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대 명절인 한가위가 돌아온다. 명절은 '마음의 고향' 같은 것이지만 다가오는 명절이 두려워지다 못해 병이 나는 사람들이 있다. 이른바 '명절 증후군'이라는 것인데, 이런 현상이 명절 부근에 한정되지 않고 반복되거나 만성화되어 나타나면 대인기피증이나 우울증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누구보다 가족들의 음식 준비와 같은 가사노동을 맡아야 하는 여성들이 명절의 큰 희생자가 될 수 있다. 근래에는 여성의 부담을 줄여주도록 적잖은 홍보가 되어 전체적인 상황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편이지만, 아직도 가족행사와 관련하여 어려움을 호소하는 부인들이 많다. 대부분의 부인은 남편이 집안 남성들끼리만 모여 놀거나 잠만 자는 대신에 청소나 설거지를 도와주기를 바라며, 나아가 남편이 시댁만 챙기는 대신에 처가의 모임에도 관심을 가져준다면 더한 수고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경제불황이 길어지면서 가장으로서 가계를 책임지는 남편들의 고충도 커져가고 있다. 다행히 실업 위기를 피했다고 해도 소득이 줄어든 경우가 많다. 더구나 설이나 추석은 자녀들의 등록금 지출 등으로 부담이 커진 상태에서 명절 용돈이나 선물 등을 준비하려면 눈 앞이 캄캄하다. 이러한 상황을 부부가 함께 헤쳐간다면 그나마 마음에 위로를 받을 수 있겠지만, 아직 많은 남편들이 자신의 어려운 상황을 아내에게 밝히는 것을 수치로 생각하고 있다.

이런 가정의 부인들은 남편의 사정을 짐작만 할 뿐 내용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으므로, 가정의 앞날에 대한 불안을 가질 수 밖에 없다. 따라서 명절 같은 가족 행사를 앞두고 부부가 모두 심리적으로 날카롭게 되어 사소한 일에도 큰 싸움으로 이어지기 쉽다. 이런 일이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평소에 자주 대화를 가져 불필요한 오해를 예방하는 것이 좋다.

형제끼리 경제적 여유가 같을 수는 없으므로 모처럼의 행사가 누군가에게는 편하지 않을 수도 있고, 더구나 금전적인 거래가 있는 경우에는 오래간만의 가족 모임이 불편한 자리로 변할 수 있다. 당시에는 형편이 어려운 형제를 외면할 수 없어 돈을 빌려주기도 했고, 더러는 좋은 투자라 생각하여 맡겼다가 낭패를 겪기도 한다. 가족에게 돈을 갚아야 하는 입장에서는 말할 나위도 없고, 받아야 하는 입장에서도 상대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편하지 못하다.

게다가 배우자가 이번에는 반드시 확답을 얻어오라고 압력을 가하면, 명절에 만나려고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 없게 된다. 그렇다고 마냥 기다릴 수 만은 없는 형편이다 보니 피차 차라리 명절이 없었으면 싶어진다. 형제들간에 금전거래를 전혀 않을 수는 없겠으나, 적어도 명절 같은 가족모임에서는 그런 주제를 입에 올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겠다.

일가친척을 만나야 하는 명절이 두려운 사람들 중에는 아직 직업을 갖지 못한 젊은이들이나 늦은 나이가 되도록 결혼을 못한, 심지어 이혼을 하여 집에 돌아와 있는 자녀들도 포함된다. 이들에게는 오랜만에 만나는 집안 어른의 한마디가 비수처럼 두렵다. 언제 밥 살 거냐, 너무 고르지 말고 아무데라도 가봐라, 네 부모님 나이를 생각해라 등등. 물론 잘되라고 하시는 말씀인줄은 알지만 당사자로서는 뭐라 할 말이 없으니 차라리 인사도 하지 말고 방안에서 나오지 않는 것이 상책이지 싶다.

학생들 경우에는 공부는 잘하는지, 어느 대학을 목표로 하는지, 누구는 어디 대학에 들어간 것을 아는지를 묻는 어른들을 가장 싫어한다. 집에 있어도 좋은 이야기도 못 들을 바에야 공부를 핑계로 나가 노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이렇게 되면 한 가족임을 확인하려는 원래 명절의 의미를 살려낼 수 없다. 이런 경우를 피하기 위해서는 어른들이 먼저 자신의 언행을 조심해야 한다.

오랜만에 만나는 명절에 덕담 삼아 하는 한마디조차도 조심해야 하느냐고 항변할 사람도 있겠지만, 듣는 사람에게 얼마나 큰 상처가 될 수 있는지 헤아리지 못한다면 차라리 말을 아끼는 것이 좋다. 대신 형편 되는대로 용돈을 주거나 상대가 듣기 좋아할 말을 골라 해야 한다.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배려해주는 마음이 명절을 '온 가족의 축제'로 만드는 첫걸음이다.



박수룡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