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장·고추냉이 없는 초밥 고정관념 탈피 새로운 맛으로 인기

다카시마 야스노리 셰프
하얀 생선 위를 흐르는 노란색 소스, 붉은 참치살 위에 얹혀진 푸른 잎사귀, 오징어살과 매치된 성게알, 또 올리브유와 튀김까지도 재료로…과연 무슨 음식일까? 예상외로 모두 스시(초밥) 얘기다. 이른바 '창작 스시'.

미국 뉴욕 맨하튼의 인기 있는 일식 레스토랑 '스시 오브 가리'. 일본에서 스시를 배운 셰프는 미국에 건너가 자신의 레스토랑을 열고선 스시 요리로 명성을 떨치고 있었다.

가리는 일본 레스토랑의 주방에서 셰프들이 초생강을 부르는 용어, 씹을 때 '사각사각' 나는 소리가 시원하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그런데 셰프가 외국인들이 스시를 먹는 모습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고선 생겨난 고민. "외국인 스시 초보들이 너무 간장을 많이 찍어 먹는다"는 것이다. 그것도 간장에 밥과 생선을 푹 담그듯. 그는 "이들이 너무 짜게 스시를 먹는 것을 지켜보니 마음이 아팠다"고 한다.

그래서 그가 생각한 아이디어 하나. 간장을 찍지 않고도 먹을 수 있는 스시라면 어떨까? 생선 살점에 올리브유를 바른다거나 아예 처음부터 간을 내서 내놓는 것 등도 방법이 될 수 있을 텐데. 최근 새로운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는 창작 스시는 그렇게 태어났다.

W서울 워커힐호텔 일식당 '나무(Namu)'의 도 특별한 메뉴를 제안한다. 바로 뉴욕에서 처음 붐을 일으켰다는 창작 스시.

올 중반 W호텔에 새 얼굴로 합류한 그는 세계적인 스타일 호텔 브랜드인 'W'와 컨템포러리 재퍼니즈 레스토랑을 표방하는 나무의 이미지에 걸맞게 신개념의 창작 스시 메뉴들을 선보인다.

원래 스시라면 밥과 생선, 그리고 고추냉이(와사비)의 세가지 재료로 구성되는 것이 상례. 밥알 뭉치 위에 생선 살점, 가끔은 해물이 올라 오면서 재료도 그 이상을 거의 벗어나진 않는다. 겉에서 크게 눈에 띄지 않지만 코 끝에 톡 쏘는 맛을 남겨주는 고추냉이의 존재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요소.

하지만 다카시마 셰프의 스시는 이런 고정 관념을 완전히 뒤엎는다. 밥알들과 생선 살점 위에 화려한 색상의 소스가 두껍게 뿌려져 있지를 않나, 튀긴 채소나 잎사귀도 덤으로 올려진다.

또 올리브유나 과일즙을 바르기도 하고 심지어는 고기까지도 스시 재료로 활용된다. 스시의 일반 형태와 유형, 소재 등에서 기존 방식과는 전혀 다르다.

전통 스시와 유일, 아니 유이하게 같은 점이라면 스시 맨 밑을 구성하는 밥알 부분과 생선 살점이 기본 축을 구성한다는 것. 대신 그의 창작 스시에는 고추냉이가 발라져 있지 않고 간장을 찍어 먹지도 않는다. 뉴욕에서의 창작 스시와 같은 개념.

하지만 그의 창작 스시가 미국 뉴욕의 그 유명한 집 스시와 똑같은 것은 아니다. 말 그대로 다카시마 자신이 '창작'한 고유의 스시 메뉴이기 때문.

그는 "일본 규슈의 후쿠오카에 있는 덴스시(天壽司)에서 영감을 처음 얻었다"고 말한다. 3대째 이어오는 명문 스시 레스토랑인 이 집은 여러가지 다양한 새로운 스타일의 스시를 내놓기로 유명한데 그 또한 자신만의 상상력을 발휘해 보기로 한 것.

한편으로 창작 스시는 형태면에서 '변형' 스시로 볼 수도 있다. 기존의 스시 틀을 탈피하고 모양과 재료, 맛 등에서 변화가 일었기 때문. 실제 도쿄나 서울에서 스시에 약간씩 변화를 주는 경우는 간혹 찾아볼 수 없지는 않다.

