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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식상 위 화려한 퍼포먼스

최근 방한한 일본 가이세키 요리의 권위자가 "한식 세계화는 고추장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스시를 간장에 찍어 먹는 그 '식행위'가 일본 음식의 이미지를 만들었고 일식 세계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이란다. 듣다 보니 문득 궁금해졌다. 우리의 한식에는 어떤 식행위가 있을까?

일단 여기서 식행위는 '음식을 먹는 방법'이라는 협의로 사용함을 밝혀야겠다. 우리네 기본 식행위는 밥과 국을 기본으로 한 숟가락과 젓가락의 놀림이다. 우리는 서양뿐 아니라 동양을 통틀어 젓가락과 숟가락을 동시에 사용하는 드문 민족이다. 요즘에는 중국에서도 음식을 떠 옮기는 용도 외에는 숟가락을 잘 쓰지 않는다.

일단 숟가락을 들어 왼편에 놓인 밥을 한술 떠 먹는다. 연이어 오른편에 놓인 국을 떠 먹은 후 숟가락을 내려 놓고 이번에는 젓가락을 든다. 앞에 놓인 반찬을 집어서 먹는다. 이게 기본이다. 그러나 이것뿐일까? 무슨 소리, 한식은 그리 간단치 않다.

본부인의 기품에 애첩의 화려함을 고루 지니고 있는 한식은 색깔, 모양, 맛 어느 하나 빠지는 것이 없는 데다가 다양하기로도 이루 말할 수 없다. 이들을 열고, 깨고, 부수어 입으로 가려가려면 젓가락과 숟가락은 부지런히 상 위를 가로질러야 한다. 지금 한식상 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퍼포먼스의 향연.

말아 먹기

장국밥의 장국은 흔히 고깃국을 뜻하지만 간장으로 간을 맞추는 국이라는 뜻도 있다. 장국밥은 서울 음식으로, 장안에는 으레 유명한 국밥집들이 있어 새벽에 해장하는 사람이나 밤샘하는 사람들의 속을 달래주곤 했다. 뜨끈하게 김이 올라오는 국에 밥을 말아 먹으면 반찬이 따로 필요 없었다.


갈라 먹기

경기도 음식 중 개성 편수가 있다. 편수는 본래 찬 육수에 띄워 먹는 여름 만두지만 삶은 더운 만두로 먹기도 한다. 만두소로 쇠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3가지를 쓰는데 돼지는 맛이 부드럽고 닭고기는 단단하게 뭉치는 역할을 해 맛이 잘 어우러진다. 먹을 때는 편수를 접시나 빈 그릇에 놓고 숟가락을 이용해 반으로 가른다. 곁들여 내는 초장을 쳐 간을 맞추어 가며 먹는다.

쌈 싸먹기

우리 전통 음식에도 회가 있다. 전라남도에서는 여름철이 오면 민어를 잡아 회를 떠서 먹었는데 이는 더운 날씨에도 탈이 나지 않는 유일한 생선이기 때문이라고. 10kg이 넘는 민어를 매달아 피와 냄새, 불순물이 모두 빠지고 나면 포를 떠 참기름에 무친다. 파래김 위에 민어를 얹고 초장과 부추를 올린 뒤 통깨를 뿌려 쌈을 싸 먹는다.


들고 마시기

국물 음식은 떠 먹는 것이 상례지만 들고 마셔야 할 때도 있다. 황해도에서 먹는 가릿국은 고깃국에 밥을 만 일종의 탕반인데 대접에 밥을 담고 삶은 고기와 선지, 육회를 그 위에 얹는다. 육수에 따뜻하게 데운 두부를 마지막으로 밥 위에 얹고 육수를 듬뿍 부어 낸다. 먹을 때는 대접을 들어 먼저 육수를 거의 들이마시고 난 후 매운 양념을 넣어 밥을 비벼 먹는다.

얹어 먹기

막국수는 강원도가 그 고향으로, 지금은 춘천 막국수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사실 그보다 더 시골인 인제, 원통, 양구 등에서 더 많이 먹던 음식이다. 메밀을 익반죽하여 국수틀에 눌러서 만든 면에 무김치와 양념장을 얹어서 먹는 것이 원조다. 요즘에는 기호에 따라 동치미 국물이나 꿩 육수에 말아 먹기도 하며 최근 식당들이 개발한 쟁반 막국수는 채소, 양념장과 함께 비벼 먹는다.

여럿이 떠먹기

한 그릇을 놓고 여럿이 떠 먹는 우리의 식탁 풍경은 위생상의 문제로 여러 번 지적되곤 했으나 우리의 정서를 나타내는 고유의 식문화임에는 틀림이 없다. 평안도의 어복쟁반은 화로 위에 커다란 놋쇠 쟁반을 놓고 쇠고기 편육, 삶은 닮걀, 메밀 국수를 돌려 담아 육수를 부어 끓여낸 음식이다. 일종의 온면으로 여러 사람이 쟁반을 가운데 놓고 둘러 앉아 떠 먹는다.

음식을 알리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모양을 바꾸기도 하고 강한 향신료를 빼기도 한다. 미국인들에게는 살 빠지는 음식임을, 일본인들에게는 배용준이 즐겨 먹는 음식임을 강조한다. 아직은 서먹한 양쪽 간에 서로 교감할 수 있는 접속어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행위'가 가지는 위력은 아주 빠르고 강력하다. 푸드 커뮤니케이션 이론에 따르면 사람들은 자신이 직접 참여한 행동은 잊지 않는다. 쌈을 싸 먹는 모습이 낯설거나 미개해 보이다가도 자신이 직접 쌈을 싸서 입에 넣는 순간 그 음식과 그를 둘러 싼 문화는 그의 삶 속으로 매끄럽게 녹아 들어가는 것이다.

음식은 한 나라의 역사와 정서, 재능을 알리는 가장 쉽고 원초적인 통로다. 그리고 식행위는 음식이라는 문화를 구성하고 있는 수많은 요소 중 하나다. 젓가락이 어렵다는 외국인에게 포크를 건네면 한 접시의 맛만 전달되지만, 젓가락을 고집할 경우 한국 문화 전체가 흘러 들어갈 수 있다.

문제는 우리다. 한식당 대장금의 김인숙 대표는 밥도 사 먹는 세대가 문화로서의 음식을 세계로 퍼뜨리는 것이 가능하겠느냐고 일갈한다. 우리가 우리 음식을 제대로 즐기지 않는데 하물며 외국인인들 어떠하겠냐는 소리다.

도움말: 대장금 김인숙 대표
참고 서적: 한국 음식 문화와 콘텐츠, 한복진 외, 글누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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