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음식 기능보유사 작품전'서 사라져가는 송기떡 등 되살려참가 메뉴 책으로… 3년마다 한 번씩 내림음식 발굴·전시 계획도

1-오른쪽부터 윤숙자 한국전통음식연구소장, 신봉금 한국병과문화연구원 원장, 박순애 한국혼례음식문화연구원장, 정은수 한국약선음식개발연구원장, 윤왕순 대둔산산내골식품 대표, 이연순 향토음식개발연구원장, 김영희 청실홍실폐백 대표, 김왕자 한국통과의례음식문화연구원장. 모두 각자 준비한 내림음식들을 들고 자리를 함께 했다. 아쉽게도 조현선 향음주례연구원장은 이 때 부재중.
2-인삼정과
3-수고아
4-살구떡
5-석탄병
6-감국숙채

한 번 보면 먹고만 싶어진다. 그런데 저 음식이 뭐지? 분명 어디선가 본 듯한 우리 음식 같긴 한데…분명한 사실은 음식 하나하나마다 무척 품위가 있어 보인다는 점이다.

전국 8도 명가(名家)·반가(班家)의 전통 음식들이 비로소 한 자리에 모였다. 이름하여 이름있는 가문과 양반가에서 대대로 전해오는 ‘내림음식’들. 최근 열린 ‘전통음식 기능보유자 작품전’에서다.

송기떡, 조기애탕, 개성우메기, 백자병, 복령조화고, 온조탕, 두부장떡, 곤대국, 전계아법, 더덕좌반, 상어두치, 육포다식, 어육장, 혼돈병 등…이름이 귀에 익은 듯, 하지만 언제 먹어 본 적이 있을까 싶은 전시 작품, 아니 음식의 이름들이다.

이들 메뉴는 모두 우리 조상들이 쌓아 온 오랜 경험과 지혜의 산물인 전통음식들. 하지만 이름만으로는 확실히 우리네 음식인데 글쎄, 구체적으로는 어떤 음식인지 알 듯 모른 듯 하기도. 아마 이들 내림음식을 먹어 본 사람이더라도 가장 마지막으로 맛 본 것은 어릴 적 할머니가 해 주셨을 때이지 싶다.

이름에서처럼, 그리고 희미하기만 한 맛의 경험에서처럼 이들 내림음식은 지금 이순간도 어쩌면 사라져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를 안타까워한 전통 음식 전문가들이 전시회를 통해 뭉쳤다. 전국 8도 명가댁 종부들이 대대로 전해 내려오던 전통음식과 약선음식, 향토음식, 혼례음식, 떡한과, 술 등을 가지고 작품전을 하는 특별한 자리를 마련한 것.

우리네 옛 내림음식 재현에 나선 이들은 윤숙자 한국전통음식연구소장, 신봉금 한국병과문화연구원 원장, 박순애 한국혼례음식문화연구원장, 정은수 한국약선음식개발연구원장, 윤왕순 대둔산산내골식품 대표, 이연순 향토음식개발연구원장, 김영희 청실홍실폐백 대표, 김왕자 한국통과의례음식문화연구원장, 조현선 향음주례연구원장 등.

“대대로 집에서 만들어 먹던 전국 각지의 내림음식들을 한 자리에 모아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사라져 가는 우리의 훌륭한 음식들을 되살려서 후손들에게도 길이 보존되어야 할 음식들이기 때문이죠.” 전시를 주도한 윤숙자 소장은 “일반에 널리 알려지지 않은 음식들이지만 현대인들에게 반드시 보여주고 싶고 알려 주고 싶은 가치가 넘치고도 남는다”고 말한다.

내림음식을 만든 이들 또한 대부분 명가댁 며느리나 딸들. 시댁에서, 혹은 친정에서 어릴 적부터 먹어 오던 옛 음식들을 기꺼이 재현해냈다. 출신지도 각각 달라 개성을 비롯, 경상, 호남, 충청, 황해 등 8도 각 지역을 고루 대표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내림음식들도 8도 메뉴가 총집합한 셈.

내림음식을 이번에 처음 한 자리에 모으게 된 노력은 무려 10년여에 걸쳐 이뤄졌다. 처음 윤숙자 소장이 직접 지방을 발로 다니며 고유의 메뉴와 전수자들을 발굴하기 시작한 것이 10년 전. 각 지방의 음식 명가들을 찾아 다니고 같이 공부하면서 조사 연구 작업을 벌인 끝에 비로소 내림음식의 체계가 잡혔다.

특히 조사에 동원된 것은 요리 고서(古書)들. 수운잡방, 규합총서, 음식지미방, 요록, 증보살림경제 등 고서들에 나오는 기록과 음식을 일일이 대조해 보는 고증 과정도 거쳤다. “집안에서만 해 먹어 오던 내림음식들로만 알아 왔는데 상당수가 예전부터 기록에 전해 오는 음식들이란 점을 발견했습니다.”

