 받는 모습이 전과 달라진 점이죠.”

한관규 부상무관은 “앞으로 한국인들 중에 기사 작위를 받는 이들이 더 늘어날 것 같다”고 전망한다. 경제 위기로 잠시 주춤하긴 하지만 와인 시장이 여전히 성장 중이고 지금 이 순간도 와인 시장 확대에 애를 쓰는 업계 및 관계자들이 넘쳐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기사 작위를 수여하는 프랑스 와인관계자 협회 또한 기사 작위 수여에 적극적이다. 시장을 키워가는 실질적인 고객들은 물론, 와인을 더 알리기 위해 노력하는 많은 관계자들이 사실상 기사 작위 대상이 될 수 있다는 판단 때문. 특히 중국을 비롯, 러시아 등 브릭스 국가들이 향후 주요 와인 기사 탄생 지역으로 꼽히고 있다. 쥐라드 경우 올 해 기사 작위를 받은 이가 30명에 불과하지만 꼬망드리는 좀 더 여유가 있는 편.

쥐라드 기사 수여와 함께 최근 공직을 떠나 와인마케팅 경영연구원을 설립한 한관규 전 상무관은 새로운 와인 문화 창달에도 나서고 있다. 절친한 친구인 김상용 동원와인플러스 사장으로부터 ‘와인의 스승’이란 칭호를 듣는 그는 한국 와인 시장이 좀 더 소비자 중심으로 개편돼야 한다는 입장.

그동안 생산자와 수입사 위주로만 시장이 흘러왔지만 이제 소비자들이 눈을 뜨면서 와인 소비와 트렌드에서도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다. 와인 시장분석, 소비유통 개선, 와인 세미나 및 이벤트 다변화, 새 스타일의 와인 교육 등이 그가 꼽는 새로운 와인의 숙제들이다.



박원식기자 park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