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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워야 산다, 데우면 더 맛있는 술

사케 중에는 준마이·혼죠조, 소주 중에는 정통 증류식 소주
  • 도쿄 사이카보의 스키야키와 도쿠리(사케잔), 사케는 '아치노쿠라'
이열치열이란 말은 있어도 이한치한이란 말은 없다. 추울 때는 그저 따뜻한 아랫목에 목구멍으로 뜨끈하게 넘어가는 술이면 그만이다. 찬 바람이 마음까지 식히는 계절. 따끈하게 데울수록 제 맛을 내는 술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이제 '데워 먹는 술=정종'이라는 뻔한 공식은 버리자.

최상의 맛을 내는 온도는?
"사케는 기본 저장 온도가 4도입니다. 하지만 그 중 준마이나 혼죠조 같은 경우에는 상온 보관하거나 살짝 데워 마시면 향이나 맛이 더 그윽하게 살아나요. 반대로 긴조나 다이긴조는 살짝 차게 마시는 편이 더 맛있고요."

일본식 가정 요리를 선보이는 도쿄 사이카보의 기키자케시(사케 소믈리에) 여태오 씨의 말이다. 그에 따르면 술을 덥히는 이유는 단순히 날씨가 추워서가 아니라 술의 향과 맛을 최상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준비 과정이다.

"온도의 중요성은 아이스크림에서 극단적으로 나타나죠. 녹은 후에는 녹기 전보다 단 맛이 훨씬 더 강하게 느껴지는데 술도 마찬가지입니다. 흔히 고급 사케는 차게 마셔야 향이 날아가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어떤 술들은 온도가 올라감에 따라 잡향이 빠지고 물 분자와 알코올 분자가 적절히 재결합해 맛도 좋아지면서 마시기 편한 술이 됩니다."

데워 먹기 좋은 사케로 그가 추천하는 것은 준마이와 혼죠조. 사케 중에는 쌀의 향보다 과일향이 더 많이 나는 종류가 있는데 이들을 데우면 그렇잖아도 달고 풍성한 향이 높은 온도로 인해서 더 강하게 올라와 코를 찌를 정도가 된다. 이쯤 되면 마시는 사람 입장에서는 '느끼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준마이는 주조 시 양조용 알코올을 넣지 않고 만들어 쌀 본연의 맛에 충실하다.

  • 증류식 소주 화요 25%
혼죠조는 정미율 70% 이하로 가장 덜 깎은 쌀로 만든 술이라 (정미율이 높을수록 쌀을 깎아낸 양이 적다는 뜻이다) 등급 상 가장 아래에 위치하지만, 싼 와인 중에도 최고의 와인이 많듯이 혼죠조 특유의 맛에 반한 사람들이 많다. 여태오 기키자케시가 추천한 '이치노쿠라' 역시 혼죠조다. 데워서 마시면 특유의 드라이한 맛이 살짝 강해지면서 목구멍을 후끈하게 덥히고 넘어간다.

데우는 온도에 대해서는 술에 따라, 마시는 사람에 따라, 그리고 곁들여 먹는 안주에 따라 말이 달라지는데 몸이 가장 환영하는 온도는 역시 체온에 가까운 35~40도 정도다. 맥주나 소주는 냉장고에서 꺼내 와 마시는 것이 보통인데 차가운 술은 체내로 들어가고 나서 취기가 오르기까지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린다. 술의 온도가 체온에 도달해야 비로소 취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뇌에서 재빨리 인식을 못하니 과음하게 될 가능성은 자연히 높아진다. 35도 전후로 따뜻하게 데운 술은 마시는 속도와 취하는 속도가 비슷하기 때문에 뇌가 음주량을 적당하게 조절해주는 효과가 있다.

불로 추위를 다스리다
"데울 때는 전자레인지를 쓰지 마세요."

전문가들에 따르면 전자레인지에 사케를 데울 경우 술을 이루고 있는 분자에 변형이 생겨 맛과 향이 변질된다. 중탕이 가장 바람직한 방법인데 미지근한 물로 '세월아~네월아~' 데우다 보면 향이 다 날아가 버린다. 열전도율이 높은 금속 재질 냄비에 얼른 데워서 후후 불어 마시는 것이 가장 맛있게 즐길 수 있는 비결이다. 제대로 된 일식당에 가면 사케를 데우는 예쁜 도쿠리도 볼 수 있다.

