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메이징 코리안 테이블'피에르 가니에르 등 세계 요리 거장 4인의 한식에 대한 친절한 고찰

어메이징 코리아 테이블
"한식은 세계적으로 사랑받을 수 있을까?"

누군가는 한식의 문제는 콘텐츠가 아닌 홍보의 부족이라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사람은 먹어보지 않은 것을 그리워할 수는 없다.

또 누군가는 어느 정도의 융통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불고기나 부침개처럼 외국인들이 환영하는 한식도 많은데 굳이 된장, 청국장 맛 좀 보시라며 들이밀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여기에는 반대가 많았다. 변형은 곧 국적을 잃는 일이므로 대충 몇 그릇 팔아 먹을 생각이 아니라면 한식을 있는 그대로 전해야 한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섰다.

이야기는 점점 산으로 올라가 그럼 비빔밥에 아스파라거스가 들어가면 비빔밥이냐 아니냐는 소모적인 논란으로 변질됐다. (그 와중에 일본이 불고기를 세계화하고 있다는 소식이 또 우리 속을 뒤집어 놓았다) 이왕 나가려면 파인 다이닝으로 나가야 한다, 떡볶이를 세계화하자, 와인을 곁들여 보자, 아니다, 막걸리가 정답이다 등등 온갖 주장이 난무하는 가운데 의외의 곳에서 대답이 주어졌다.

1. 피에르 가니에르 2. 마시모 보투라 3. 코리 리 4. 루크 데일 로버츠 5. 피에르 가니에르의 코코넛을 바른 염소치즈 파르페와 흑마늘 거울 소스, 고추향 샐러드 6.루크데일의 거미게와 된장 드레싱을 곁들인 채소.
"한 국가의 음식을 소개한다는 것은 단일 음식 한 가지가 아닌 그 나라의 스타일을 소개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음식 강국인 프랑스에는 고급 요리도 많지만 가정식 같은 소박한 요리도 자국인들에 의해 똑같이 사랑받고 있습니다. 변형도 좋고 정통도 좋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외국인들이 맛있다고 해도 중요한 것은 지금 한국인들이 즐기는 음식이 아니라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서울시와 농림수산부가 한식 세계화를 위해 주최한 미식 축제 '어메이징 코리안 테이블' 1회를 맞아 한국을 찾은 재미 교포 요리사 코리 리의 말이다.

피에르 가니에르, 한식에 도전하다?

한식 세계화 및 서울의 미각 도시화를 목표로 기획된 '어메이징 코리안 테이블'은 10월28일부터 11월1일까지 다양한 행사가 열렸다.

민가다 헌, 삼청각 등 국내의 대표적인 한식당 열 곳의 주방장들은 세계화할 수 있을 만한 한식을 고안해서 내놨고, 젊은 요리사들은 한식 경연대회에 참석해 창의력을 뽐냈다. 그 중에서도 눈에 띄는 것은 '월드 마스터 코리안 테이블'로 세계적인 셰프들에게 주어진 한식 만들기 미션이다.

주최 측은 전 세계의 유명한 셰프들을 섭외하면서 고추장, 된장, 간장, 참기름 등 한국 정통 장류 중 2가지 이상을 반드시 사용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고 이 과정에서 리스트에 있던 많은 셰프들이 참가를 고사했다.

결국 이 조건을 흔쾌히 받아들인 프랑스의 요리 거장 피에르 가니에르를 비롯해 이탈리아의 마시모 보투라, 재미교포 출신의 코리 리,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활동 중인 루크 데일 로버츠 등 4명이 방한을 결정했고 6월부터 한식 문화에 대한 자료와 메주, 김치, 인삼, 전복 등 한식 재료를 배송 받아 연구를 시작, 드디어 그 결과물들을 선보이게 되었다.

엄밀히 말하면 그들이 만든 음식은 한식이 아니다. "음식은 하이엔드 급으로 올라갈수록 국적이 사라진다"는 리스토란테 에오 어윤권 셰프의 말처럼 그들의 음식은 이미 국경을 논한다는 것이 무의미하다.

4명의 셰프가 우리에게 보여준 것은 천재로 불리는 그들의 창의성이 한식 재료를 만나 얼마나 흥미로운 변주가 이루어질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시험하는 일이다.

물론 세계화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 적어도 '불코기 마싯써효'만 외치는 외국 대사들보다, 한식의 글로벌 키워드를 짚어내는 데는 그들이 가장 적임자일 테니까.

