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페, 칵테일, 와인… 고급·다양화하는 테이크 아웃 푸드

1. 홍대 앞 도도나 3.누텔라 바나나 크레페 4. 딸기 커스터드 크레페 5. 이태원 와인공장 8.테이크 아웃 와인
자라면서 어느 순간 길거리에서 음식을 먹는 것이 부끄럽게 느껴지는 때가 있다.

수많은 행인들 앞에서 핫도그를 먹기 위해 입을 쩍 벌리는 일이 옆 자리 동행 없이는 무척 면구스러운 일로 느껴질 때. 아마도 입 안의 벌건 속살을 한껏 드러내는 것과 음식이 주는 황홀경을 낯 모르는 타인 앞에서 만끽하는 것이 대낮 도심 한복판에서 키스하는 것과 닮은 점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는 조금 더 당당해져도 좋겠다. 더 이상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쓰고 싶지 않다면,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부끄럽지 않다면, 그리고 핫도그가 아닌 좀 더 색다른 음식이라면.

"와인도 테이크 아웃 해드려요"

최근 미국 LA에서는 'kogi'와 'calbi'라는 어딘지 상당히 친숙한 단어들이 한동안 화제가 됐었다.

1. 홍대 마가리타 스플래쉬 2. 스페인 풍 브리또
한인 2세로 알려진 이들이 트럭에서 불고기와 갈비를 넣은 타코를 판매해 인근의 야식 문화를 바꿔 놓을 정도로 크게 히트를 친 것이다. 언론에 알려지면서 푸드 트럭은 우후죽순 늘어나 타코뿐 아니라 유기농 버거, 컵케이크, 스시 등으로 그 메뉴도 다양해졌다.

트럭이나 노점에서 음식을 파는 것은 미국 사람들의 눈에는 생소한 풍경이지만 우리에게는 낯설지 않다. 붕어빵, 핫도그, 오뎅 등 다 열거하기도 어려울 만큼 다양한 길거리 음식들이 계절의 변화를 알리며 등장해 행인들의 입을 즐겁게 해왔다.

오랜 역사만큼 길거리 음식을 둘러싼 고정 관념도 형성돼 있는데 가격이 싸고 분식에, 많이 먹어서 딱히 건강에 유익할 게 없다는 것 등등이다.

그러나 최근 이 공식이 변하고 있다. 늦은 밤 홍대 길거리에서 비닐에 담긴 칵테일을 쪽쪽 빨아 먹는 이들을 목격했다면 이미 변화를 감지했을 것이다. '칵테일은 바에서, 와인은 글라스로' 같은 공식은 이미 깨진 지 오래다. 거리로 쏟아져 나온 다양한 음식들.

달리는 유럽식 크레페 … 홍대 앞 도도나

홍대의 빈티지 옷들에 눈이 팔려 한참을 걷다 보면 작은 하늘색 봉고와 마주친다. 별다른 사진도, 델리만쥬의 미끼 같은 요란한 향도 없지만 걸음을 좀 천천히 하면 달콤한 냄새를 맡을 수 있다.

도도나는 다마스를 개조해서 만든 테이크 아웃 크레페 전문점이다. 합정동 근처에서 시작해 3개월 전쯤 홍대로 자리를 옮겼다. 제과제빵을 배운 젊은 여사장은 유럽 여행 중 크레페에 꽂혀 귀국하자마자 차를 사고 하늘색으로 칠한 후 도도나를 열었다.

놀이 공원이나 백화점 푸드 코트 등에서 볼 수 있는 크레페는 프랑스 식의 얇은 팬 케이크인데, 지금까지 우리가 먹었던 크레페는 샌드위치처럼 안에 소시지나 햄, 양상추를 넣은 살짝 변형된 일본식 크레페다.

도도나의 크레페는 원조에 가까운 유럽식으로 누텔라(빵에 발라 먹는 초콜릿 맛 스프레드) 또는 커스터드 크림에 딸기, 바나나만 넣어 식사 대용이라기 보다는 디저트 느낌이 강하다.

이름은 생소하지만 현지에서는 가장 대중적이라는 누텔라 바나나를 주문하니 잠깐 한 눈 판 사이 금세 완성된 크레페를 'DODONA'가 새겨진 예쁜 종이에 말아 건넨다.

말랑한 반죽을 깨물면 초콜릿과 헤이즐넛 향이 입을 가득 채우고 곧 상큼한 바나나가 어우러진다. 반죽은 주인이 가장 신경 쓴 부분으로 최고의 비율을 찾기 위해 꼬박 한달 반 동안 실패를 거듭한 결과 반죽만 따로 먹어도 맛있는 수준의 레시피를 발견했다.

"누텔라 바나나와 딸기 커스터드가 제일 인기가 많은데, 이 두 개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성향이 완전히 반대라 먹던 것만 계속 찾아요."

초콜릿을 좋아하는 사람은 누텔라를 새콤 달달한 맛을 좋아하는 사람은 딸기 커스터드를 선택하면 된다. 모든 메뉴는 3500원. 전화가 없으므로 직접 찾아가야 한다. 홍대입구 역 4번 출구로 나와 서교 초등학교 옆으로 늘어선 옷 가게 거리, 몹시 초콜릿 근처에 있다.

오후 4시에서 4시 반 사이에 출몰, 10시 반 경에 사라진다. 월요일은 휴무. 늘 같은 장소에서 영업하지만 추운 겨울이 되면 어떻게 될 지 미지수라고 한다.