그저 차게 먹는 술로만 알려진 소주 중에도 데워 먹어야 제 맛을 내는 것들이 있다. 물론 시중에서 판매하는 희석식 소주가 아닌 전통 방식으로 제조한 증류식 소주 이야기다. 95%까지 정제한 알코올에 물을 타서 만드는 희석식 소주는 주정을 뽑아내는 동안 술의 맛이나 향이라고 부를만한 것들이 다 날아가 버리기 때문에 향을 돋우고 말고 할 것도 없다.

"술의 특징은 알코올 말고 나머지 1%에서 좌우됩니다. 그 1%의 미량 성분을 어떻게 살리느냐가 좋은 술을 만드느냐 못 만드느냐를 가르죠."

광주요 문세희 부사장의 말이다. 같은 회사에서 출시한 화요는 낮은 온도에서 한 번만 증류해 원료인 쌀의 풍미를 부드럽게 살렸다.

"소주는 만드는 동안 불을 3번 거칩니다. 밥을 지을 때 한 번, 발효할 때 한 번, 그리고 증류할 때 한 번입니다. 그래서 옛날부터 소주를 불로 다스린 술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래서인지 소주의 향을 좀 더 제대로 느끼고 싶을 때 데워 마시는 것만큼 좋은 방법이 없습니다. 물론 차가우나 더우나 어떻게 마셔도 맛있는 술이 진짜 좋은 술이기는 합니다."

화요는 25%와 41% 두 종류로 나오는데 각기 마시는 방식이 다르다. 향이 강하고 도수가 높은 41%는 차갑게 마시는 게 어울린다. 온더락 잔에 얼음과 술의 양을 1:1 비율로 섞은 후 얼음이 살짝 녹아 술에 섞여 들어가기를 기다렸다가 마신다. 향이 약하고 깨끗한 맛이 나는 25%는 따뜻하게 데워야 원료의 향과 풍미가 극대화 된다. 컵에 뜨겁게 데운 물을 먼저 붓고 그 다음 25%를 따른다. 비율은 물이 6, 술이 4 정도. 뜨거운 물이 상승하면서 술과 섞여 깊은 향이 우러나온다. 물의 온도는 원하는 대로 정할 수 있다.

알코올이 날아가는 온도가 70도 전후이므로 그 이하이면 상관 없다. 물 대신 녹차를 써도 잘 어울린다. 뜨거운 녹차를 붓고 그 위에 화요를 따라 마시면 된다. 따끈한 정종에 태운 복어 지느러미를 넣어 향을 돋우듯이 화요에 넣어도 좋은 궁합을 이룬다. 마시기 전 구운 복어 지느러미를 넣고 잠시 뚜껑을 닫아 두면 술과 복어의 서로 다른 향이 얽혀 묘한 향취를 풍긴다. 다른 재료와 섞지 않고 술만 마시고 싶다면 중탕을 하거나 자기 주전자에 넣어서 데워 먹으면 된다.

반대로 절대로 데우지 말아야 할 술도 있을까?

술은 기호 식품으로 맛의 평가는 전적으로 마시는 사람에 달려 있다고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대 데우지 말아야 할 술도 있다. '생(生)'자가 들어간, 이른바 가열 처리를 거치지 않아 미생물이 팔팔하게 살아 있는 술들은 아무리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더라도 차갑게 마시는 것이 정석이다.

우리 나라 술 중에는 생 막걸리가 그런 경우로, 데웠다가는 생 효모 특유의 맛을 살리기 위해 유통 기한까지 포기한 것이 의미가 없어진다. 물론 맛도 없어진다. 사케 중에도 '생 사케'가 있다. 나마슈(生酒)라고 부르는 이 술 역시 데우면 '말짱 꽝'이 된다. 사케병 뒤쪽에 붙어 있는 라벨에서 '생'자를 발견하면 데워 마실 생각은 포기하는 것이 좋다.

체온에 가깝게 데운 술은 원래 몸의 일부였던 양 뻔뻔하리만치 부드럽게 흘러 들어가 찬 바람에 언 몸을 훈훈하게 덥혀준다. 게다가 과음을 막아 건강까지 지켜주니 이쯤 되면 겨울에는 굳이 비싼 술을 찾아 다닐 이유가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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