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가 있는 가족여행] 죽령활엽수 낙엽 양탄자 밟으며 걷는 '소백산 자락길'의 3色 유혹

(좌)압각수 (우) 억새 가득한 달밭길
'구름도 울고 넘는다'는 죽령(竹嶺)은 소백산맥의 허리에 있는 험한 고개다.

이름대로라면 대나무가 많아야 하겠지만, 만추의 화려한 낙엽만 가득하다. 영동 추풍령, 문경 새재와 함께 영남지방에서 서울로 넘나드는 3대 관문 가운데 하나인 죽령을 지금 찾아가면 '소백산 자락길'을 걸을 수 있다.

활엽수 낙엽이 발목까지 차 올라 푹신한 양탄자를 밟는 듯 기분 좋게 걸을 수 있는 길이 활짝 열린 것이다.

올해 문화체육관광부가 추진해 새로 만들어진 '이야기가 있는 문화생태 탐방로'는 전국에 모두 7곳이다. 그 가운데 소백산 자락길이 죽령의 남쪽 영주 땅에서 시작된다.

조선시대, 영남지방에서 태어난 양반이라면 과거에 급제하는 청운의 꿈을 품고 한양으로 가면서 한번 쯤 걸었음 직한 소백산 자락길은 애화(哀話)의 고장 순흥에서 시작되어 죽령을 넘어 단양의 장림리에서 끝이 난다.

(위) 초암사 (중간) 비로사 (아래) 순흥묵밥
소수서원-삼가리까지 걷는 제1코스, 삼가리-소백산역의 제2코스, 소백산역-단양장림리의 제3코스 등 모두 3개 코스가 있다.

이 가운데 첫 코스인 소수서원-삼가리 제1코스는 '선비와 가요가 함께 숨 쉬는 문화생태 탐방길'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걷는 길 곳곳마다 조선시대 선비들과 관련된 많은 이야기가 주저리주저리 열려있기 때문이다.

하루에 걷기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세 구간으로 나눠놓은 제1코스의 첫 구간은 '금성대군길'이다. 소수서원-청다리-금성단-압각수-순흥지-삼괴정으로 이어진다. 약 3.8km의 들길과 마을길을 걷는 시간은 약1시간 정도다.

출발지인 소수서원 부근에는 선비들의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선비촌과 단종 복위 운동으로 금성대군의 애환이 깃든 금성단 등이 있는데 이곳에서 걷기 여행은 시작된다.

첫 도착지는 압각수(鴨脚樹)다. 조선 세종의 여섯째 아들 금성대군이 단종의 복위 운동을 벌이게 되고 1457년(세조3년)에 정축지변이 터지자 순흥 일대는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그러자 압각수는 스스로 말라 죽었고, 1682년에 잎이 다시 무성해지자 이듬해에 폐부(廢府)된 순흥이 다시 순흥부로 바뀌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추수가 끝난 황량한 들길을 걷다 보면 죽계구곡에서 흘러 내려온 물이 모여 만들어진 순흥 저수지를 지나게 되고 이어 삼괴정(三槐亭)에 이르게 된다.

600년 된 느티나무 세 그루가 있어 삼괴정이라 불리는 이곳은 배순(裵純)의 점방(店房)이 있던 곳이라 하여 지명이 배점이기도 하다.

배순은 무쇠장이었지만 퇴계 선생이 소수서원 백운원에서 강학할 때 뜰아래에서 자주 청강을 하다 선생의 눈에 들어 제자들과 함께 글을 배운 사람이다.

삼괴정을 지나면서 두 번째 구간인 '죽계구곡길'에 들어서게 된다. 삼괴정부터 초암사까지 거리는 약3.3km 정도로 어른 걸음으로 50분 정도 걸린다.

아홉 구비를 돌아 절경을 이루고 있는 죽계구곡은 고려 충숙왕 때의 문신이자 문장가인 안축(安軸)이 지은 죽계별곡의 배경이 된 곳으로 조선 영조 때 순흥부사를 지낸 신필하가 주희의 무이구곡을 본 따 죽계구곡이라 이름 붙였다.

이퇴계, 주세봉 등 조선시대 대유학자들이 성지처럼 찾던 순흥의 죽계구곡은 삼괴정 앞의 제9곡부터 상류 쪽으로 초암사 앞의 제1곡까지 아홉 구비로 이어지는 약 2km의 계곡이다. 초암사는 신라문무왕 때 의상대사가 부석사를 창건하기 전 초막을 얽었던 자리란 뜻에서 초암사라는 이름을 얻었다.

제1코스의 마지막 구간인 '달밭길'은 초암사-삼가주차장에 이르는 코스로 길 이름만큼이나 낭만 가득한 길이다.

초암사를 지나면 바로 나타나는 오솔길을 따라 300m 쯤 올라가다 보면 계곡과 길이 얽혀있는 듯한 좁고 깊은 협곡이 나타나는데 이곳이 바로 이 달밭계곡이다.

달밭은 흔히 '달빛이 밝은 밭'이라고 해석하기 쉽지만 달밭골의 '달'은 원래 산의 고어다. 따라서 '달밭'은 '산에 있는 밭'을 말한다. 예전에 화전을 일구며 살아가던 사람들이 있어 이런 이름을 얻은 것으로 전해진다.

달밭길은 얼마 전까지 입산금지로 출입을 제한해 왔기 때문에 숲 깊고 물 맑은 비경이다. 죽계구곡의 상류를 따라 이어지는 작은 오솔길에는 낙엽이 푹신한 양탄자처럼 깔려있어 구름 위를 걷는 느낌이다.

깊게 쌓인 낙엽과 울창한 숲을 지나다 조금 지루해지기 시작하면 통나무로 만든 외나무다리와 계곡을 가로지르는 돌다리가 나타난다. 이 코스가 끝나가는 곳에는 천년고찰 비로사가 기다리고 있다.

신라 문무왕 20년(680) 의상조사가 창건했다고 전하는 이 절은 임진왜란 때 불타고 다시 지어졌다. 초암사에서 시작해 달밭골-비로사-삼가주차장에 이르는 이 구간의 길이는 5.0km로 약 1시간 20분 정도 걸린다.

순흥묵밥

금성대군이 순흥부사와 단종 복위 운동을 벌이다 쑥대밭이 된 순흥은 졸지에 산골마을로 전락하게 된다. 이때부터 심게 된 메밀을 이용해 만든 음식이 메밀묵밥이다.

순흥묵밥은 순흥전통묵밥(054-634-4614)이 유명하다. 가마솥에 장작불을 이용하여 재래식으로 묵을 만들고 잘게 썬 김치에 삭힌 고추를 넣고 구운 김을 부셔 넣은 다음 조선 간장으로 맛을 낸다. 1인분 5천원.



글, 사진 정보상 (여행작가, 와우트래블 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