실제 그렇게 흔하다거나 다양하지도 않은 편. 그럼에도 뉴욕이나 다카시마 셰프의 창작 메뉴가 뉴트렌드로 새롭게 다가오는 이유는 창작 스시 컨셉트가 처음으로 글로벌하게 붐조성이 됐고 뿌리(이유)가 있는 요리의 한 맥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때문에 다카시마의 창작 스시는 무척 과감하기만 하다. 복잡한 듯 알록달록 컬러풀한 것도 매력으로 다가온다. 밥알 위에 오징어를 얹고 그 위에 계란 노른자에 간장을 섞어 바른 뒤 성게알을 올린 스시는 오징어 윗부분까지 불로 구웠다. 간장 없이도 (오징어가) 굽힌 구수한 맛에 성게알 향이 입 안에 남는다.

붉은 참치 뱃살에 샐러드를 얹고 또 그 위에는 노란색 소스를 올린 스시는 우선 밥알부터 치면 4층 구조다. 노란 색이라고 안심하고 먹다 보면 살짝 매콤한 맛이 난다는 점도 스시치고는 독특하다. 마요네즈를 베이스로 대파 조각, 날치알 그리고 고추장까지 가미시킨 때문.

학꽁치에 민트잎을 살짝 놓은 스시는 일견 단순해 보인다. 그러나 올리브오일과 소금, 라임즙, 그리고 민트향까지 생선 살점에 발라져 있다. 결국 민트가 그냥 올라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표시.

또 하얀 살점의 광어 스시에는 망고 소스와 소금을 발랐고 붉은 참치 살에는 참기름을 섞은 간장 소스를 드레싱으로 사용한다.

스시를 먹으면서 참기름 향을 맡는다니 미처 생각 못해본 경험이다. 연분홍 방어 스시는 오렌지 즙 소스에 깻잎 장식을 달고 있기까지 하다.

소고기에 갈비 양념을 한 뒤 튀김옷을 입혀 튀긴 후 밥알 위에 얹고 무순을 올려 기름진 맛을 덜었다는 소고기튀김 스시도 그가 개발한 메뉴. 밑에는 깻잎까지 깔아놔 육류와 채소의 조화를 꾀했다.

특히 그는 이들 스시에서처럼 소스는 물론, 허브나 올리브 오일, 채소 등을 많이 사용한다. 허브나 채소가 생선의 비린내나 느끼함을 없애주기 때문. 간장을 찍어먹지 않는 대신 각종 다양한 소스가 등장하는 것도 그만의 전매특허다.

다카시마 셰프가 창작 스시를 내놓은 것은 불과 몇 달 전. SK그룹 최태원 회장이 우연히 '이상한 스시'를 맛보곤 "괜찮다"고 평가를 내렸다고 한다. 결국 최 회장의 '예리한 미각'에 힘입어 특선 메뉴로까지 발전하게 됐다는 것이 일식계의 진단.

한 가지 단점이라면 그의 창작 스시 전문 테이스팅은 한 달에 딱 한 번만 벌어진다. 매달 첫 번째 수요일 저녁에만 기회가 마련되는데 그것도 단 8석 뿐.

스시 바에서 신선한 해산물로 바로 만들어 주기 때문에 일반 테이블이 아닌 바에서만 진행된다. 벌써 몇 달째 예약이 밀릴 정도로 인기 만점이라고. 창작 스시에 어울리는 프리미엄 사케 또한 무제한 시간을 함께 한다.

창작 스시의 인기는 특히 젊은 층에서 더 폭발적이다. 스시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거나 전통적인 스시 맛에 식상한 이들에게는 새로운 맛에 대한 열광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하다는 이유에서다. 무엇보다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갖고 싶어하는 젊은층들 사이에서 '신문화를 즐겨 보자'는 추세와도 잘 부합한다.

"단순히 틀에 박힌 것을 변형시켰다거나 변화만 준 수준은 아니지요. 작은 변화를 뛰어넘는 업그레이드를 이뤄내고 스시의 또 다른 줄기를 창조해냈다고나 할까요. 창작 스시를 완전한 변화라고 할 수 있는 것은 그 때문이라고 봅니다."

1995년 서울 플라자호텔에서 한국 생활을 시작한 그는 밀레니엄힐튼호텔과 그랜드힐튼호텔 등을 거친 경험을 바탕으로 일본의 정통 스타일과 W호텔 감각의 현대적인 일식을 함께 선보인다는 호평을 받고 있다.

무엇보다 한국인 아내의 가르침에 힘입어 거의 완벽한 한국어를 구사한다는 것도 그만의 강점. 성원에 힘입어 그는 창작 메뉴 스시 테이스팅 말고 일반 메뉴와 셰프 세트메뉴에도 일부분 창작 메뉴들을 추가해 놓고 있다.



글 사진 박원식기자 park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