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제품 수입 위주서 국내가공으로 가격 낮추고 품질 올리고커피서 초코파이·빼빼로까지, 소비자에게도 공정한 제품 출시

1-동티모르 커피 생두 산지 <사진제공=아이쿱 생협>
2-‘그루’ 현지 원단 생산 여성 <사진제공=페어트레이드 코리아>
3-아름다운 커피’<사진제공=아름다운 가게>
1-동티모르 커피 생두 산지 <사진제공=아이쿱 생협>
2-'그루' 현지 원단 생산 여성 <사진제공=페어트레이드 코리아>
3-아름다운 커피'<사진제공=아름다운 가게>

학생 김봄(25?한국외대 법학과) 씨는 작년 겨울 미국의 '스타벅스' 매장에서 공정무역(fair trade) 제품을 처음 접했다. 주로 극빈층 제3세계 생산자에 적정가격을 지급하고 중간 유통 단계의 편취를 해소해 빈곤문제, 환경공해를 해결하는 대안이라는 공정무역의 취지에 동감했기 때문이다. 그는 일반제품보다 비싼 가격을 치르고 공정무역 제품을 구매했다.

한국에 와서도 김씨는 될 수 있으면 공정무역 제품을 사용하려고 노력했다. 밸런타인데이 때는 온라인 쇼핑몰에서 공정무역 초콜릿을 5천원 이상 비싼 가격을 지불하고 묶음으로 구매했다.

그러나, 고정 수입 없는 학생 처지에 공정무역 제품을 계속 사용하기에는 부담이 큰 것이 사실이었다. 대기업이 내세우는 공정무역 제품의 원료 가운데 실제 공정무역에 의해 구매한 것은 10% 내외인 경우도 있다는 사실을 접하고는 더 공정무역 제품에 회의가 들었다.

김씨는 "공정무역의 취지에는 동의하지만 대부분의 공정무역 제품이 가격대가 높아 구매를 망설이는 사람이 많은 게 사실"이라며 "공정무역 제품이 소비자에게도 보다 공정한 방식으로 유통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공정무역의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다. 공정무역으로 구매한 원료를 들여와 국내가공으로 관세 등을 줄여 가격을 낮춘 제품들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는 대부분 완제품을 들여오는 기존의 공정무역에서 한발 더 나아간 것으로, 가격경쟁력을 높여 생산자뿐 아니라 소비자에게도 보다 공정한 거래가 될 수 있는 방식으로 주목 받고 있다.

국내가공 공정무역 제품은 그 취지에는 동의했으나 상대적으로 비싼 가격 때문에 구매를 망설여 왔던 소비자들에게 호소력을 발휘할 것으로 보인다. 지속가능한 마케팅 방식으로 공정무역을 안착시키는 데도 효과를 발휘할 것으로 보인다. 주로 정치적 호소로 권해졌던 공정무역 마케팅 방식은 시장논리가 지배하는 소비자 구매 패턴과 잘 연결되지 못하는 한계를 지녀왔던 게 사실이다.

반론도 있다. 특히, 국내의 경우 공정무역 제품 대부분이 핸드메이드·유기농·에코 제품 등의 고급상품으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정 소비계층이 형성되고 있어 고급화 전략을 고수하는 게 더 적합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생필품에 가까운 공정무역 제품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고, 국내 가공으로 소비자의 요구에 보다 충실한 고급제품을 만들 수도 있다. 국내가공 공정무역이 활성화하면 원산지뿐 아니라 국내 일자리 창출에 기여할 가능성 역시 기대된다. 때문에 국내가공 방식의 공정무역 제품은 공정무역의 대중화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박창순 한국공정무역연합 대표는 "공정무역 초기에는 품질 낮은 제품을 남을 도와주기 위해 사달라고 선의에 호소한 것이 사실이었지만 이제는 공정무역 제품도 품질과 가격으로 시장에서 비교 경쟁력을 갖춰야 팔리는 실정"이라며 "국내가공 방식이 공정무역 제품의 가격경쟁력을 높이고 품질을 고급화해 소비자가 좀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다면 반가운 일"이라고 말했다.

