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신과 의사가 쓰는 '사랑과 전쟁'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배우자나 애인, 또는 친구처럼 자신의 인생에서 중요한 사람을 선택할 때 성격이나 가치관, 그리고 사회경제적으로 비슷한 상대를 고르는 경향이 있다.

이는 자신과 닮은 상대를 통하여 자신이 정당하고 안전하다는 느낌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자신과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하여 자신이 잘 몰랐던 세상을 발견하고 자칫 지루할 수 있는 인생에서 생동감을 느끼기도 한다.

즉 우리는 지나치게 생소하여 거북할 정도는 아니면서, 자신과 비슷한 점을 가지고 있어서 안정감을 줄 수 있는 상대에게 호감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이런 다소 상반되는 동기로 상대를 선택하기 때문에 이후의 남녀 관계에 많은 문제점들이 나타나는 것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일반적으로 여자들은 자신을 위해 고통을 감내하고 목숨까지도 바치려 하는 남자를 통하여 자신의 행복과 존재감을 확인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이런 사랑을 확신하는 동안 여자들은 자신의 남자가 말도 되지 않는 억지를 부리거나 남들에게 비웃음을 받아도 온 몸으로 그 남자를 받아들인다. 하지만 동시에 자기 남자가 자신의 희생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거나 마음이 변하여 자신을 버리지 않을까 하는 공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남녀가 이별을 할 때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상대적으로 훨씬 큰 상처를 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래서 대개의 여자들은 이런 상처를 피하기 위해서 처음부터 철저하게 자기 남자를 붙잡아두려고 하지만, 그럴수록 남자들은 벗어나려는 충동이 강해진다는 것을 이들은 모르고 있다.

남자의 무의식에는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를 잘 보호함으로써 자신의 우월함을 증명하고 싶은 본능과 그 여자에게서 신체적인 보살핌을 받고 심리적인 안정을 얻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 하지만 남자에게는 자신이 누군가에게 안주하거나 사로잡히는 것에 대한 근원적인 두려움이 있다.

그래서 많은 남자들은 자기 부인을 사랑하면서도 때때로 자신이 여전히 자유로운 존재라는 것을 확인하고 싶어한다. 이런 남자의 속성은 가정에 충실하기보다는 별로 대단하지도 않는 오락이나 외도에 빠져드는 것으로 나타나 자신이 정말로 사랑하는 부인에게 씻을 수 없는 고통을 주기도 한다.

물론 이러한 경향은 남녀의 성별에 고정된 것이 아니어서, 반대 성의 특성이 강한 사람들도 있다. 또 한 사람의 특성도 고정되어 있지 않고 항상 변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강한 생활력을 가진 남자는 가정 경제의 안정에 유리하겠지만, 자칫하면 바깥 일에 치중하여 가정에 소홀하거나 반대로 시시콜콜한 살림까지 지나치게 개입할 수도 있다.

또 가정적인 여성을 아내로 선택한 남자는 자기 부인이 애교를 부리는 것은 좋아하면서, 부인이 남편의 행방을 찾기 위해서 수시로 전화하는 것을 병적으로 취급하기도 한다.

문제는 자신과 상대의 특성이 잘 통할 때는 서로 당연하게 여기면서 상반되는 경우에는 지나치게 불행하게 받아들이는 데에서 생긴다.

우리는 자신과 다른 사람과 살면서 갈등이 빚어지는 것을 피할 수 없기 때문에 이런 갈등을 잘 해결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어떻게 할 것인가에 집중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물론 상습적인 폭력이나 병적인 도박, 경제적 태만이나 외도와 같은 문제에 대해서는 특별한 대책이 필요하다.

그러나 대개의 남녀관계에서 갈등을 일으키는 흔한 원인은 사소해 보이지만 참고 넘기기 어려운 작은 버릇들이다. 사소하기 때문에 상대가 조금만 신경 쓰면 고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반대로 자신의 경우를 바라보면서 상대도 그렇게 간단하게 고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비록 함께 오래 지내다 보니 불편하게 느껴지지만, 자신과 다른 상대의 특성을 신기하게 보았던 기억을 되살리고 애초에 자신이 그런 상대를 선택하였던 것을 깨닫는 것도 도움이 된다.

그래서 자신이 옳고 상대가 잘못되었다는 관점에서 말하기보다는 자신과 상대가 어떻게 다른지, 그 다른 점이 서로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 담담하게 말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그러다 보면 상대가 고치기보다 자신이 달라지는 것이 더 낫겠다는 뜻밖의 발견을 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크게 돌아보면 이러한 과정이 모두 자신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점을 가진 상대를 선택한 이유였다는 것을 알게 될 수 있다.



박수룡 백상신경정신과의원 원장 sooryong@medimai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