재현된 이들 내림음식들을 바라다 보면서 드는 생각은 비슷하다. 저렇게 훌륭한 우리 음식들인데 모두 다 어디 있었지? 혹시 사 먹을 수는 없나? 어디 내림음식을 파는 식당이라도 있으면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시킬 텐데…

“이번에 전시된 내림음식만 봐도 훌륭하죠. 헌데 아직도 감춰진, 숨어 있는 우리네 옛 음식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마치 음식의 뿌리를 찾아준 것 같은 기쁨을 느꼈죠.” 윤숙자 소장은 앞으로 3년마다 한번씩 내림음식을 발굴해 전시한다는 계획이다. 다른 명가, 다른 종부, 다른 메뉴가 여전히 많이 남아 있어서다.

전시에 참가한 이들 메뉴는 책으로도 엮어졌다. 제목은 ‘전국 8도의 반가·명가 내림음식’. 윤숙자 교수 등 모두 11명의 저자들이 함께 했다. ‘비록 쉽게 사먹을 수는 없다지만’ 각 지방에서 연구원을 설립하고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이들 전국 8도의 명가댁 종부들은 연구와 교육을 통해서는 내림음식을 전수하고 있다.

7-노티
8-복령조화고
9-돔배기 견과류찜
10-상어두치(돔배기 피편)
11-장짠지
12-칠향계
13-포도약밥
14-애저찜
15-급주(동방주)
16-육포 구절판
17-어육장
18-송기떡

● 노티

도토리 색깔을 띠는 부침개인가? 노치라고도 발음하는 이 떡은 특이하게도 항아리에 저장했다가 먹는 떡이다. 주재료는 찰수수와 찰기장. 차좁쌀이나 찰수수, 찰기장 가루를 엿기름 넣어 하루쯤 훈훈한 방에 두었다가 지져 먹는다.

식구들이 모여 앉아 둥글게 빚어 지져먹는 맛은 바로 고향의 맛. 새콤달콤함에 쫄깃쫄깃한 맛이 어우러져 맛과 향이 다른떡과는 전혀 다르다. 김왕자 원장은 요즘도 어머니한테 비법을 묻곤 한다. 평안도 음식으로 찹쌀로 만들기도 한다.

● 복령조화고

흡사 케이크처럼도 보이는 이 음식 역시떡. 평안도 갑부였던 김왕자 원장의 할아버지가 좋아하던 떡이다. 백복령과 연육, 산약, 검인을 멥쌀에 넣어 만든다. 할아버지가 책을 읽고 계시면 할머니가 책상 옆에 접시에 담은 복령떡을 가만히 두고 나가셨는데 책 냄새와 복령떡의 한약 냄새가 지금도 기억에 오래 남는다고.

아침 일찍 복령떡을 말려 두었다가 수시로 쑤어 잡수시던 모습과 함께 할아버지가 먼 길을 가거나 밖에 외출할 때도 할머니가 싸주셨던 정겨운 음식이다.

● 돔배기 견과류찜

돔배기는 경상도 지방에서 혼례 제사상에 빠지지 않는 음식으로 상어고기를 뜻한다. 돔배기라는 당어는 근해에서 잡히는 돔발 상어와 토막을 내어큰덩어리라는 토막고기의 의미가 경상도 사투리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보통은 전을 굽거나 꾸덕하게 말려 찌기도 하는데 박순애 원장 댁에서는 맑게 찐 다음 제사상에 올렸다가 나중에 견과류와 같이 맛간장에 살짝 졸여냈다. 그러면 맛이 쫀득해 고기맛 같기도 하지만 지방이 없어 담백한 끝맛이 더 살아난다고. 두고 먹어도 잘상하지 않는다고 한다.

● 상어두치(돔배기 피편)

주로 경상도 지방에서는 상어고기를 토막내 염장한 다음 포를 뜨고 꼬지에 꿰어 산적으로 제사상에 올린다. 돔배기는 건강에도 좋은 식품이라는 것이 정설. 단백질이 많고 지방이 적어 흔히 운동 선수나 연예인들이 다이어트 목적으로 즐겨 먹는 닭가슴살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영양소들은 훨씬 뛰어나다.

돔배 고기를 사용할 때 남는 것이 껍질인데 고기만 발라낸 껍질은 사포같이 꺼끌꺼끌해서 푹 삶아 껍질의 불순물을 긁어내고 잘게 썰어 어탕만들때 넣으면 아주 시원한 맛을 낸다. 박순애 원장 어머니는 음식점을 하고 늦게 퇴근하는 작은 아버지를 위해 술 한잔과 돔배기 껍질 한 접시를 내곤 했다.

● 장짠지

안양의 정은수 원장은 어릴적 할머니가 장독대에서 부른 날을 지금도 기억한다. 당신이 장독대에서 항상 위풍당당하게 일하고 계셨지만 어린 손녀는 평소 얼씬도 못하게 했던 것. 할머니는 큰 항아리에서 무언가를 꺼내 손질하곤 입에 넣어 주셨는데 간장 맛이 짭짤한 새우였다. 이때 할머니의 표정은 너무 착하고 인자하게만 보였다고.

커다란 항아리에 배추, 무, 버섯 등과 새우 꽃게, 전복 등 귀한 재료는 다 들어가 있다. 하지만 그 재료들보다 할머니의 사랑으로 항아리가 채워져 있었다는 것을 정원장은 뒤늦게 깨달아 안타깝다고.

