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 전후로 전세계 돌며 나라마다 축하파티… 벌써 30번째

호주의 한 유명 인사가 최근 한국에서 75세 생일 잔치를 가졌다. 트레이드 마크인 멋쟁이 나비 넥타이를 맨 그의 이름은 울프 블라스.

울프 블라스는 또한 이름난 호주 와인 브랜드 중 하나이기도 하다. 호주 프리미엄 와인 브랜드의 최고봉. 같은 이름인 이유는 와인 메이커 울프 블라스가 자신의 이름을 딴 와인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고향인 호주를 제쳐두고 추석 즈음 서울에서 생일을 맞은 이유는? 사실 그의 생일 축하 파티는 벌써 30번째다. 30년 전부터 생일 파티를 해왔다는 것이 아니라 75세 생일 잔치를 벌써 30번 가졌다는 얘기. 실은 생일 전후 바쁘게 전세계를 돌며 들르는 나라마다 생일 축하 케이크를 자르고 있다.

독일계로 1966년 호주에서 와인 만들기를 시작한 그는 와인만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지금 호주 와인 하면 '쉬라(쉬라즈)'가 대명사처럼 돼 있지만 그가 처음 포도밭을 일굴 때만 해도 호주와 쉬라즈와는 거의 상관관계가 없었다.

"쉬라즈가 호주 대표 품종이라는 것을 의심하는 이는 지금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1970년대만 해도 이야기가 달랐습니다. 당시 호주에서는 브랜디 및 포트와인 양조용으로만 쉬라즈를 사용했을 정도로 쉬라즈가 전혀 각광받질 못했었죠."

그는 호주 와인이 쉬라즈로 명성을 얻고 세계적 지명도를 얻게 한 1등 공신으로 꼽힌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별로 관심 없어하던' 쉬라즈를 전세계인들이 곧 좋아하게 될 품종이라는 굳은 믿음을 가지고 총력을 기울여 왔기 때문.

쉬라즈를 내세워 그가 거둔 성과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다. 울프 블라스의 블랙 레이블로 호주의 가장 영예스런 와인 트로피인 지미 왓슨 트로피를 1974년부터 76년까지 3년 연속 내리 거머쥐었다. 70년대 그는 호주에서 와인과 관련한 거의 모든 상을 독차지하며 호주 와인의 대표주자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원래 제 키가 컸어요. 그런데 비평가들이 하도 질투를 많이 해 '이것 밖에 못해?'라며 제 머리에 꿀밤을 많이 줘 키가 줄었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갑자기 의자 위에 올라 얘기하는 그는 '적잖은 쇼맨십'까지 보여준다. 많은 상으로 도배질할 만큼 수상을 휩쓸었지만 그만큼 시기나 질투의 대상도 됐다는 반증.

한편으로 일부 비평가들 중에는 그를 '와인 메이커'가 아닌 '와인 블렌더'라고 비하(?)하는 이들도 있다. 그럼에도 그는 최고를 의미하는 '블렌더 마이스터'로까지 불렸다. 그 만큼 좋은 포도와 와인들을 수집해 최고의 와인을 만들어내는 기술자였기 때문이다.

특히 그의 와인들에는 라벨마다 색깔이 붙여져 있다. 블랙, 그레이, 옐로우, 레드, 골드 레이블 등. 지금은 적지 않은 와인들이 라벨에 컬러로 종류나 등급을 표시하는 것이 일반적이 됐지만 그가 처음 와인 라벨에 컬러를 입힐 때만 해도 다소 생소했던 시도였다. 그의 창의적이고도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을 보여주는 한 대목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마시고 있는 와인의 이름이나 등급 등을 자세히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좀 더 일반인들이 와인을 알기 쉽도록 컬러 마케팅을 생각해냈습니다. 호주에서는 최초였죠. 코카콜라 마케팅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그만큼 와인의 대중화 노력 일환이라고 봐야죠."

그가 와인 메이킹에 있어서 새롭게 시도한 노력들은 이뿐만이 아니다. 모든 와인에 코르크가 아닌 스크류 캡을 부착하는 것을 비롯해 페트병 와인을 도입한 것도 호주에서는 첫 번째 시도였다.

그럼 울프 블라스의 맛은? 과일향이 풍부하면서도 부드러운 탄닌이 받쳐주는 특유의 맛과 향은 쉬라즈 품종의 일반적 테이스팅과 일치한다. 하나 더한다면 후레쉬하면서 입안 가득찬 구조감을 추가, 파워풀한 임팩트를 준다는 것. 울프블라스 와인의 진수는 특히 블랙 라벨에 고스란히 구현돼 있다.

"나비 넥타이를 왜 하냐구요? 처음에는 일할 때 거추장스럽지 말라고 짧은 넥타이를 맸습니다. 하다 보니 와인이란 것이 전통적인 것이라 나비 넥타이 역시 클래식하면서도 간편하고 강렬한 이미지를 표현하는 데 좋잖아요."

일반적으로 고령의 나이를 우습다는 듯 무시하며 여전히 세계 각지를 여행하고 다니며 열정을 과시하는 그는 지금 세 번째 부인과 가정을 꾸리고 있다.



박원식기자 park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