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의사가 쓰는 '사랑과 전쟁'

부부가 중년에 이르러 불화를 겪는 주요 이유들 중의 하나는 경제적 문제이다.

부부상담에서 흔히 보는 경제적 갈등은 신혼기부터 남편이 시부모나 시형제의 무리한 경제적 요구에 남편이 적절하게 거절하지 못해서 부인이 불만을 가지고 살아온 경우, 남편이 경제권을 가지고 있으면서 부인에게는 살림에 필요한 생활비만을 주어서 부인은 남편의 소득이 얼마인지도 모르는 경우, 남편이 사업에 필요한 자금을 구하기 위해 자신들의 집을 담보로 하였거나 일가친척에게 투자를 유도하였다가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감당하기 어려워진 경우, 인간관계 교제를 이유로 반복적인 남편의 늦은 귀가나 골프여행 등에 대한 반발로 부인의 카드 사용을 남발하여 가정 경제의 위기를 맞게 된 경우 등이 있다.

이와는 반대로 보이지만 다른 부인들이 부동산 투기로 재산을 불리는 것을 보고 뒤늦게 부동산 투자에 나섰다가 빚만 쌓게 된 부인이나, 남편 모르게 주변 사람들과의 계에 들거나 임의로 돈을 꾸어주었다가 돌려받지 못하는 부인들도 있다.

상황은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타나지만, 대부분 남편의 일방적 태도에 대한 부인의 자존심 손상과 상대적 박탈감이 공통적인 특성이다. 때문에 부인이 가정경제의 위기를 불러온 것에 대해 겉으로는 잘못을 인정하더라도 그 속마음에서는 억울한 마음이 풀리지 않아서 갈등이 해소되지 않는다.

이런 경우들에 대한 해결은 부부가 공동운명체라는 의식을 갖도록 하는 것에서 시작할 수 있다. 현재의 위기에 대한 잘잘못을 서로 탓하기를 멈추고 근본적인 잘못을 바로 잡아 부부관계를 새로 세워가기로 결심을 할 필요가 있다.

가정경제 갈등의 다른 상황은 부부가 서로 다른 인생관과 경제관을 가지고 있는 경우에 나타나는데, 예를 들면 부인은 모처럼 갖는 가족 나들이에서 좀 비싸더라도 이름 있는 곳에서 여유롭게 외식을 즐기기를 원하는데, 남편은 배만 불리면 되는데 쓸데없는 곳에 과소비를 할 필요가 없다고 고집을 꺾지 않는 경우다.

부인은 남편이 알뜰한 것을 넘어 쩨쩨하다고 여기고, 남편은 부인이 허황된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살림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고 본다. 때문에 모처럼의 가족행사가 도리어 부부싸움으로 끝이 나는 경우가 많고, 점점 그런 자리를 피하게 된다.

이러한 부부의 차이는 함께 사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생활의 전반에서 나타나기 때문에 서로 익숙해지기보다는 부부갈등이 만성화되기 마련이다. 그리고 누군가가 한두 번 양보하는 것 정도로 마음의 간격이 줄어들기보다는 커져가기 쉽다. 사실 이런 신념들은 둘 다 충분한 타당성이 있으며, 인격의 상당히 깊은 측면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쉽게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해결을 위해서는 부부가 가정의 미래 모습에 대해서 함께 만족할 만한 '큰 그림'을 그리도록 해야 한다. 조금만 돌이켜보면 부부의 이런 모습은 연애시절에도 나타났던 것이며 그 시절에는 상대의 그런 특성이 마음에 들었던 것을 인정할 수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즉 자신과 상대의 태도가 서로 상반되는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서로 보완되어야 하는 것이라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 갈등해결에 가장 중요하다.

이러한 점을 인식하면 지금까지는 상대의 고집 때문에 억지로 참아야 했던 배우자는 상대에게도 배울 점이 있기 때문에 상대의 의견을 존중하는 것으로 태도가 바뀌게 된다. 동시에 자신의 입장을 존중받게 된 배우자는 상대의 태도 변화를 알기 때문에 굳이 이전만큼 심하게 고집을 부릴 이유가 없게 된다.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이혼의 70%정도를 40~50대의 중년부부가 차지한다고 한다. 어떤 면에서는 적잖게 기간을 함께 살아온 시기에 이렇게 많은 중년부부가 가정의 위기를 겪고 있다는 것이 놀랍다.

하지만 중년의 시기가 지금까지 지켜온 자신의 원칙을 돌이켜보고 동시에 자신이 무시해왔던 다른 원칙들을 받아들여야 하는 때라는 점에서 보면 각자 자신의 가정에 충실해야 하는 이유를 발견할 수도 있다.



박수룡 백상신경정신과의원 원장 sooryong@medimai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