한식에 바칩니다. 거장들의 한식 오마주

피에르 가니에르 Pierre Gagnaire

프랑스 요리의 지존, 요리계의 피카소, 죽기 전에 꼭 한 번 맛 보아야 할 요리로 칭송받는 이 백발의 거장을 더욱 돋보이게 만드는 것은 그가 지금도 늘 새로운 식재료나 기법을 보면 어린 아이처럼 기뻐한다는 사실이다.

약 1년 전 롯데호텔에 그의 이름을 딴 레스토랑을 열면서 우리에게 좀 더 친근해진 그는 김치, 된장, 마늘, 소주를 푸아그라, 샬롯 등 프랑스의 대표 식재료와 매치했다.

살진 거위 간인 푸아그라는 굽기도 하지만 갈아서 무스 형태로도 많이 먹는데 여기에 맑게 걸러 낸 김치 국물과 소주를 넣어서 간 것. (시연 중 김치 국물을 추가하는 그를 보며 작은 웃음 소리가 나오자 가니에르는 "김치를 쓰는 게 신기하냐"고 물었다)

완성된 푸아그라 무스 위에 생 한우를 얇게 썰어 올리고 씻은 묵은지로 덮은 후 그 위에 다시 저민 키조개살을 올리자 훌륭한 메인 요리가 탄생했다.

키조개살에 바른 소스에는 된장과 마늘, 파슬리, 소주가 들어갔다. 앞서 만든 푸아그라 무스는 잘게 썬 김치와 곁들여지기도 하고 깻잎 위에 올려지기도 하며 다양하게 변주되었다. 디저트에는 오미자와 막걸리, 검은 깨를 활용해 마치 주사위 같은 재기 넘치는 모양새를 구현했다.

한식에 대해 연구할 기회가 비교적 넉넉했을 것 같다.

그렇다. 1년 전 피에르 가니에르 서울이 오픈했을 때부터 한국 음식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분자 요리의 대가라는 수식이 종종 붙는다. 어떤 요리사들은 이런 수식을 싫어하던데.

나는 대가라고는 말할 수 없다. 같이 일하고 있는 과학자가 한 분 계신데 이 분이 진짜 분자 요리의 대가이고 나는 그저 일부 요리에 사용하는 것뿐이다.

한국의 셰프 중에서는 한국 식재료를 쓴 음식이면 한식이라고 주장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나는 후자가 맞는다고 생각한다. 한국 요리만이 가지고 있는 코드가 있다. 그러나 세계화 앞에서는 문화적 정체성을 어느 정도 바꿀 필요도 있다. 그것이 큰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난 프랑스 사람이지만 나만의 요리를 한다. 하지만 그 음식에는 어쩔 수 없이 프랑스적 코드가 반영돼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당신이 보여준 음식은 한식인가.

한식이냐고? 천만에. 내가 만든 음식은 한식에 대한 오마주에 가깝다

그럼 반대로세계 각국에서 프렌치 요리를 만났을 때 퓨전화된 맛과 정통에 가까운 맛을 내는 것, 둘 중 어느 쪽이 반가운가.

음…흥미로운 질문이다. 나는 요리란 맛있는 것과 맛 없는 것, 잘 조리된 것과 잘 조리되지 않은 것, 이 둘만이 존재한다고 여긴다. 어떤 재료를 썼든 어떤 모양이건 간에 요리한 사람의 감정과 지식이 들어가 좋은 맛을 낸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맛있으면 된다는 말이 혹 각국의 음식이 가진 지역 색을 희석시킬 수 있다는 생각은 안 해보았나.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전통 음식을 네모라고 친다면 세상에는 네모 같은 음식도 있고 동그라미 같은 음식도 있는 법이니까.

마시모 보투라 Massimo Bottura

"제 나라에서는 저를 두고 전통의 파괴자라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요리사이기보다 마치 과학자 같은 인상의 마시모 보투라는 기자 간담회에서 마이크를 받자마자 이렇게 운을 뗐다. 그는 이탈리아 중에서도 음식으로 유명한 에밀리아 로마냐에서 '오스테리아 프란체스카'를 운영 중이다.