박 대표는 이어 "한국에는 공정무역 제품 가격이 비싸다는 선입견이 있는 게 사실"이라며 "유럽의 경우 FLO 인증 공정무역 제품이 3000여 가지로 일반 마트에 많이 나와있으며 가격 역시 일반제품과 거의 동일해 소비자들이 쉽게 구매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또 "실제로 공정무역 제품을 수입하려다 보면 절차 등이 까다로울 뿐 아니라 비용이 많이 들고 관세도 높다"며 "제 3세계의 빈곤 문제, 환경 문제 등을 해결하는 일환인 공정무역을 돕기 위해 영국 정부는 예산 지원도 하는데, 우리는 정부가 해야 할 일을 개인이 하고 있어 안타까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공정무역 커피, 국내 로스팅으로 가격 낮춘다

지난 2002년부터 공정무역을 시작한 '아름다운 가게'는 국내가공 공정무역 제품으로 생산자뿐 아니라 소비자에게도 보다 공정한 거래 방식을 도입할 예정이다. '아름다운 가게'는 오는 10월께 네팔, 페루, 우간다에서 수입한 커피 생두를 국내에서 로스팅해 가격을 낮춘 '아름다운 커피'를 출시할 예정이다. 또, 페루 카카오를 수입해 국내에서 가공한 핫초코 상품도 개발을 서두르고 있다.

가격은 200g 단위의 커피홀빈이 1만원으로 1~4만원(200g)에 이르는 기존 유기농 커피 원두에 제품에 비해 저렴한 편이다. 핫초코 역시 일반제품보다 저렴한 가격에 판매할 예정이다.

'아름다운 가게'는 산지 농민에게 1kg당 4달러(미화 기준)의 가격을 지불하고 커피 생두를 구매하고 있다. 이는 국제자유무역 커피 지불가인 2.9달러보다 높은 수준이다. 네팔 등 현지에서는 미니버스를 구입해 생산자에게서 직접 원료를 사들이고 있다.

또 오지마을과 극빈층이 사는 농가의 학비를 지원하고 있으며 올해만 500여명의 농가 어린이에게 교복·신발·가방·교재·문구류 등을 무상 공급하고 있다.

엄소희 아름다운 가게 캠페인팀 간사는 "공정무역 초콜릿의 대표격인 스타벅스 디바인 초콜릿의 국내 소비자가는 4000원으로 비슷한 중량과 품질의 초콜릿에 비해 가격이 비싼 편"이라며 "더구나 영국을 거쳐 들어온다는 점에서 공정무역의 생산자-소비자 직거래 원칙에 다소 어긋나 있다"고 말했다.

엄 간사는 이어"디바인 초콜릿 가격이 비싼 것은 완제품 관세가 더 비싸기 때문"이라며 "원재료를 들여와 국내가공을 하는 방식을 도입하면 그만큼 가격 적정선을 맞추기 쉬워져 소비자에게도 보다 공정한 공정무역을 실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4-‘그루’현지 원단 생산 모습 <사진제공=페어트레이드 코리아>
5-‘아름다운 커피’ 공정무역의 날 행사 <사진제공=아름다운 가게>
6-현대백화점 공정무역상품 코너
4-'그루'현지 원단 생산 모습 <사진제공=페어트레이드 코리아>
5-'아름다운 커피' 공정무역의 날 행사 <사진제공=아름다운 가게>
6-현대백화점 공정무역상품 코너

▲커피믹스에서 초코파이·빼빼로까지 국내가공으로 공정무역 제품 경쟁력 확보

소비자생활협동조합인 아이쿱(iCOOP)생협은 커피·코코아·초콜릿·과자 등의 제품 원료를 2년 전부터 모두 공정무역 원료로 바꾸고 국내에서 가공해 제품을 만들고 있다. 원두커피의 재료인 커피 생두가 공정무역 제품의 대표상품이 돼 있는데 반해 국내소비자들은 대부분 커피를 원두보다는 커피믹스나 인스턴트 커피로 소비한다. 생협의 시도가 공정무역 제품을 대중화하는 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관심을 모으는 이유다.