이 병 가져가도 돼요? … 홍대 마가리타 스플래쉬

네온 컬러의 시험관들이 벽에 가득 늘어선, 팝 아티스트의 작업실 같기도 하고 미래주의 콘셉트의 음반 가게 같기도 한 이곳은 테이크 아웃 칵테일을 판매하는 마가리타 스플래쉬다.

벽을 장식하고 있는 휘황찬란한 색의 길다란 병들은 이 가게의 트레이드 마크이자 칵테일을 담아주는 용기로, 미국 유학 중이던 주인장에게 영감을 준 도구다.

호텔 경영학을 공부하던 사장은 현지에서 유행 중이던 테이크 아웃 칵테일을 보고 꼭 이 예쁜 병에 칵테일을 담아 팔겠다고 결심, 귀국해 바로 실행에 옮겼다.

병 모양이 워낙 특이해 국내에서는 제작할 곳이 없다는 상황에도 굴하지 않고 해외 주문해 컨테이너로 들여오는 이 병은 놀랍게도 테이크 아웃 용이다. 때문에 들어오는 사람마다 "이 병 가져가도 돼요?"라고 묻는 풍경이 하루에도 몇 번씩 반복된다.

물론 가져가도 된다. 유리처럼 보이지만 내구성이 강한 플라스틱으로, 음식 용기에 자주 쓰이는 재료라 인체에 무해하다. 다만 세척은 재주껏 해야 한다.

칵테일은 마가리타 클래식부터 그린애플 마가리타, 피나콜라다 마가리타 등이 있으며 알코올이 없는 소프트 드링크와 에이드도 판매한다.

단, 믹스베리 보드카나 모히토 등은 테이크 아웃이 안돼 글라스로만 판매한다. 용량 상 병에 넣었을 때 반 밖에 차지 않아 폼이 안 나기 때문이라고. 두 잔을 주문해 채워 가거나 부득부득 우겨 담아 가는 방법도 있다. 전반적으로 4%대의 저알콜 음료를 지향하며 아직 국내에 정식 유통되지 않은 아그와(agwa)를 맛볼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스페인 풍의 브리또와 피자도 판매하는데, 곁들이 음식이라고 대충 만들지 않고 미국 CIA 출신 주방장을 따로 두고 제대로 낸다. 음식도 테이크 아웃이 가능하다. 올해 6월에 열어 현재 프로모션 기간으로 1+1 행사를 준비하고 있으니 가보려면 지금이 적기다.

테이크 아웃 고객이 90% 이상이지만 네온 컬러의 예쁜 테이블도 4개 준비돼 있다. 홍대 삼거리 포차 근처 크라제 버거 맞은 편.

와인 한 잔? 아니, 한 컵! … 이태원 와인 공장

어둑한 바의 불그죽죽한 벨벳 소파에 앉거나 레스토랑에서 포크와 나이프를 잡아야만 와인을 마실 수 있는 시대는 갔다. 좀더 분방하게 와인을 즐기는 방법 중 하나를 와인 공장에서 찾을 수 있다.

이태원에 위치한 와인 공장은 '미니 쿠퍼 주방'으로 더 유명하다. 그렇잖아도 좁은 내부의 반 이상을 앞 뒤로 잘린 자동차가 차지하고 있다. 와인을 주문하면 꽃미남 사장이 구부정하게 차 안으로 들어가 와인을 따르고 안주를 만든다.

40~50여종의 와인을 보유하고 있는데 가장 큰 장점은 싸다는 것. 캐주얼한 분위기에 걸맞게 가격에 거품이 없고 덩달아 사람들의 어깨에서도 힘이 빠진다. 거의 모든 와인이 4만~5만원 대다.

또 하나의 특징은 테이크 아웃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모든 와인이 테이크 아웃 되지는 않고 레드, 화이트 각각 1 종류와 샹그릴라만 가능하다.

초기에는 좀더 종류가 많았지만 보관 상의 문제로 줄였다고. 와인에 따라서는 시간을 두고 디캔팅하면서 더 향이 좋아지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이틀 사이에 맛과 향이 변질돼 버리기 때문에 언제 또 올지 모르는 테이크 아웃 손님을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테이크 아웃 용 와인을 선정하기 위해 소믈리에로 일하는 지인과 머리를 맞대고 고민한 결과 레드 와인은 지폴리노 토스카나, 화이트 와인은 라뜨레 블랑으로 정했다. 기준은 알코올 도수가 높지 않고 은근하게 취할 수 있는 수준.

"취한 채로 거리를 돌아 다니면 안되니까요"

샹그릴라는 매번 새로운 와인으로 탄산수와 얼음을 넣어 직접 만든다. '와인 공장'이 새겨진 투명한 플라스틱 컵에 담아주는 테이크 아웃 와인의 가격은 6000원이다.

총 5~6 테이블로 가게가 좁지만 센스 있는 인테리어 때문에 마시고 가는 손님이 더 많다. 평일에는 병과 잔 모두 판매하며 주말에는 병으로만 판다. 얼마 전까지 오후 3시에 문을 열었지만 최근에는 오후 6시쯤 문을 여니 확인해 보고 가야 한다.

문 닫는 시간은 평일 12시, 주말은 새벽 2시. 카나페나 치즈 과일 꼬치 등 간단한 안주도 준비 돼 있다. 이태원 역 3번 출구, 커피빈을 끼고 내려가다가 훼밀리 마트를 지나 첫 번째 골목으로 들어가면 바로 보인다.



황수현 기자 soo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