그의 말이 전부는 아니지만 실제로도 그는 평소에 잘 쓰이지 않는 향과 재료를 시도하는 것으로 유명하며 기존 요리의 변형에 있어서는 당대 최고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덕분에 항상 논란의 중심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슐랭 가이드에서 별 2개를 받은 데 이어, 올해 이탈리아의 권위 있는 미식 잡지 'L'espresso에서 2009년 최고의 레스토랑으로 선정되었다.

한국에서 보여준 음식에서도 마시모 보투라의 장난기는 유감 없이 발휘됐다. 다른 셰프들에 비해 유난히 독한 재료들에 눈을 빛내던 그는 흑마늘과 인삼, 고추장을 선택해 '블랙'이라는 콘셉트로 요리를 만들었다.

그 중 가장 흥미로운 것은 이른바 '가짜 바비큐'인데 올리브 오일을 숯에 하루 동안 재워 놓아 향과 색을 입힌 후 이것을 한우에 발라 61.2도로 익힌 것. 이렇게 하면 겉은 완벽하게 새까맣지만 잘라보면 피가 채 응고되지 않은 벌건 고기 살이 드러난다.

마치 녹을 것 같은 식감은 그의 말에 따르면 "한우의 질이 너무 뛰어나기 때문에" 가능한 것. 여기에 태운 야채를 믹서에 갈아 재로 만든 후 뿌려 한번 더 익히면 향과 모양은 바비큐이면서 전혀 새로운 맛을 가진 음식이 탄생한다.

흑마늘은 고기 요리에 곁들여지는 으깬 감자의 색을 까맣게 하는 데 쓰였다. 맛이 너무 강해 우유에 졸이는 과정이 선행되었다고.

이번에 선보인 갈라 디너에서는 된장을 사용했다고 들었다.

된장의 향이 마음에 들어서 몇 가지 요리에 사용해 봤다. 크렘 로얄을 익힌 후 가운데 래디큐어를 넣고 여기에 된장을 크림처럼 아주 부드럽게 만들어서 곁들였다. 내가 어릴 때 자주 먹던 음식에 된장을 넣어본 것이다.

요리를 하면서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꺼내는 것 같다.

어른과 어린이가 음식에 접근하는 방식은 완전히 다르다. 어린 시절 누구나 배고픈 상태에서 집으로 달려간 경험이 있을 것이다. 어린 아이에게 음식은 기쁨이다. 그 시절의 기억은 자주 나에게 영감을 준다.

나는 유년기의 기억을 살려 푸아그라를 아이스크림 바 형태로 만든 적도 있다. 푸아그라를 막대에 꽂고 안에 발사믹을 주입한 후 겉을 아몬드와 헤이즐넛으로 장식한 것이다.

대부분의 서양 사람들이 마늘이나 발효 식품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에 비해 당신은 그런 재료들을 거리낌 없이 사용한다.

나는 이탈리아 사람이다. 이탈리아인들은 발효된 맛이라든지 그밖에 강한 맛에 익숙하다. 한식을 보면서 나의 요리와 비슷한 점이 많다고 느꼈다. 단 맛과 신 맛을 조화시킨다는 점이 특히 그렇다.

한식의 세계화에 대해서 조언해줄 수 있는 말이 있나.

피에르 가니에르 같은 거장이 한국의 셰프들에게 여러 가지 영감을 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와 더불어 나라를 대표할 수 있는 요리를 선정하는 것도 중요하다. 미국 하면 햄버거, 영국 하면 피시 앤 칩스가 떠오르듯이 한국이라는 단어에서 바로 떠올릴 수 있는 요리가 있어야 한다.

코리 리 Corey Lee

사람들은 그가 겨우 서른 두 살에 캘리포니아 나파밸리 최고의 레스토랑인 프렌치 론드리의 수석 조리장이라는 데 놀라지만, 진짜 놀라운 것은 그가 믿을 수 없을 만큼 겸손하고 성숙하며 한식 세계화에 대해 객관적이고 애정 어린 견해를 잔뜩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7살 때 미국으로 이민을 간 그에게 한식은 문화적 정체성을 유지해주는 기둥이자 대화의 주제이며 과거를 기억하게 만드는 창, 그리고 한국 그 자체였다.

그는 캘리포니아 참나무에서 수확한 도토리로 도토리묵을 만드는 영상을 보여주었다. 탄닌 성분을 완전히 제거해 공들여 만든 도토리묵에 셰프의 창의성이 더해지자 '자연의 재현'이라는 콘셉트가 탄생했다.