아이쿱생협에서 만드는 커피믹스, 코코드림, 초콜릿(3종)은 현재 공정무역 원재료를 대용량(벌크) 단위 등으로 수입해 국내에서 가공 후 완제품으로 판매한다.

아이쿱 생협은 유기농 설탕 판매를 목적으로 지난해 11월 필리핀의 공정무역 단체 PFTC(Panay Fair Trade Center)로부터 400g 단위의 마스코바도를 9만봉 수입했다. 3월부터 수입을 시도했으나 필리핀 현지 사정으로 포장지 인쇄와 기계수리에 오랜 시간이 걸렸다. 9월 경제위기 이후 막상 국내에 들여왔을 때는 가격경쟁력이 없어져 찾는 회원이 거의 없어졌다.

이 단체는 올 9월부터 소포장이 아닌 25kg 대용량 단위로 마스코바도를 수입해 국내가공으로 소비자가를 봉지당 200원 이상 낮출 예정이다. 아이쿱 생협은 국내가공을 선택한 이유로 필리핀 현지 생산이 빈민 여성에게 소포장 일자리를 만들어줄 수 있지만 가격경쟁력과 품질 개선이 없으면 추가적인 일자리는 보장할 수 없다는 점을 들었다. 또, 수입국의 소비를 지속적으로 높일 경우 공정무역 파트너들의 지속적 생산과 공정무역의 혜택을 받는 소규모 농가와 노동자가 더 확대될 수 있다는 이점을 꼽았다.

생협은 초코파이·빼빼로 대체상품도 공정무역 원료를 수입해 국내가공으로 생산할 계획이어서 반향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주로 어린이들이 소비하는 과자류의 원재료 유해성이 대두되고 있기 때문이다.

김태연 아이쿱 생협 공정무역추진위 간사는 "공정무역에 아무리 좋은 취지가 있어도 가격이 적당하지 않다면 시장에서 경쟁할 수 없다"며 "공정무역 제품도 가격에 민감한 시장에서 규모의 경제를 이루고 좋은 품질을 확보해야 제3세계의 일자리 창출뿐 아니라 양국의 노동권을 개선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기농 면 적정가 수입, 국내가공으로 만드는 공정무역 패션

유기농 옷감을 공정무역으로 수입해 국내가공으로 의류 제품을 만드는 경우도 있다. 여성환경연대·원불교여성회·주민생협·여성민우회 등이 공동출자한 페어트레이드 코리아는 지난해 2월 공정무역 패션 상표인 '그루(g:ru)'를 출시했다.

'그루'는 인도의 면화 농민에게 적정 가격에 사들인 유기농 면을 들여와 만든 티셔츠, 네팔·라오스 여성이 베틀로 짜고 초목으로 염색한 옷감을 국내가공한 의류 등을 판매하고 있다.

티셔츠 가격은 3만원 대이며, 가디건은 4~5만원에 이른다. 규모의 경제로 가격경쟁력을 확보하기보다는 국내가공으로 품질을 높여 공정무역 제품의 고급화 마케팅을 시도하는 셈이다.

이 회사의 매출액은 작년 3억 7000만여 원이며 올해도 성장세를 보여 작년 매출을 뛰어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페어트레이드 코리아는 방글라데시 스웰로우즈 마을 탁아소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온라인 쇼핑몰 소비자가 적립금을 기부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미영 페어트레이드 코리아 대표는 "유기농 제품은 저가화하기 어려운 현실이 있는 반면 구매 소비층은 늘고 있어 공정무역 제품이 꼭 가격경쟁력을 확보하는 쪽으로만 가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며 "소득수준이 높아지면 소비유형이 다양화하는 원리에 의해 우리나라 공정무역에도 특정 소비시장이 생겨나고 있다"고 말했다.



김청환기자 ch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