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신과 의사가 쓰는 '사랑과 전쟁'

MBC드라마 '불새'
높은 학식과 인품을 가지고 이웃을 돕는 일에도 마다하지 않아서 주변 사람들에게서 존경을 받지만 정작 자신의 배우자와의 불화를 해소하지는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좋은 직장과 경제력, 뛰어난 음식 솜씨와 미모, 그리고 자녀를 위한 헌신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더라도 그 부부 사이에 사랑이 없으면 그 가정은 행복하다 말할 수 없다. 남들에게는 연애나 가정 상담을 해주면서 자신은 오랫동안 혼자라는 외로움을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사랑을 하지 않는 삶에는 생명력이 충만하다 말하기 어렵다. 부부가 살아가면서 점점 서로를 사랑하지 않게 되는 이유는 상대의 잘못에 대해서 화를 풀지 못하고 있거나 시간이 갈수록 사랑하는 마음이 식어가기 때문이다. 나이든 부부가 '사랑 때문에 사나, 책임감으로 사는 거지'라고 흔히들 하는 말은 자신의 사랑에 대한 책임을 모면하려는 변명이다.

주어진 삶에 감사하며 자신의 책임을 다 하려는 사람은 자신의 내면에서 사랑이 샘솟도록 스스로 노력한다. 이런 사람은 자신의 상황이나 상대의 반응을 보아서 사랑을 하거나 말거나 하지 않는다. 그렇게 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거래가 되기 때문이다. 진정 사랑하는 사람은 상대의 잘못을 많이 참고 변함없이 배려를 기울인다.

그리고 자신의 사랑하는 자세가 상대에게 어떻게 전해지는지에 대해서 끊임없이 돌아본다. 자신과 상대의 사랑하는 크기를 서로 비교하지도 않지만, 설령 자신이 받고 싶은 만큼 사랑을 받지 못한다 해서 자신의 사랑을 아까워하거나 화내지 않는다.

사랑하는 사람은 설령 자신의 사랑에 자신이 있다 해도 결코 자만하지 않는 법이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시작할 때는 상대에게 잘 보이려 애를 쓰다가, 상대가 자신을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면 그 노력을 멈추는 경우가 많다. 또 상대가 소홀해진 것 같다는 이유로 자신도 상대를 하찮게 대하려 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은 서로 가까워져서 어렵게 대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해도 상대의 마음을 조심하여 살피며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상대에 대한 자신의 마음이 때때로 흐트러지는 것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에 대한 상대의 사랑도 약해질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리고 상대를 탓하기 보다 자신의 자세에 부족함이 있었는지 스스로를 돌아본다.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에 위기가 생겼을 때 지혜롭게 극복할 방법을 찾는다. 당황하거나 낙심하지 않고 자신이 상대를 얼마나 사랑하며, 자신에게 상대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를 알릴 방법을 찾고자 한다. 상대의 마음이 흔들릴 때는 상대가 유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도와주려 한다. 겁을 주거나 매달리는 것으로는 사랑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약해진 사랑이 회복될 때 함께 기뻐하며 자신의 진정을 알아준 상대에게 감사한다.

이처럼 사랑으로 어려움을 함께 이겨내고 나면 그 사랑이 굳건해질 뿐 아니라, 각자의 인격까지도 깊어지고 넓어지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은 설령 상대를 다시 볼 수 없게 되더라도 자신의 사랑을 아까워하거나 외로워하지 않는다. 사랑은 잊혀지거나 버려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어린 아이는 자신이 필요에 따라 상대를 원하고 또 자신의 필요를 채워주는 상대를 사랑하지만, 어른이 되면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으로 사랑하게 된다. 그리고 그에 따라 자신의 부족함을 더 잘 알게 되지만, 부족한 자신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사랑은 부분적인 것에서 시작하게 되지만, 사랑이 깊어가고 자랄수록 상대의 부분만이 아니라 상대의 모든 것을 사랑하게 된다. 사랑이 자라면 상대에 대한 믿음이 깊어지고, 상대에 대한 자신의 너그러움이 넓어지며, 서로 사랑하는 수준이 높아지게 된다. 그래서 사랑이 자신들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에 대한 사랑에까지 연결되는 것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우리의 삶에 생명을 주는 것은 바로 사랑이기 때문이다.



박수룡 백상신경정신과의원 부부치료클리닉 원장 sooryong@medimail.co.kr