● 칠향계

큼직한 닭에 도라지와 향채를 넣고 끓여 푹 무른 도라지와 닭고기를 국물과 함께 먹게 해주셨던 할머니의 기억이 정은수 원장에게는 지금도 생생하다. 할머니는 다섯 명의 자녀 중 세 명을 폐병으로 잃으셨는데 도라지가 폐에 좋다고 밭에 도라지를 심기를 반복, 도라지 천지였다.

철없던 시절 도라지 껍질 벗기는 게 싫다고 언니와 투정도 많이 했다고. 할머니는 무슨 음식이든 펄펄 끓여야 좋아하셨는데 어릴 때 뜨겁다고만 느껴쪘던 음식이 나이가 들면서 칠향계는 정말 따뜻할때 먹어야 제 맛을 느끼게 된다고.

● 포도약밥

밥을 해놨는데 ‘이상하게도’ 색이 푸르다. 어떻게 파랗지? 보라색 같기도 한데 가만히 보면 포도색이다. 안양 출신인 정은수 원장은 어릴 적 포도밭을 하는 아버지 덕분에 집에 포도가 흔했다. 할머니는 포도껍질을 벗겨 알맹이는 꿀에 조려 음식에 넣고 껍질은 잘 주물러 면보에 짜 포도즙을 만들었다.

포도즙을 이용해 여러가지 음식을 만들어 주었는데 특히 찹쌀에 포도즙을 넣어 찜통에 쪄서 만든 것이 포도약밥. 뜨거울 때도 향기가 맛있지만 식은 후의 약밥은 더욱 쫄깃하면서 씹는 맛이 좋았다고.

● 애저찜

조금은 징그러울까? 어린 돼지가 불쌍하게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엄연한 광주의 명물 요리. 재료는 새끼 밴 어미돼지를 잡거나 축산 처리 과정에서 생긴 어린 새끼돼지를 쓴다. 원래 이름은 아기 돼지를 뜻하는 아저(兒猪)인데 어감이 안 좋다고 흔히 애저라고 부른다. ‘돼지가 너무 어린 채 죽어 슬퍼선지’ 슬플 애(哀)자.

가마솥 안에 물을 붓고 대나무로 솥 안에 교차시켜 버티게 하고 돼지새끼를 그 위에 올려 놓고 2시간 정도 푹 무르게 쪄낸다. 살이 흐물거릴 정도가 되면 초간장에 찍어 먹는다. 함평의 조현선 원장의 시어머니는 자주 이 찜을 드시고 겨울에도 추위를 모르고 생활했다고 한다.

● 급주(동방주)

술이 익을 때까지 차마 기다리지 못하고 급하게 먹는다고 ‘급주’인가! 술이 당화가 이뤄지고 발표가 덜 되면 알코올 생성이 미약해 단 맛이 있는 술이 된다. 여기에 설탕을 좀 넣고 끓이면 아주 단맛이 강한 술이 된다. 특히 아녀자들이 식해와 같이 즐겨 먹었던 술이기도 하다.

고두밥이 아닌 식은 밥을 사용한다. 하루 만에 급히 만들어지는 술이라 해 급주라 부른다. 조현선 원장의 시어머니가 농사 일꾼들을 챙기느라 새참 두끼는 항상 술로 내놓았다고.

● 육포 구절판

육포 구절판은 육포를 아름답게 수놓듯 정성을 다하는 음식으로 특히 손님상에 놓으면 안주 중에서 최고 인기였다. 처서가 지나면 가을바람이 불기 시작하는데 신봉금 원장은 추석 음식을 육포를 만드는데서 시작했다.

육포는 특히 정성과 인내, 끈기를 필요로 하는 음식. 여러 번의 손길이 가야만 완성되는 아주 고급스러운 음식이자 두고두고 먹을 수 있는 요긴한 음식이다.

● 어육장

윤왕순 대표의 집안 할머니 중 한 분이 시집오기 전 궁궐에 들어가 많은 음식을 배웠는데 그 중 하나가 어육장이다. 소고기와 전복, 숭어, 홍합 등 갖가지 재료들이 들어가 값이 비싸고 귀했다. 평범한 시골에서는 결코 맛볼 수 없는 맛. 담근 후 땅속에 묻어 두었다가 보통 1년이 지나면 꺼내 먹는다.

● 송기떡

김영희 대표는 어릴 적 소나무 껍질을 벗기려 산에 가시는 아버지를 따라 갔다가 울고 왔다. 물 오른 소나무를 낫으로 겉껍질을 훑고 손껍질을 얄팍하게 쭉 벗기는 것을 보곤 ‘소나무가 아플까’ 하는 생각에 울음이 터진 것.

오월 단오 무렵 소나무에 물이 오르면 껍질을 벗겨 양잿물에 삶아 며칠 우려낸 후 찹쌀과 소나무 속껍질을 한데 어우러지게 반죽해 떡을 만든다. 오래 두어도 상하지 않는다고.



글·사진=박원식기자 park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