즉 도토리 묵과 도토리를 먹고 자란 돼지, 그리고 참나무를 숙주로 자라는 송로 버섯을 조화시킨 요리를 구상한 것. 자연에서 만났던 것들이 접시 위에서 재회한다는 재미있는 아이디어다.

한국계 미국인으로 유럽과 미국에서 활동했다고 들었다. 당신 요리의 국적을 따지자면 어디인가.

기초는 프렌치다. 하지만 정통 프렌치만 고수하는 것은 아니다.

사전에 셰프들에게 한식 재료가 공급되었다고 들었다.

나는 안 주던데? (웃음) 아마 내가 다른 셰프들에 비해 한식에 익숙하고 한국 식재료를 잘 알기 때문인 것 같다.

당신이 보여준 음식에, 재료 외에 한식이라고 부를 만한 요소가 있나.

재료만으로는 음식의 국적을 말할 수 없다. 내 음식은 기본적으로 서양 음식이되 한국의 식재와 한국적 영감이 들어간 음식이다.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한식 세계화는 내부의 움직임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말한 것을 봤다. 그렇다면 한식에 대해 정보가 부족한 해외의 셰프들이 와서 한식을 만드는 이런 행사가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나.

이번 행사는 결정적으로 한국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한식이 다른 문화와 교섭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인데다가 음식뿐만 아니라 한국의 다른 문화에 대한 흥미가 높아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식 세계화를 놓고 어느 정도 한식을 변형시켜야 할 것인지에 대해 안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자주 받는 질문이다. 훌륭한 음식이라는 목표를 놓고 볼 때 변형된 것과 안 된 것, 두 가지로 나누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전통 음식, 요즘 가장 많이 먹는 음식, 길거리 음식 등 모두 훌륭한 음식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한국인의 입맛에 어떻게 어필하는가이다.

한국인의 입맛에? 외국인의 입맛이 아니고?

프랑스인들은 전통 음식 문화를 지극히 아끼는 한편 현대식으로 변형된 음식, 캐주얼한 음식 등 모든 것을 수용하고 사랑한다. 한국 사람들도 이게 맞다, 저게 맞다 가리기보다 한국에서 먹는 모든 음식을 사랑하고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

루크 데일 로버츠 Luke Dale Roberts

영국 출신으로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 타운에서 라 콜롬이라는 레스토랑을 운영 중인 루크 데일은 아시안 요리와 컨템포러리 프렌치 요리를 접목한 퓨전으로 이름을 알렸다.

그가 택한 것은 된장과 미숫가루, 천연 송이버섯, 그리고 깻잎. 된장은 드레싱과 양념으로 만들어 크랩 위에 얹었고 미숫가루로는 크렘블레(프랑스 식 디저트)를 만들었다. 그에 따르면 한국산 쇠고기는 놀라울 정도로 훌륭하며 처음 보는 천연 송이버섯은 그야말로 '뷰티풀'하다고.

오늘 아침엔 뭘 먹었나.

반가운 질문이다 (웃음). 베이컨, 오믈렛 등등 아주 많이 먹었다. 원래는 절대로 아침을 먹지 않는다. 하지만 왠지 오늘 하루 종일 밥 먹을 시간이 없을 것 같아 미리 먹어뒀다.

한식 세계화를 놓고 어느 정도 한식을 변형시켜야 할 것인지에 대해 안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지역적 특색이 강한 것들은 변형이 필요하다. 된장찌개 같은 것들은 묽게, 부침개는 그대로 나가도 무방하다. 물론 내 생각이다.

외국인들은 모두 불고기, 부침개만 찾는다.

아마 한국의 발효된 맛을 대부분의 서양 사람들이 힘들어하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셰프는 시장에서 재료를 보면서 요리의 영감을 얻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다. 이번에는 직접 장을 보지 않았다고 들었는데.

한식 재료를 박스에 넣어서 보내 줬다. 여기에 한국의 분위기를 살리려고 노력했다.

구체적으로 어디서 한국의 분위기를 캐치했나, 한국의 거리? 가옥?

사실 시간이 부족해서 많이 돌아다니지는 못했고 주로 재료의 맛과 특성을 보고 음식을 고안했다.

한 나라의 음식 수준을 한 눈에 알기 위해서는 무엇을 보면 될까.

그 나라 음식만이 가지고 있는 어떤 것이 있어야 한다. 마치 패션처럼 트렌드가 명확하게 잡히는 음식이 좋다.



황수현 기자 soo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